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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에서 바라본 불교우주관

지복에 이르는 길..../학술, 교학

by O_Sel 2011. 9. 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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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에서 바라본 불교우주관



Ⅰ. 들어가는 말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 항상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생명체들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으며 어떻게 지금까지 생멸을 거듭하며 존속해 오고 있는가. 이러한 궁금한 문제들을 해결키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해왔는데 그 가운데 최초의 우주론은 절대자에 의한 우주창조론(說)이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아직 인간의 지혜가 몽매하던 때에 이 우주에는 절대자인 신이 있어서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는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보다 더 합리적인 우주 인생의 원리를 탐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동서고금의 종교사상 내지는 철학사상에 의거한 우주론이다. 서양의 기독교에서는 위에서 말한 우주창조설을 내걸었거니와 불교에서는 과연 어떠한 우주론을 말하고 있는가.

부처님 당시인 인도에서의 우주론은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우주론의 범주에 들어있다. 하나는 존우화작인설(尊祐化作因說, 神중심사상)로 우주의 창조는 물론,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원인이 신(神, 尊祐)에게 있다는 견해로서 정통 바라문의 우주론이 여기에 속하며, 두 번째는 숙작인론(宿作因論, 운명론사상)으로 그러한 원인은 과거에 지은 바에 있다고 보는 견해로서 그 당시 6사외도 중의 하나인 니간타의 5실체설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 우연설 사상)로 모든 현상은 아무런 원인 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우연론으로서 6사외도 가운데 니간타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의 사문들의 사상이 이에 속해 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세 가지 우주론을 비판하고 계시는데, 이를테면 위의 세 가지 우주론은 인간의 죄악이라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라고 말할 수 없다고 보신 것이다. 종교의 우주론이란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배후에서 그것을 지배, 조종 하고 있는 궁극적인 원리, 본질 또는 원인에 대한 해명이므로, 만일 그로써 설명할 수 없는 형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궁극적 진리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 - 곧 '연기법'에 의해서 우주를 말씀 하고 계시는데, 이 불교의 연기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상계의 생기, 원인, 순서, 그리고 본체와 현상간의 복잡한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연기설이 우주생성론과 본체론이라는 이중의 내용을 포함하며 또한 인식론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동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불교 실천의 논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능엄경 안에서의 불교 우주관을 중심으로 우주의 생성과 생멸체의 생기 원인, 그리고 존속 원인 등을 살펴보려고 한다.

Ⅱ. 불교우주론

불교의 우주론은 연기설에 입각한 인연화합으로써 설명되어진다. 이 이론에 의해 3천대천세계와 삼라만상, 형형색색, 생멸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불교의 대, 소승 각파는 모두 연기론을 자신의 전체 세계관이면서 종교 실천의 기초 이론으로 삼는다. 각 파의 사상의 분화와 이론의 분기는 모두 연기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거친 연기론은 보다 더 확장되고 해석의 변화를 가하면서 거대한 연기론의 사상 체계를 형성하는데 이 이론을 의거한 우주론을[또는 우주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보면,

최초의 '업혹연기론'으로부터 시작해서 용수의 '중도연기론', 유가행파의 '자성연기론', 밀교의 '6대연기론' 그리고 기신론에서의 '진여연기론'과 천태종의 '성구실상론', 화엄종의 '법계연기론', 그리고 선종의 '자심돈현론' 등이 있다. '업감연기론'은 업이 우주의 근원이라고 보는 소승의 연기론이며 나머지는 대승불교시대에 나온 이론이고, 중국에서 여기에 몇 가지 이론을 덧붙였다. 능엄경의 불교 우주관은 대승불교시대에 나온 것인데, 유심설에 입각해서 구사론의 우주론적 설화와 비슷한 내용으로 설해진 우주론이다.

Ⅲ. 능엄경에서 본 불교 우주관

능엄경 제 4권을 보면 부루나 존자가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세존이시여, 만일 세간의 온갖 근(根), 진(塵), 음(陰), 처(處), 계(界) 등이 다 여래장이어서 청정하고 본연 하다 하오면, 어찌하여 홀연히 산(山), 하(河), 대지의 모든 유위(의 상(相)이 생겼사오며, 차제로 천류(遷流)하여 마쳤다가 다시 비롯하나이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 수, 화, 풍이 본성이 원융하여 법계에 주변하여 담연히 상주한다.' 하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지(地)의 성(性)이 주변하다면 어떻게 수(水)를 용납하며, 수(水)의 성(性)이 주변하다면 화火는 생기지 못할 것이온대 어떻게 수와 화의 2성(性)이 함께 허공에 주변하여 서로 능멸하지 아니 하나이까?"

다시 정리한다면 하나는 어떻게 산, 하, 대지 등 제상이 생겼는가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4대가 서로 용납하는가 하는 물음인 것이다.

1. 세계와 중생이 생긴 원인

1) 생기원인

여래장의 성(性, 부처님께서는 성각과 본각이라는 표현을 하셨다.)은 불성이라고도 하 고 열반이라고도 하는, 아무런 티도 망(妄)도 없는 자리이다. 이 성각은 본성의 각으로서 반드시 본유의 명(明)이 있어 부족함이나 남음이 없다. 그런데 중생들이 허망하게도 명(明)해야 되리라든가, 밝혀내야 되겠다함으로써 명에 상대되는 암(暗)을 낳게 되는데 이것을 명각(明覺)이라 하고 또 무명이라 한다. 본래 진여와 무명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여를 못 본 그 어리석음이 바로 무명일 뿐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명이 생기고 그 무명이 다시 진여 본각을 훈습하여 망심이 생기고 망심이 다시 무명을 훈습하여 망경이 생겨 삼세를 이루고 망경계가 다시 망심을 훈습하여 갖가지 업을 짓는 의식을 이뤄 세계와 중생과 업과를 일으키게 되는 총체적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경에서는 이렇게 설명하면서 끝맺고 있다.
"…번뇌 망상이 곧 세계가 되고 다시 고요하여서는 허공이 되었느니라. 허공은 같은 것이요, 세계는 다른 것이지만 저 같음도 다름도 없는 것을 참다운 현상계(유위법)라 하느니라."

① 세계가 생겨난 까닭


깨달음의 밝음과 허공의 매(昧)함도 모두 무명의 한 상태이다. 이들은 모두 무명의 특성인 흔들림(動)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풍륜이 생겼고, 그 각의 밝음 - 즉 무명-의 굳은 성품은 금륜을 이루고, 금륜의 굳음과 무명의 동함이 마찰을 일으켜 화륜이 되고, 무명의 습기에 화륜의 열이 가해져서 수륜이 되고, 화륜의 열을 받은 수륜의 표면이 식어 굳은 것이 땅인데 화륜의 강약에 따라 땅의 높낮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생의 업력에 의해 허공에 바람이 일어나 풍륜이 생기고 또다시 중생의 업력에 의해 풍륜 위에 구름이 일어나 수륜이 생하고…'하는 구사론의 우주론적 신화와 비슷한 내용이다.

② 중생이 생겨난 까닭


그렇다면 중생은 왜 생겨나는가. 이것 역시 무명탓이다. 성각(性覺)은 원래 밝으나 허망하게 명각(明覺)이 되었다 했는데 이 명각인 무명이 밝을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 하겠다. 중생이 생겨난 연유를 경에서는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허망한 것이 생긴 뒤에는 명리(明理)가 뚫고 지나갈 수 없음에 듣는 것은 소리를 뛰어 넘지 못하고, 보는 것은 색을 넘을 수 없어서, 색과 냄새와 맛과 닿음 등의 여섯 가지 허망한 것이 생겨, 여기에서 보고 듣고 깨닫고 느끼는 것이 나와서 같은 업장끼리 서로 얽히고 합하고 여의어서 생기기도 하며 변화하기도 하느니라."

한 생각 잘못된 무명으로 인하여 행과 식과 명색, 6입(入)으로 해서 생과 노사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렇게 중생이 몸을 받아 태어나는 길은 태, 란, 습, 화 이며, 그들이 이렇게 4생의 길을 택하게 되는 주요 원인은 정(情), 상(想), 합(合), 리(離)에 의 한다 했다. 다시 말해서 들뜨는 상과 침울한 정, 이 두 가지는 모두 무명의 소행으로서 그 농도 여하에 따라 어느 취에 태어나는가를 가늠하고 이 때문에 합하여 태어나는 중생과 리(離)하여 태어나는 중생이 생겨 끊이지 않고 천류하는 것이다.

2) 중생이 천류하는 연유

이렇게 해서 산, 하, 대지 제유위상은 유정계의 업상이 쉬지 않고 충동하여서 차제로 천류한 다.

3) 중생의 업과가 상속하는 연유

중생이 한 번 생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까닭은 한 마디로 탐욕 때문이다.
'…생각과 사랑이 함께 맺어져서 애욕을 여읠 수 없어서 모든 세간의 부모와 자손이 서로 낳아 끊이지 않나니, 이러한 탐욕으로 인해 살생, 도둑질, 음욕 등이 생겨 윤회의 근본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 3인(因)의 뿌리는 다시 무엇인가? 그것은 그 근원적 바탕은 무명이고 무명의 바닥은 바로 성각[본각]이다.

이렇게 해서 세계와 중생이 생긴 까닭, 그리고 중생이 천류하고 중생의 업과가 상속하는 까닭을 설명했으나, 범부로서의 의구심은 아직 남아서 부루나 존자는 부처님께 다시 이런 물음을 하게 된다.
"본래 부처자리인 묘각에서 홀연히 산, 하, 대지가 생겼다면 지금의 부처님도 언젠가는 유위습루([무명]를 일으키시지 않겠는가."

이것은 원각경에서 금강장 보살이 부처님께 물은 내용과 같은 것이다. 이 같은 물음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로써 다음과 같이 답하신 것이다. '첫째는 깨닫고 나면 더 이상 미혹하지 않으며, 둘째는 묘한 진리에는 습성이 남지 않는다. 셋째는 깨달은 경지는 변함이 없고, 넷째 깨달은 공덕에는 업습이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2. 4대의 상호 허용 원인

어떻게 4대는 서로 용납하는가? 여래장의 성(性)을 이해할 때, 우리는 허공이 두루하여 제상이 나타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원리에서 여래장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은 고정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상을 보는 견해에 있어서 부처님과 중생이 서로 다르게 보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즉 중생은 공과 색의 관념으로 보는 까닭에 상과 상이 서로 굳게 맞서서 상영치 못한다 여기나, 부처님은 불생불멸의 도리로써 여래장에 합하므로 묘각명성을 발하기 때문에 사대가 상용함을 아시는 것이다.

3. 무명의 원인

그렇다면 까닭 없이 생긴 무명은 왜 생기는 것이며, 무명으로 인하고 탐욕을 연하여 생긴 과인 산, 하, 대지, 제유위상은 인연이 분명한데 왜 여래께서는 인연도 자연도 아닌 성이라 하시는가? 부처님께서는 이 '망'과 '인연'에 대한 실상을 해명하시기 위해 '연야달다'의 비유를 들고 계신다. '연야달다'가 까닭없이 자기의 얼굴을 잃었다고 소란을 피우다가 마침 내 광성(狂性)을 멈추자 자기의 얼굴이 제자리에 있음을 알고 안정을 얻은 것처럼 '망(妄)'은 실체가 있거나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연야달다'의 얼굴이 어떤 인연 때문에 잃었다가 다시 어떤 인연으로 해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광성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므로 그 미친 증세에 준하여 득, 실을 말할 수는 있으나 이것은 다만 세제논리일 뿐이고 머리에 해당하는 제일의제에서 보면 잃었다거나 찾았다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명과 진여가 하나임을 말씀하시고, 깨달으면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불교의 우주론이 연기설에 의거한 인연화합으로 이뤄져 있음에도 그 인연조차 버리고 계시는 것이다.

Ⅳ. 맺는 말

<기신론>에 '불여실지진여법일고불각염기명위무명不' 이라 한 구절이 있다. 진여는 본래 청정하여서 아무런 상대적인 차별이 없다. 그러므로 진여 법이 하나이다. 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지(如實知)하지 못하는 바로 이것이 명각이며 무명인 것이다.

능엄경의 우주론은 이런 사상 위에서 설해진 우주론이다. 지금까지 불교 우주관의 근본이론과 능엄경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을 살펴보았다. 우주의 궁극적 본질에 대한 어떤 해명이 참다운 진리성을 띠려면 실제로 그것이 체험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은 다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했다. 이런 뜻에서 부처님은 <법화경> 끝에서 이렇게 설하고 계신다. "우주의(제법) 실상은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주고 받나니, 이른바 상(相), 성(性), 체(體), 력(力), 작용(作用), 인(因), 연(緣), 과(果), 보(報), 본말구경(本末究竟) 등이니라."

즉 우주의 실상은 깨달음을 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을 배경으로 중생들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8만4천 가지 방편으로 설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소승의 업설로부터 대승의 유심사상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진 중층적 교리조직인 것이다. 이렇게 불교는 우주의 궁극적 실상에 대해서 '깨달음'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제시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늘 강조하고 계시는 것 - 모든 중생들이 여래와 꼭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학 66호/ 동선후 대교과>

출처: http://cafe.daum.net/wongangbook/XY8Y/85?docid=1FkpX|XY8Y|85|20081230225512&q=%B4%C9%BE%F6%B0%E6%20%BF%EC%C1%D6%20%C3%A2%C1%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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