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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정의와 유사용어 - 5) 구생승(Shaja-yana)과 시륜승(Kalacakra-yana) (by 법경)

티벳 불교와 문화..../by Scrap

by O_Sel 2011. 12. 1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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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생승(Shaja-yana)과 시륜승(Kalacakra-yana)

중기·후기의 밀교에서는 금강승과 함께 구생승, 시륜승 등의 용어가 주로 등장하고 있다. 대체로 이들은 후기밀교라 일컬어지는 '무상유가밀교'에 나타나는 용어들이다. 구생승은 범어로 Sahaja-yana라고 하며, 인도 후기밀교에 일어난 것으로 힌두탄트리즘과 거의 비슷한 관념과 행법을 행하고 있다. 그러나 구생승의 교리와 실천이 성력숭배와 남녀합일의 성적 요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지만, 반야와 방편의 교리가 중기의 순수밀교에 나타나는 지혜와 자비의 보리심 사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리심 자체를 완전한 깨달음으로 보지 않는데서 더욱 발전된 밀교로 나아 갔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지나치게 성적 탐닉의 실천으로 전락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어떻든 구생승의 교리는 밀교 내부에서 진행되어온 실천적 사상의 변화와 발전의 자취를 잘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또 반야와 방편의 이원적인 대립관념을 하나로 융합하여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한 의례로써 남녀의 성교가 행해지게 되었는데, 이는 힌두 탄트리즘의 좌도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이 점이 타락한 불교로 오해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야와 방편의 원리에서 소우주와 대우주, 성교에 의한 쾌락과 종교 체험에 의한 무한한 행복을 지니게 된다. 비속하고 외설적이며 부도덕하고 타락한 불교로 비난 받아 온 이 탄트리즘이 힌두교이며, 후기밀교의 구생승의 불교였다.

시륜승은 범어로 Kalacakra-yana라고 하며, 서장불교에서 신봉되는 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륜승은 서기 11세기경 인도에서 일어나 후에 서장(西藏)으로 전해졌고, 현재에는 서장 티벳밀교의 4파 중의 하나로, 최상의 무상유가밀교로 불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 구생승과 시륜승은 금강승 이후에 나타나고 있어 이들 용어들이 밀교의 총칭어로 채택되는 데는 금강승 보다도 오히려 더 미흡하다. 이들 용어들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연구자료를 보면서 밀교용어의 적합성 여부를 알아 본다. B. Bhattacharyya는 밀교를 변질된 후기불교로 보았고 이것을 금강승 또는 탄트라불교라고 불렀다.

그리고 후기불교는 금강승(Vajra-yana)과 구생승(Shaja-yana), 시륜승(Kalacakra-yana) 등으로 나누었다. 그 중에 주가 되는 금강승(Vajra-yana)에서 구생승(Shaja-yana)과 시륜승(Kalacakra-yana)이 파생되었다고 보았고, 금강승(Vajra-yana)을 밀교의 대표적인 파로 보았다. 그러나 S.B. Dasgupta는 대승불교의 유파인 진언승(Mantra-yana)에서 금강승(Vajra-yana)과 시륜승(Kalacakra-yana), 구생승(Shaja-yana) 등의 탄트라불교(Tantric Buddhism)가 후에 생겼다고 보았다. 그러나 진언승에서 구생승·시륜승이 나왔든간에 금강승에서 진언승이 파생되었든간에 이들 용어들은 앞서 언급한 금강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인도밀교 전체 중에서 후기에 해당하는 밀교, 즉 무상유가밀교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들 용어들도 '금강승'이나 '진언승'과 마찬가지로 '밀교'를 총칭하는 용어로 보기 어렵다. 다만 밀교의 한 부분, 한 시대의 밀교를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奈良康明은 이들 구생승과 시륜승을 통틀어서 금강승이라 부른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 金岡秀友는 B. Bhatacarya가 후기불교는 금강승 이외에 구생승·시륜승의 둘을 보태어 이 세 가지가 후기불교를 대표하는 3대 유파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대적으로 동일선상에서 이해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 동일 내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즉 서로 다른 별개의 후기밀교로 이해하였다. 구생승이 범어로 Sahaja-yana 혹은 Sahajiva라 하는데, 이를 사하쟈금강승이라고 할 때도 있어서 금강승의 한 형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형식과 내용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밀교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차이점은 세계와 자기를 각각 대우주·소우주로 보고 그러한 감응을 상정하는 일종의 우주론적 생산원리라든가 의학을 설하고 있다는 점, 또 육체에 의하여 보리가 성취된다고 보아 그때에 행자의 대상으로서 반야로써의 16세의 소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분명히 좌도밀교의 변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또한 시륜승도 별개의 한 체계로 보았다. 시륜은 실재와 현상, 원리와 실천이 융합하는 실증적 원리 또는 기반적 형식을 시간존재의 철학적 형식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시륜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것은 종래의 탄트라를 시륜이라는 이름 속에 통일하려는 최종기 불교로써 하나의 발전적 자각으로 보았다. 그리고 후기밀교인 무상유가탄트라는 부탄트라에서 모탄트라로 발전하고 마지막으로 시륜탄트라로 계승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 성립은 이슬람교가 인도에 침입한 다음부터(약 1027∼1087)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밀교와 여러 가지 유파까지를 모두 포함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보았다.

賴富本宏은 유가밀교의 성행과 더불어 8세기 후반에서부터 9세기에 걸쳐 새로운 요소를 가진 밀교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무상유가밀교라고 불리는 후기밀교라고 전제하고, 방편·반야·불이의 세 종류로 나눠지는 무상유가탄트라 중에 발전된 형태로서 후기밀교의 최종단계에 나타난 밀교가 불이탄트라라고 주장하였다. 칼라차크라, 즉 시륜탄트라이다. 이 시륜탄트라는 내부적으로 성적인 면만을 발전시켰던 반야탄트라에 대한 반발에서 일어나 오히려 방편과 반야탄트라를 총합하려는 가운데서 발전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당시 침략을 해오던 이슬람교도에 대처하기 위해 불교와 힌두교는 대동단결하게 되고 그 가운데서 兩者間의 융합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인도불교의 대미를 장식한 밀교탄트라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주장이었다. 奈良康明은 후기밀교의 탄트라는 힌두 탄트라와 같이 성력을 숭배하였는데 절대자와 합일하기 위한 수행법이 강조되었다고 하면서 힌두 성력의 좌도파와 거의 동일한 수행법을 지니었던 것이 바로 후기불교의 구생승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구생승은 인간의 신체에는 무수한 심령적인 신경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은 몸의 중앙을 정수리에서 성기·항문으로 잇는 선과 그 좌우의 두 신경으로서, 이 셋은 중앙의 신경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輪(cakra)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신경은 각각 반야와 방편, 달과 해로도 불리며, 이원적 대립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즉 이 두 신경으로 生氣가 돌고, 이것이 이원적 분별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따라서 요가적인 기법에 의해 생기의 흐름을 억제하여 세 신경이 결합된 곳에 머무름으로써 이원적 대립은 소멸하고, 여기에서 자타가 둘이 아닌(自他不二) 보리심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다시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것을 포함하여 네 개가 있는 輪을 통과하면서 서서히 중앙신경으로 상승하면서 점차 순화되어 第四輪에 이르러 至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을 大樂이라 하였다. 보리심을 낳을 때에 남녀의 성교가 의례로써 수행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인간의 신체(소우주)와 대우주, 성교에 의한 쾌락과 종교체험의 大樂이 비교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중앙 신경 좌우의 두 신경을 반야와 방편이라고 하며 이들의 합일로써 보리가 생긴다고 한 예에서 탄트라 특유의 수행법에 불교의 관념과 용어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합일의 수행법이 비속하고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이며 상당히 고차원적인 신비주의적 수도체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본래의 수도법에서 이탈되어 타락된 모습으로 덜어져 버린 면도 없지 않다고 보았다. 高崎直道는『금강정경』계의 경전군 이후에서 남녀교합의 즐거움을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표현하는 등, 힌두 탄트라 영향의 성적 요소가 불교 수행의 방편으로 발전하였음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兩性의 결합은 교리적으로는 방편(男性-父)과 반야(女性-母)의 동시운용이 佛行의 완성임을 말하며, 이는 후대 밀교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방편과 반야의 합일에서 밀교는 점차 비밀성을 띄며 동시에 남녀의 성교라는 소위 좌도성이 농후하게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인도불교 최후에 나타난 시륜탄트라라는 주장이었다. 본 논자 또한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는 입장이다. 위와같이 구생승이나 시륜승이 힌두탄트라의 좌도적 성력 신앙에만 치우치게 될 때, 자칫 밀교 전체가 타락한 성적 종교라는 오해를 충분히 받고도 남기 때문에 후기밀교에 한정되는 이들 용어들이 밀교의 총칭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平川彰도 구생승이나 시륜승이 밀교 전체를 망라하기에는 개념내용이 너무 협소하다고 지적하면서 밀교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인도밀교학 연구의 개척자인 B. Bhattacharyya는 밀교를 금강승·구생승·시륜승의 셋으로 나누고, 그들의 중심이 되는 金剛乘에서 탄트라승(Tantra-yana)이나 賢乘(Bhadra-yana)이라는 개성이 확실하지 않는 여러 가지 세분화된 乘이 파생된 것으로 보았지만 松長有慶은 각각의 승의 특성이나 파생의 역사적인 과정에 대한 설명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또 각 승의 명칭에 대한 경전의 근거도 없으므로 검토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금강승이나 시륜승·구생승의 존재가 분명치 않으므로 이를 밀교의 총칭어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외에 S.B. Dasgupta는 진언승이 탄트라불교의 제1단계이며 여기서 금강승이나 시륜승·구생승이라는 다른 지류가 일어났다고 보았고, G. Tucci는 소승과 대승 다음으로 금강승·진언승·과승(Phalayana)·지명승(Vidyadharayana)·비밀진언승(Guhyamantrayana)과 같은 여러 가지 이름이 나타났다고 주장하였다. H.Von Glasenapp도 이 점에 관해서 거의 같은 견해였다. 이상에서 보듯이 밀교를 표현하는 산스크리트는 매우 혼란스럽게 사용되었다.

따라서 어느 것을 특별하게 밀교의 총칭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鄭泰爀 교수는 구생승이 금강승의 또 하나의 형태로서, 형식과 내용이 밀교의 일반적인 개념과는 매우 다르다고 하면서, 여기에서는 세계와 자기를 대우주와 소우주로 보고, 이것을 서로 감응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구생승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육체에 의해서 깨달음이 성취되는 것으로, 이 때에 행자는 반야로서의 소녀를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左道密敎의 變形'이라고 주장하였다. 구생승 또한 후기 밀교로서 역시 탄트라적인 요소를 지닌 성적 밀교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밀교의 통칭으로 볼 수 없음은 'Tantra'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시륜승은 또다른 밀교의 체계로써, 실재와 현실이라든가, 원리와 실천의 도리를 구명하여 이것을 시간존재 속에서 실증하려 한다.

그러므로 반야와 방편이 둘이 아니며[般若方便雙入無二] 공과 자비가 둘이 아니라고[空悲 無二] 보고 있다. 즉 시륜이라는 것은 시간(kala)이 궁극적인 존재[륜; cakra]라고 생각하여 그의 영원함을 표시하고 있다. 반야와 방편이 둘이면서 둘이 아니며 반야와 방편이 동일하다는 사상을 시간의 존재 속에서 찾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시륜승은 반야·모탄트라와 방편·부탄트라를 쌍입하여 교리와 실천체계를 이루는 밀교 최종기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불이(不二)의 사상을 전개해가면서 즉신성불을 이루고 육체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다. 이 점은 바로 힌두 탄트라의 要素를 보여 주는 것으로, 흔히 左道密敎로 오해받고 있는 부분이다. 어떻든 이들 용어들이 후기 불교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초기밀교의 잡밀이나『대일경』『금강정경』의 중기밀교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구생승이나 시륜승은 후기무상유가밀교를 나타내는 정도일뿐이지 인도밀교 전체를 통칭하는 용어라고 보기는 어렵다.

출처: http://www.sej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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