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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학파에 대하여

지복에 이르는 길..../학술, 교학

by O_Sel 2011. 7. 12. 21:10

본문

중관학파에 대하여

 

1. 중관학파의 의미

2. 중관학파의 사상적 특징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등의 비판

반야공관에 입각한 부정논리

중도실상 연기 무아 무자성 공 등의 사상

3. 중관학파의 분류

4. 중관학파(中觀學派)의 형성과 역사

5. 중관학파의 학자들

초기 중관학자들

중기 중관학자들

후기 중관학자들




< 중관학파 Madhyamika 에 대하여 >

1. 중관학파의 의미

이른바 중관학파[中觀學派 M dhyamika, ∼v dinah]는 중파(中派), 중도파(中道派), 중사(中師), 중도사(中道師)라고도 한다. 龍樹(梵 N g rjuna)의 중론(中論)을 기초로 하여 공관(空觀)을 선양(宣揚)한 학파를 일컫는 말이다.

A. 중관학파를 나타내는 범어 - M dhyamaka, M dhyamika의 뜻

중관학파는 산스크리트어(梵名)으로는 M dhyamaka, 또는 M dhyamika 라고도 한다.

이 말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들이 있다. .

㉠ Edgerton설(說)에 의하면 , 'Madhyamaka'라는 말은 madhya[중(中)의]라는 형용사의 최상급인 Madhyama[가장 중앙(中央), 가장 가운데(中)의]에 접미사(接尾辭)(또는 조사) -ka 가 붙여진 것이다. 때로는 -ika가 붙여져 'M dhyamika' 라고도 쓰인며, 다같이 "중(中)에 기초하는, 중(中)에 관한, 중(中)을 말하는" 등을 뜻하는 동의어(同義語)로서, 이들이 명사화되어 '중(中), 중도(中道)의 사상(思想)내지 사상가(思想家)'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관(觀)'자(字)가 없지만 홋날에는 '중관파'라 불리게 된 것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 Murti 설에 의하면 이 양자를 구분하여 'Madhyamaka'라는 말은 '중도(中道)내지 중도설(中道說)'를, M dhyamika 는 광의(廣義)로 그것을 포함하는 '학파(學派)'를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 또는 Madhyamika의 의미를 단순히 '중도를 걷는 자'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B. 중관학파를 나타내는 다른 말

중관학파는 그외로 Madhyamkak citta [중(中), 중도(中道)를 마음에 지닌다]

또는 Madhyamak v din [중·중도(中道)의 논자(論者)] 라고도 불리웠다.

또는 스스로를 'S nyatav din [공성론자(空性論者] 라고도 이름했다.

C. 중송을 나타내는 말 - 'Madhyamaka karika' 또는 'M dhyamika karika'

'Madhyamaka 나 'M dhyamika '라는 말 뒤에 'karika' 라는 말이 'Madhyamaka karika'라거나 'M dhyamika karika'라는 말이 이루어졌다.

'karika'라는 말은 종교나 철학 문법서 등의 강요를 기억하기 쉽게 요약한 시구(詩句) 나 시송(詩頌)으로서 게(偈)·송(頌)·게송의 뜻을 갖는다. 이런 용어가 prasannapad 의 서명(書名)에 보였고, 티베트에서도 이 범어 서명(書名) 그대로 사용된다.

때로는 그 앞에 'Mula'(근본, 기저)가 추가되기도 한다

D. 중론 - Madhyamaka - stra

stra는 논이라는 뜻이다. 본래는 sastra[논(論)]가 붙어 있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경(經)·율(律)·논(論)으로 분류하는 방식에 따라 나집(羅汁)삼장이 '중론(中論)'이라고 이름하였다. 오늘날은 범어로도 'Madhyamaka - stra' 즉 중론(中論)이라고 일반적으로 표기되고 있다.



2 중관학파의 사상적 특징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등의 비판

불멸후(佛滅後) 6·7백 년이 지난 용수 당시의 인도불교는 붓다의 근본정신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당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sarvastiv da)는 세상 모든 것들을 오위(五位)75법(法)으로 나누어 이들 각각을 영원불변의 실체성(實體) 내지는 실재성(實在性)을 지닌 것들로서 파악한 다음, 이들이 여러 형태로 상응(相應) 상반(相反)하는 관계에 의해 모든 형상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일면 붓다의 교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가운데 붓다의 교설 내용을 절대시 하는 가운데 형성된 관념체계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그 어떤 사유 판단에 영원불변의 실체적(實體的) 내지 외부에 실재하는 존재가 전제되고 있다면, 이는 벌써 근본불교의 본질에 어긋나고 마는 것이다. 이는 '무상(無常)·무아(無我)·연기(緣起) 중도(中道)'라는 석존교설(釋尊敎說)의 근본 정신에 위배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석존의 근본 뜻은 석존 자신과 설법내용을 포함한 일체가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인 것들이며 연기(緣起)하는 것들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봄이 옳다. 그리고 석존은 이런 연기법등을 통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비고비락(非苦非樂)의 중도(中道)(madhyama pratipada)에 의해서 정각(正覺) 열반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만일 설일체유부와 같이 다원론적 존재가 삼세에 실재한다는 전제하에서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이는 근본 불교와 어긋나는 잘못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용수는 이를 비판하고 시정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대승경전인 반야경의 '공관'을 다시 심화시켜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용수의 중론은 상주(eterbakusm)와 단멸(annihilationism), 아(我)와 비아(非我),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 실체와 과정, 단일과 다수, 긍정과 부정, 동일과 차별 등 모든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이원론을 피하고, 불타의 가르침의 참된 정신인 중도를 밟고자 한 것이었다.

이런 용수의 입장을 계승한 중관학파는 용수의 견해에 의거해 일체의 모든 존재는 원인과 조건에 의하여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것에 의존하는 복합적인 존재이고 무상(無常)한 것으로서 여기에 영원불변한 실체는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으며 공(空)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영원불변하며 단일한 실체는 개념이나 말을 실체화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허구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용수의 입장을 계승한 학자들에 의해 중관학파가 형성되어지는 것이지만 이를 계승한 학자마다 주장하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용수는 많은 저술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오늘날 그 각각의 진위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중관학파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은 결국 <중론>이 되기 때문에, 이를 중심으로 그 사상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중론송의 반야공관에 입각한 부정논리

중론송은 대승반야공관(大乘반若空觀)이야 말로 근본불교정신인 '연기(緣起)·무아(無我)·중도(中道)'를 가장 옳게 실현하는 것으로 보고, 이 공관에 입각한 특수 부정논리 즉 양도론법(兩刀論法)이나 오구문파(五求門破)와 같은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논리 이론으로, 불타(佛陀)의 진의를 알지 못한채 교리 개념만을 집착·분별·회론하는 일부 아비달마 논사들의 잘못들을 냉엄 철저히 파척(破斥) 불식하였다.

즉 중론(中論) 27품(品) 450 여게는, 반야경들이 역설하는 일체개공관(一切皆空觀)을 바탕으로 당시 불교계에 정형화된 중요한 교리개념 대부분을 27 품목으로 거론하여, 이들을 실체 실유시(實有視)하여 분별(分別) 희론하는 사견(邪見) 오류(誤謬)를 없애버리기 위해 부정에 부정을 거듭하는 특수형식의 논리를 구사하며 동시에 중도실상(中도實相)의 정법(正法)세계를 경쾌히 밝혀낸 것이다.

중론송에 일관되는 부정논리는 반야(般若) 공관(空觀)에 입각하고 있다.

본래 반야경전들에는 일체 유위법은 몽환포영(夢幻泡影)과 같고 일체법은 불가득(不可得), 무소유(無所有)이며, 제법(諸法)은 공(空)·무자성(無自性)이고 불생불멸(不生不滅)하다는 내용이 밝혀져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제법(諸法)의 공함을 관행(觀行)하는 '반야바라밀(Praj aparamit )'은 보살행의 기초요 목표로 될 뿐만 아니라 불(佛)·세존(世尊)의 일체지(一切智)(sarv j a , 살파야(薩婆若)와 직결함을 지적하였다.

한편 방대한 반야경전의 내용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낸 반야심경에서는 오온 ,육근(六根), 육경(六境)등과 십이연기의 요소 내지 사성제(四聖諦) 그리고 이를 통해 얻어지는 '지(智)' 내지 열반(涅槃)을 '얻음'등이 모두 '공(空)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반야심경에서 나열되고 있는 바는 바로 석존(釋尊)에 의해 모든 현상의 구성요소나 변화과정의 요소로서 제시되어진 것들로서 바로 석존의 설법내용의 중심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다. 결국 이는 석존의 설법 내용을 포함한 일체제법(一切諸法)이 모두 무자성이요 공함을 여실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면 설일체유부등이 외도의 주장은 부정하지만 석존의 설법 내용은 실유하는 요소로서 절대시하는 경향을 불식시키는 측면도 갖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론송(中論頌)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불생불멸(不生不멸), 불래불거(不來不去)'인 까닭 이유를 매우 깊이 논증해 나간다.

중론송은 이런 부정논리를 통해 어떤 개체적 존재나 그 구성요소들(인(因)·연(緣), 온(蘊) 처(處) 계(界)·육계(六界)등) 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 개체나 구성요소들로부터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 가령 생(生), 멸(滅), 거(去), 래(來), 작(作), 견(見), 염(染), 수(受), 취(取), 전도(顚倒) 고(苦)·낙(樂) 등에 대해서도 실체적(實體的)으로 항유(恒有)한다고 말할 수 없는 까닭을 밝혀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용수가 사용하는 부정논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a

그 현상들은 사종불생(四種不生)이다.

즉 자생(自生)·타생(他生)·공생(共生)·무인생(無因生)아니다. (관인연품(觀因緣品)

또한 과거(過)·현재(現)·미래(未) 삼세(三世)가운데 불생(不生)이며, 무시(無始)·무종(無終)이다.

또한 그 현상들을 일으키는 주체(主體)나 현상 자체는 유(有) 무(無) 역유역무(亦有亦無) 비유비무(非有非無)와 같은 방식의 사구사유(四句思惟)로도 파악될 수 없는 것들이므로 불생(不生)·불래(不來)이다.

나아가 그 반대현상들도 부정되어 불멸(不滅)·불거(不去) 비무(非無)가 아닐 수 없다고 논증한다.

b

또한 그 현상이 일어나는 주체(主體)와 관련해 인과(因果)관계나 능소(能所)관계로 그 현상들을 분석 검토해 봐도, 서로가 동일(同一)하지도 합일(合一)되거나, .공존(共存)하지도 않으므로 불일(不一). 불상(不常), 불공(不共), 불합(不合)이고,

또 반대편으로 서로는 전혀 관련성 없는 별개적 이체(異體)인 것들이라고도 할 수 없으므로, 불이(不異)·부단(不斷)·비무(非無)가 아닐 수 없다고 논증해낸다.

(양도론법(兩刀論法),

c

또 이 논증을 확대 심화한 오구문파(五求門破)의 논리를 구사하기도 한다. 오구문파는 일체의 모든 것들에 대해 (1) 상호간 서로 같은 것인가. (2) 서로 다른 것인가. (3) 어느 하나는 다른 하나를 갖고 있는 것인가. (4) 어느 하나 안에 다른 하나가 있는 것인가. (5) 반대로 다른 하나에 그것이 있는 것인가를 관찰해 -오종추구(五種推求)

동일(同一) . 별이(別異) , 소유(所有), 상호(相互)간 서로에게 내재(內在)함을 모두 부정함으로서 그 실체적 존재성을 부정한다.

d

한편 서로를 동일(同一, 合一)하다고 하면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다른 것들(別異,不合)이라 보면 단견(斷見)이 생기는 모순·오류·불합리(不合理)에 빠지고 만다는 등의 귀류논증법(歸謬論證法)을 종횡 구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중론(中論)은 대승반야공관에 입각하여, 온갖 회론을 없애기 위해, 불생(不生)이나 불거(不去)인 까닭을 밝혀내는 그 특수 논중논리로써 , 생(生),멸, 상(常),단(斷), 일(一), 이(異), 래(來), 거(去), 유(有), 무(無) 등의 양극단을 초월한 불생불멸(不生不滅) 내지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中道) 실상(實相) 세계에 참다운 진리성이 있음을 밝혀내었던 것이다.

중도실상 - 연기 무아 무자성 공 등의 사상

이렇게 용수가 부정논리를 통해 밝혀낸 연기 중도 무아 무자성 공의 사상을 대략적으로 요약해서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A 연기

용수는 <중론>의 처음에서 '길상('吉祥한 연기'를 설하신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중론>의 귀경게에서 "不生不滅 不斷不常 不一不異 不來不去"로써 능히 모든 희론을 적멸시키는 길상한 연기를 설하셨고, 모든 설법자 중 가장 훌릉한 정각자에게 경배드린다"고 하면서 석존의 근본사상을 연기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명하는 것을 <중론>의 주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용수가 원시불교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B 연기와 팔부중도

그러나 그 연기를 불생불멸 등의 '팔부중도(八不中道)'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십이연기께 입각한 원시불교보다 그의 입장이 진일보했음을 알 수 있다. 원시불교에서도 중도는 설해지고 있다. 예컨대 <초전법륜경>에는 '고락(苦樂)중도'가 설해지며, <상응부>에는 자아의 연속, 비연속과 관련하여 '不常不斷의 중도, ·비유비무의 중도가 설해지고 있다. 따라서 <중론>의 '팔부중도'는 이 전통을 잇는 것이지만, 그 밑바탕에 '공'사상이 있다는 점에서 <반야경>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하겠다.


C 이제(二諦)

<중론>은 이제(二諦)의 입장에 서 있다. 이것은 <대품반야경> 권25에 "보살은 2제에 주(住)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한다.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가 바로 그것이다" 라는 가르침을 계승하는 것이다. <대품반야경> 권22에는 세제의 '여(如)'와 제일의제의 '여(如)'는 같다고 되어 있다. 즉 세제와 제일의제로 나타나는 진리는 동일하지만, 방법이 다른 것이다. 본래 중생이라는 실체는 없다. "2제 중에서는 중생은 불가득이지만,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방편력을 갖는 고로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한다"고 말해지는 것처럼, 2제에는 방편 up yakau aly(선교방편善巧方便)의 지혜가 있으며, 이 방편에 입각하여 중생(세속제)이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편은 반야바라밀의 실천에서 생긴다. 이것이 제일의제이다. <중론> 에서는 제24품에서 "제불은 2제에 의거하여 법을 설하신다. 세속제와 제일의제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설하는 등이 <반야경>의 설을 계승하고 있다.

세간의 존재는 모두 무상하며 변화해간다. 따라서 어떠한 것도 '이것'으로 파악할 수 없다. 파악하는 순간 상태가 바뀌어버리기 때문이다. 존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말로 일체개공(皆空)이라고 한다. 이 공 nya 의 입장에서 '존재' 즉 법 dharma을 이해하는 것이 제일의제 param rtha -satya의 입장이다. 따라서 존재는 그 본성에 있어서는 유라든가 무라든가 하는 형태로 파악되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시간적 존재자의 진실된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제법은 공이지만, 현상은 천차만별로 현현하고 있으며, 이로써 시간적 세계가 형성되어간다. 공이라는 것도 진실이지만, 동시에 나와 너의 상대적 세계가 성립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연기의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하는 '법이 본래 모습이다. 이러한 상대적으로 성립하고 있는 개체를 인정하는 입장이 세속제 lokasanlvrt satya이다. 이것은 개개의 존재를 상대성에 입각해 바르게 이해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연기 pratityasamutp da를 바르게 앎으로써 '연기에 의해 성립하는 법 pratityasamutpann dharma(연이생법(緣已生法)을 바르게 아는 입장이다. 여기서 나와 너, 선과 악, 고와 락 등에 의거한 세속의 세계가 바르게 알려진다.

이른바 세속의 명언(名言) 개념을 통하여 힉득한바 인식내용들은 모두 희론의 범위에 속하여 이른바 속제라 칭한다. 오직 불법의 이치에 의하여 바로 직관하고 증득한 제법실상을 진제라 한다. 속제(俗諦)에 따라 말하여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 되고 일체는 모두 있다고 한다. 진제에 의해 말하되 일체는 모두 그 실체의 자성이 없으며(一切皆無自性) 모두 마침내 공하다(畢竟空)고 한다. 그리하여 世俗의 있음은 필경 공하다. 필경공한 즉 세속에 존재할 수 있다. 만일 속제에 의하지 않는다면 제일의를 얻지 못하고 열반을 얻지 못한다.

이론상으로는 품성에 있어 공함과 방편을 통일한다.

인식상으로는 명언(名言)과 실상(實相)을 통일하고 속제(俗諦)와 진제(眞諦)를 통일한다.

종교실천(宗敎實踐)으로는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 번뇌(煩惱)와 열반(涅槃)을 통일한다. 이른바 假有 性空,有無 二邊에 치우친 관점이 없음을 중관이라 이름한다.


D. 八不中道와 이제법

이 2제의 배경을 이루는 것이 '팔부"의 연기이다. 즉 제일의제에서 말하면, 일체는 '무아'이지만, 연기의 상관관계(상호관대(相互觀待) parasparapek a)에서 상대적으로 개체(제법)가 생기한다. 연기를 괄불의 비유비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제일의제가 되며, 유와 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세속제의 세계가 된다. 이처럼 용수는 연기를 2제와 팔부(八不)로 해석했다. 이것은 연기를 '상호의존(상호관대)의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E. 상호관대의 관계

상호관대가 개체가 성립하는 조건이지만, 상호관대하는 개체가 없으면 관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대하는 개체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 상호관대가 개체가 성립하는 조건이라고는 말할수 없다. 즉 관대하는 개체가 없으면 관대는 성립하지 않지만, 개체가 이미 존재하면 관대는 필요치 않게 된다. 이처럼 '상호관대'라는 것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상호관대의 연기는 논리를 초월해 있다.

이처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실상이 존재의 실상, 즉 '제법의 실상 <dharmat , tattvasya lak anam '이다. 그 때문에 <중론>에서는 "제법의 실상은 마음으로써 사유할 수도 없으며,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것은 적멸하여 마치 열반과 같다"고 설하고 있다. 그것은 나와 너의 대립, 선과 악, 고와 락 등의 상대적 가치가 없어진 세계,즉 공의 세계이다. 이상과 같은 용수의 연기에 대한 해석은, 공에 의거한 상호관대에 의해 연기의 '연(緣) pratyaya'을 바르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연기에는 '기(起) utp da'라는 측면도 있는데, 용수의 이해방식에서의 '기(起)'나 '생(生)'의 의미는 희박하다.


F. 희론적멸 파사현정

제법실상(존재의 진실한 모습)은 사유를 초월해 있으며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것을 희론적멸 prapa c upa ama이라 한다. 회론은 분별 vikalpa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불완전한 판단을 말한다. 존재는 일반적으로 시간적이고 유동적이지만, 우리의 인식(식(識) vij na)은 그것을 유동적인 모습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유동적인 존재를 정지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한다. 다시 말해서 '개념화'한다. 그리하여 판단이나 인식과 현실의 진실상 사이에 필연적으로 괴리가 생긴다. 더구나 이러한 인식의 배후에는 욕망이나 분노, 집착 등의 번뇌가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집착에 근거하는 유한한 인식을 '분별"이라고 한다. 분별은 현상의 진실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인식이나 판단에는 항상 논리적인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자기동일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변하고 있다고 본다. 인식에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은, 유동적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반야의 이해와, 똑같은 유동적인 존재를 개념화하여 이해하는 식(識)의 인식이라는 두 가지 앎이 있기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식의 근저에는 '무명지라는 것이 있다.

중관파는 인식이 안고 있는 모순을 철저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분별을 물리친다. 이것을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한다. 이것은 파사가 그대로 현정이다. 파사 후에 현정을 설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른 판단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설하면 거기에도 모순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관파에 의하면 시간적 존재자·연기에 의해 성립하는 존재자는 한편으로는 유한한 면을 갖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영원한 성격, 전체적 성격을 갖는다. 이 양면성을 갖는 현상을 유한이라는 쪽에서 이해하면 세속제의 입장이 되고, 무한 ·전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면 제일의제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G. 중도

세속제와 제일의제의 조화가 중도 madhyama pratipad이다. 그러나 중도는 세속제와 제일의제 속에 해소되어 있는 것이며, 제3의 제(諦)(진리)로서 중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속제에 있어서 현상(제법)을 인식하는 것은 '지(智) j na'이지만, 이것이 제(諦)이기 위해서는 식이 집착이나 무명을 버리고 '반야'에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에 제일의제에 있어서 제법을 인식하는 것은 반야(praj 혜(慧))이다. 반야란 영원이나 전체를 아는 전체적 직관, 혹은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는 유한자를 아는 인식주체이며, 반야는 무한자를 아는 지혜이다. 반야로써 알려지는 법의 본성은 공이다. 여기서는 법의 개별적 ·차별적인 면은 사라진다. 지가 유한자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야의 인식, 공의 통찰이 그 이면에 있으면서 식의 인식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공의 인식이란 '무집착 ·무분별'을 말한다. 식이 반야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그 인식은 집착적이게 되며, 자아에 대한 집착(아집), 외계에 대한 집착(아소집)이 생기고, 거기서 인식되는 것은 개체이지 법은 아닌 것이다. 연기의 도리에서 성립하는 개체를 보는 곳에서 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법이란 영원의 상(相)에서 보이는 유한자이다.


H. 공

'공'은 허무라는 의미는 아니다. 공이란 현상이 변화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무상이라는 말과 같다. 다만 무상이 현상을 직접 인식하는 면에서의 파악이라면 공이라는 것은 그 현상의 이면에 대한 파악을 시도할 때 그 안에 어떤 실체성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그 어떤 현상적인 개념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기 위해 공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리고 현상 일체의 이면은 공이라는 것은 어떤 공이라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空空)

그러나 이 공의 파악을 잘못하여 일체가 공하기 때문에 인과가 없으며 선악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존재의 본성이 공이기 때문에 연기의 도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공하지 않고 어떤 실체가 있고 또는 어떤 모습으로 실재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하므로 변화하여 나타난다는 현상이 있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공하다는 면은 반대로 현상법에서 연기의 도리가 나타나게 하는 전제적 기반이 되어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의 활동에는 법칙성이 있다. 공은 연기라는 것과 같다. 이 점을 <중론>(제24품 제 7게)에서는 공성 nyat 과 공의 의의 nyat rtha, 공의 활동 nyat -pra yo-jana 등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용수는 또한 공에 있어서 성립하는 개체를 '가(假)(praij apti, 상대적으로 성립한 것 up daya praij apti 인시설(因施設)라고도 부르고 있다. 법(존재)은 무상전변(無常轉變)의 공에 있어서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컨대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그 이름은 '가명' 이다.



I. 지의의 3 제설과의 관계

이 연기 ·공 ·가 등의 관계를 <중론> (제24품 제18게)에서는 "연기로 성립하고 있는 것(중인연생법(衆因緣生法))을 우리는 공성이라고 설한다. 그 공성이 그대로 상대적인 가(假) 이다. 또한 그것이 중도이다"라고 하면서 공(空) ·가(假) ·중(中)의 3제를 설하고 있다. (단 <중론>에는 3제라는 용어는 없다. 이것을 3제라고 보는 것은 천태대사 지의의 입장이다). 앞의 2제에 적용시켜 말한다면, 공성은 제일의제이며 가명은 세속제이다.

세속제란 언어로써 표현되는 진리라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중도는 이 공성과 가명의 별명이다. 공성이 주체적으로는 그대로 중도이다. 그래서 길장은 제일의제 속에 중도가 있고 또한 세속제 속에도 중도가 있으며, 제일의제와 세속제 속에도 중도가 있다고 하면서 진제중도 ·세제중도 · 2제합명중도를 설한다. 즉 연기를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도이다. 동시에 그것은 무집착의 실천이다. 연기의 도리를 모르면 공이 허무로 잘못 이해되어 제일의제가 제(諦)(satya, 진리)라는 의미를 잃게 된다.

<대승이십송론>에는 '삼계유심'의 사상이 있는데, <중론>에는 유심론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론>의 게문에는 '분별 vikalpa'이라는 용어가 보인다. 이것은 유식설에서 인식의 미망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이 된다.

중론에 있어서 연기는 불생불멸 등의 '팔불', 공 ·가 ·중의 3제, 그리고 제일의제와 세속제로써 설명되고 있다. 이 용수의 2제설을 계승하여 중도를 해명한 것이 길장(549-623)의 <중론소(中論疏)이다. 이에 대해 월칭 Candrakirti (600-650년경)의 <중론주(註) 프라산나파다 prassnnapada > 에서는, 연기에 포함되는 '상호의존(paraspar pek 관대(觀待), 인대(因待)라고도 함)'이 자세히 설해지고 있으며, 상호인대로부터 공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의(538-597)는, 불성사상을 도입하여 중도를 제3제라 보고 공가중(공가중(空假中))의 3제를 설하는 점에서, 앞의 두 사람과는 다른 새로운 입장에 서 있다고 하겠다. 이것을 '원융

3제'라 하여 '원융'이라는 말로 연기를 설명하고 있는데, 3제를 설정하는 점에서 길장과는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중론>의 해석으로서는 길장의 것이 용수에 가깝다.


J. 불타관

용수시대에는 <법화경>이나 <화엄경> · <아미타경> 등, 웅대한 불타를 설하는 대승경전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불타관에는 그러한 불타가 반영되어 있었다고 보아도 좋다.

용수의 불타관은 대승경전에 나타난 불타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있다.

단 <중론>은 공을 설하기 때문에, <관여래품>에서는 "여래는 유무를 초월해 있으며 적멸상이다"라고 할 뿐, 적극적인 불신론은 설하고 있지않다.

이것이 설해지는 것은 주로 <대지도론>이다. <대지도론> 권9에는 법성신(法性身)과 부모생신(父母生身)이라는 2종의 불신이 설해져 있다.

또한 <대지도론> 권10에서는 불신을 신통변화신과 부모생신으로 나누고 있기 때문에 법성신은 신통변화신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대지도론> 권39에서는 보살에는 2종이 있다고 하면서, 업에 따라 태어나는 보살과 법성신을 얻은 보살을 언급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대지도론>에 의하면, 불타나 대보살의 본질은 법성신이지만, <중론>의 (관여래품)에 있어서는 여래는 적멸상이며, 그 몸은 유라고 할 수도, 무라고 할 수도 없다고 설하고 있다. 제법실상은 미묘적멸하며, 필경청정한 제법실상이 여래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여래는 분별이나 희론을 떠난 지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을 살펴본다면 용수의 불타관은 이신(二身)설(說)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3 중관학파의 분류

티베트의 종의서(宗義書)인 '학설보환(學說寶環)'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인도에서 중관학파는 다음과 같이 그 흐름이 나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관학파는 먼저 귀류론증파(歸謬論證派 pr san,gika)와 자립논증파(Sv tanrika)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그중 자립론증파(自立論證派)는 다시 유가행(瑜伽行)중관파(Yog c ra M dhyamika)와 경량행(經量行)중관파(Sautrantika M dhyamika?)로 양분되었다.

그리고 그 중 유가행중관파는 형상진실파(形象眞實派)와 형상허위파(形象虛僞派)로 다시 나누어졌다.

그리고 그 중 형상 허위파는 유구론파(有垢論派)와 무구론파(無垢論派)로 양분되었다.

오늘날 티베트의 종의서(宗義書)인 '학설보환(學說寶環)'의 내용에 따라, 중관학파의 학승들은 그 형성시기의 초기(初期), 그리고 불호(佛護)와 청변(淸辨)에 의해 양분되는 중기(中期), 그리고 적호(寂護)와 연화계(蓮華戒) 등이 활동하던 시기의 후기(後期)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위 학파별로 정리된다.

< 중관학파의 계도 >

초기

[ 용수(龍樹) 제바(提婆) 라후라(羅喉羅) 청목(靑目) 바수(婆藪) ]

중기

귀류논증파 [ 불호(佛護) 월칭(月稱) 적천(寂天) ]

자립논증파 [ 청변(淸辨) 계통 ]

경량행 중관파(經量行中觀派)

유가행 중관파(瑜伽行中觀派)

후기

형상진실파(形象眞實派) [ 적호(寂護) 연화계(蓮華戒) ]

형상허위파(形象虛僞派)

유구론파(有垢論派)

무구론파(無垢論派)



4 중관학파(中觀學派)의 형성과 역사

중관학파의 형성

용수에 의해 중론송(中論頌)이 쓰여졌던 시기를 중관학파의 형성의 원시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다른 불교내 흐름과 뚜렷이 구별되어지는 독립된 학파로의 형성은 그 보다는 늦게 형성되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는 중관학파(中觀學派)라는 이름을 갖는 학파가 형성되었던 것은 유가행파가 나타난 이후 유가행파와 중관학파가 그 경향이 구별되어짐으로서 비로소 형성되어진 것으로 보게 된다.

가령 용수의 제자인 제자(提姿)나 나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가 활약하고 청목(靑目)이 중론송을 주석했던.때까지도, 무착(無着)(A a ga, 310∼390 년경 / 또는 395-470 )이나 세친(世親)(Vasubandu, 330∼390 년경/ 또는 400-480 년)이 중론송을 해석하거나 이것에 의해 타학설(他學說)을 비판했던 점 등으로 보아, 용수의 중론송은 대승불교 전체의 공유 성전(聖典)으로 연구 해석되고 의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론송을 기초하면서도 인식론적(認識論的) 색채를 띈 유식학설(唯識學說)의 체계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중론송에서 밝혀진 공성(空性)(s nyat )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가지로 달라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중론송(中論頌) 그것에 돌아가고자 하거나 유식학설에 대항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이 운동을 중심하여 마침내 중관학파가 형성되었던 것으로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는 중관학파가 형성되어지는 시기는 유식설(唯識說)을 주장하는 유가학파(瑜伽學派 Yog c ra)와 관련해서 대략 4세기 경에 형성되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론송이 지어진 이래, 이것을 기본성전의 하나로 의식하게 되는 시기, 그리하여 학파로서 기반을 갖추게 되는 시기를 중관학파의 초기로 보면 용수(龍樹) 제바(提婆) 라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 청목(靑目) 바수(婆藪) 등이 이에 해당되게 될 것이다.

중기(中期) 중관학파 - 귀류논증파와 자립논증파



A. 불호 귀류논증방법

용수나 제바 이후 200여 년이 지난 때에, 중론송의 사상을 계승 부흥한 논사는 불호(佛護)이다. 그는 용수보살이 자주 구사했던 논증형식인 귀류법을 사용하여, 즉 대론자의 주장이나 학설이 모순을 내포하고 불합리에 빠지게 됨을 지적하는 논증방법으로, 중론송의 본질을 간접적으로 밝혀내고자 했다. 궈류법(歸謬法)은 배리법(背理法), Prasa ga 또는 Prasa g anum na 라고 한다.

그는 중론송 주장의 공성(空性)은 '적극 표출되지 않고, 상대의 주장이나 견해를 파척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B. 청변의 자립논증

중관학파(中觀學派)에서는 그 중기에 바바비베카Bhavaviveka(청변(淸辯),500-570무렵)가 디그나가의 논리학을 채용하여 공의 사상을 추론식에 의해 논증하고자 하였다.

즉 "공을 적절한 논리로 적극적으로 밝혀 낼 수 있다"는 입장에서, 당시 진나(陳那 Dign ga)가 정립했던 신인명론(新因明論)에 의한 정언적(定言的) 추리(推理)형식의 논증법을 구사한 청변(淸辨)은 위의 불호(佛護)를 비판했다.

즉 붓다팔리타 Buddhap lita(불호佛頀,470-540 무렵)가 나가르주나의 (중론(中論))을 주석하면서 귀류(prasa ga, reductio ad absurdum)만으로 논의하는 것을 비난하고 자신은 이른바 정언적(定言的) 추론식(推論式)에 의해 공의 진리를 증명하려 하였다. 이 추론식은 후대자립논증이라고 불려졌기 때문에 바바비베카의 계통을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Sv tantrika)라고 하게 되었다.



C. 스바탄트리카파(派)

이 파는 공사상을 나타내는 데 스바탄트라 아누마나 'svatantr num na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스바탄트라'란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으로 활동한다는 의미이며, '자립(自立) · 자기(自起) ' 등으로 번역된다. 아누마나는 추론(비량) '논증이란 의미이다. 즉 불호는 프라상가의 논법을 써서 상대방의 입론을 파척했지만, 그것은 파척에 머물러 있으며, 적극적으로 공사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청변은 공의 입장을 논리에 의해 적극적으로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용의주도한 논증식을 사용하면, 프라상가(과오(過誤)의 부수(附隨))에 빠지지 않고 공사상을 논증식으로써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논리를 스바탄트라 아누마나(자립적 논증 ·독립의 추론)라고 불렀다. 그리고 불호의 프라상가 논법을 평하여, "인(因)과 유(喩)를 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증식으로 되어 있지 않다. 타인들의 논란에 회답을 하고 있지 않다. 상대방의 과실을 지적할 따름이므로, 불호의 논법을 사용하여 그 주장과 전혀 반대되는 주장이 그대로 성립하는 모순을 낳는다"고 하면서 역(逆)의 논증식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청변은 공을 나타내는데는 프라상가 논법으로는 불충분하며, '독립된 추론'으로 공을 논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입장에서 청변은 용수의 <근본중송>을 주석하여 <반야등론석>을 짓고 불호의 설을 비판하여 스바탄트라 아누마나를 구사하여 중관파의 입장을 천명했던 것이다. 이처럼 청변은 논리를 중시했지만, 공성 자체는 논리를 초월해 있으며, 공성은 논리적 사고가 미치지 못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승의의 입장에서는 논리학을 부정하면서 도 세속(언설(言說), vyavah ra)의 범위내에서는 공성을 논리에 의해 증명하려고 했다는 점에 청변의 독자성이 있다. 이 청변의 사상적 입장이 스바탄트리카 Svatantrika라고 불린 것이다. 이것은 '자재론증파(?在論證派)'혹은 '자립파(自立派)'등으로 번역된다.

이 청변의 입장은 동시대의 진나에 의해 불교의 논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것에 영향을 받아 중관사상에 논리학을 도입하여 성립한것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당시는 일반적으로 논증식에 의해 철학설을 표현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청변의 입장은 월칭의 입장보다도 유가행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나는 480-540년경에 생존했으며, 청변은 490-570년경에 생존했다. 따라서 동시대인이면서도 청변쪽이 약간 후배였다 단, 청변은 '일체는 유식이다'라고 하는 유가행파의 입장을 취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세속으로서는 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를 경량부중관파(Sautr ntik Madhyamika, Madhyamik Sautr ntika)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월칭도 세속으로서는 외계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러나 청변과 월칭은 세속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 여하튼 그들은 승의제를 '언망려절(言亡慮絶)의 세계로 보기 때문에, 그것을 유(有)라고 할 수도 없고 무(無)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 점에서는 청변과 월칭모두 유가행파와는 다르다. 그러나 그후에 나타난 적호(寂護) ntiraksita(725-790년경)는 유가행파의 설에 영향을 받아, 세속으로서는 외계가 무(無)라고 설하지만, 승의로서는 마음도 자성무(自性無)라고 설했다. 유식설은 심(心)(식(識))의 유(有)를 설하기 때문에, 적호의 설은 이 점에서 유가행파와 다르다. 그 때문에 그는 유가행중관파 Yogacar Madhyamika라고 불렸다. 즉 청변은 스바탄트리카파였지만, 적호를 비롯한 유가행중관파에서 보면, 그의 입장은 경량부중관파로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프라상기카파, 스바탄트리카파라는 명칭은 인도불교에서는 없고, 티베트불교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즉 종카파의 <보리도차제론(Lam-rim)에 "설산취(雪山聚)(즉 티베트)에서 불교학자가 중관사(中觀師)를 프라상기카파와 스바탄트리카파로 나누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부톤은 즈냐나가르바(700-760년경) ·슈리굽타 ·샨티라크시타(적호(寂護)) ·카말라실라(연화계(蓮華戒), 740-795년경) ·하리바드라 등을 유가행중관파에 속한다고 하고 있다. 후기불교의 중요한 학자들은 대부분 이중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후기에는 불교가 점차 중관 ·유가의 융합시대로 접어 들었다고 보아도 좋다.



D. 월칭의 청변에 대한 비판

그 뒤 월칭(月稱)은 이 청변(淸辨)을 비판하면서 스승 불호(佛護)를 옹호했다. 그는 귀류논증법의 교묘한 부정 논리를 종횡으로 구사하여 모든 사견(邪見)을 없애고자 했고, 특히 청변계(淸辨系)를 통렬히 공박했던 것이다.

- 자립논증파와 귀류논증파의 분열

이리하여 중관학파는 불호(佛護)·월칭(月稱) 계통의 귀류론증파(歸謬論證派)(Pr sangika,) 와 청변(淸辨) 계통의 자립론증파(自立論證派 Svatantrika,) 로 갈라졌다고 보아진다.

귀류논증파는 달리 필과공성파(必過空性派)라고도 하며 자립논증파는 자의입종파(自意立宗派)라고도 한다.

그 후에는 적천(寂天) 등이 귀류논증파의 계통을 이었고, 관서(觀誓)등은 자립논증파 계통에 속했었다.



E. 귀류논증파의 귀류논증

찬드라키르티 Candrak rti(月稱, 600∼650 무렵)는 모든 것이 공하다고 하는 중관(中觀)의 진리는 논리를 초월한 것이며, 따라서 오직 반론자의 주장을 모순으로 유도하는 귀류만이 중관자에게 있어 유효한 논증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논리학의 중관철학에의 적용을 반대하여 붓다팔리타를 변호하고 바바비베카를 비판하였는데, 이러한 학문적 계통을 귀류론증파(歸謬論證派) Prasa gika 라고 한다. 중관학파 역시 이렇게 자립논중파와 귀류논증파로 분열하기에 이른 것이다.

귀류는 가언적인 간접논증이지만 인도에서는 느야야학파에서나 불교논리학에서 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확실한 추리로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도논리학이 정언적(定言的) 추리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체의 모든 존재는 공이라고 주장하는 중관학파의 입장에서 볼 때 모든 명사(名辭)는 실재성을 갖지 않기때문에 그 논증은 반드시 가언적(假言的)이어야 하지 정언적(定言的) 추론식을 구성할 수는 없다. 바바비베카는 특수한 한정을 가한 후 형식적으로는 다수의 정언적 추론식을 구성하였지만 그것들은 실제적으로 귀류와 같은 가언적인 것이었다.

다르마키르티는 그가 만년에 지은 (바다 느야야V dany ya(논쟁의 논리))에서 순간적 존재를 논증(-찰나멸론(刹那滅論)하면서 가언적 추리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싼타라크시타의 제자 카말라씨라Kama1a i1a도 프라상가 아누마나Prasa gaanum na라고 하는 명칭 하에 귀류추리를 인정하였다. 11세기가 되면 즈냐나쓰리미트라, 라트나키르티, 그리고 특히 라트나카라산티에 의해 가언적추리의 이론이 완성되어 귀류도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중관의 두 파의 분열도 자연스럽게 해소되어 버린 것이다.



F. 경량부중관파 와 유가행 중관파

그리고 한편 자립논증파 계통도, 청변(淸辨)은 유식설(唯識說)에 반대하여 외계의 실재(實在)를 인정하므로 경량부중관파(經量部中觀派)라 불려지게 된다.

반면, 적호(寂護)나 그의 제자 연화계(蓮華戒)는 유식사상을 도입했으므로 유가행중관파(瑜伽行中觀派)라고 말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분열의 시기를 '중기 중관학파'라고 보면, 이 시기의 대표적 학자는 불호(佛護) 청변(淸辯) 월칭(月稱) 관서(觀誓) 적천(寂天),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 Praj karamati(950∼1030년 경)도 중기에 넣기도 한다.



후기(後期) 중관학자(中觀學者)

위와 같은 중기 중관학파에게서는,

중론(中論) 주석을 기본하고 있는 점과, 논증방법의 상위에 따라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와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로 나누어진 점, 그리고 유가유식학파에 대한 강한 대항의식을 가졌던 점 등의 특징이 보인다.

그러나 그 후의 중관학자들에게서는, (1)용수를 기준함에 적지 않게 법칭(法稱)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점, (2) 대부분 자립논증파에 속하는 점, 그리고 (3) 적호(寂護)나 연화계(蓮華戒)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경량부(經量部) 및 유식파(唯識派) 등을 중관파의 입장에서 종합했듯이 유가행파(瑜伽行派)의 학설을 흡수했던 특징이 보인다.

이 후기에 속하는 학자들은 J nagarbha(8c.), 적호(寂護), 연화계(蓮華戒)(Kamalasita, 745∼795년경) , Vimuktisena(8c.), Haribhadra(800년 경) 등을 들 수 있다.



중관학파의 영향

이들은, 대승불교 초기부터 인도불교의 최후(13C경)까지 존속하여, 인도불교의 여러 학파 중 가장 오랜 역사와 가장 많은 문헌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sarv stiv da)나 경량부(經量部)(Sautr ntika) 그리고 유가행파(伽行派)(Yog c ra) 등의 불교학파를 종합흡수하는 사상과 철학체계를 완성하게 된다.

이들의 학설(Madhyamak dar ana)은 중원대륙(中原大陸)으로 전파되어, 한자(漢字)문화권(文化圈)에서 찬란히 꽃피을 대승 원융무애(大乘 圓融無碍)사상의 원천으로서 삼론(三論)교학을 형성시키거나, 천태(天台)· 화엄(華嚴)·선(禪)·정토(淨土)·밀교(密敎) 등의 현란한 교학 수립 전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티베트불교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또 이들을 바탕한 삼론사상(三論思想)은 일본에 처음 불교를 보급하고 남도불교(南都佛敎)의 첫 종파를 형성시켰다.



5 중관학파의 학자들

이하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중관학파를 구성하는 학자들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저서등을 중심으로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初期) 중관학자(中觀學者)

㉠ 용수(龍樹) : 대승불교의 기반을 확립 심화했다. 저서(著書)(한역장경에는 20부 154권, Tibet장경에는 95부) 중에는, 『중론송(中論頌)』이나 『십이문론(十二門論) , 『육십송여리론 『회쟁론(廻諍論)』, 등과 같은 대승공사상에 관한 철학서가 있다.

대승보살의 실천수행법을 설명하는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 『보리자량론 (菩堤資糧論)』, 그리고 올바른 정치와 왕도 및 그 덕목(德目)을 밝히는 『 보행왕정론(寶行王政論) , 권계왕송』 등이 있다. 그의 많은 저서 중 주저(主著)는 중론송이다. 다른 저서에 이것의 내용이 번번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 용수가 후세에 끼친 영향

용수는 팔종(八宗)의 개조라고 말해지며, 후세의 불교에서 용수를 종조(宗祖)에 포함시키는 종파가 많다. 이것은 그만큼 용수의 학문의 폭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용수는 중관파 Madhyamika의 개조라고 하는데, 이것은 <근본중송>에 기초한 학파이다. 동시에 이것은 <반야경>의 공사상을 조술한 학파이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제바의 <백론>을 추가한 <중론> · <백론>· <십이문론>을 소의로 하는 '삼론종'이 되거나, 여기에 다시 <대지도론>을 추가하여 '사론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천태종의 사상으로도 발전해간다. 인도에서도 중관파는 유가행파와 더불어 후세까지 오래도록 번영했다. 그러나 중관파에는 화엄 계통의 사상은 계승되지 않았다. <십주비바사론>이나 <대승이십송론> · <보리자량론> 등에는 화엄사상이 설해져 있다. 이들은 공사상과 아울러 무착이나 세친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밀교와도 사상적으로 관계를 맺어간다. <십주비바사론>에 (이행품)이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인데, 여기에는 아미타불의 신앙이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정토교의 원류가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용수의 사상은 다방면으로 발전해가지만, 직접적으로는 중관파로 발전하는 것이다.

㉡ 제바 ( rya -deva, 성천(聖天), 170∼270년 경)

백론 (S.atasastra, 2권 20품 50게)과 『사백론』(Catuh astra, 16품 400게), 『백자론() 및 그 주(註)등을 지었다. 중론송에 가르쳐진 파사적(破邪的) 활동에 힘썼다.

<제바보살전>에 의하면, 제파(提婆) ryadeva는 남인도의 바라문 출신이라고 하는데, <사백론(四百論)>에 대한 월칭의 주(註)에 의하면, 제바는 세일론 출신으로서 왕자였는데, 왕위를 포기하고 출가하여 남인도로 와서 용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대당서역기> 권10에는 제바가 주리야국(珠利耶國)(다냐카타카와 칸치푸라 사이에 있는 나라)의 성 서쪽에 있는 가람에 머물면서 아라한과 논의했다고 한다.

㉢ 라후라발타라(羅喉羅跋陀羅)(R hulabhadra, 200∼300년 경 )

: Ppraj paramlt stotra (찬반야바라밀게, Saddharmapun,dar kastava (묘법연화찬(妙法蓮華讚)) 등지음.

티베트의 전승에는 라훌라바드라가 용수의 스승이었다는 설이 있다.

㉣ 청목(Pin.gala, 4c. 초) 중론송을 주석(註釋)하였다. 나집(羅什)삼장에 의해 그 게송과 해석문(장행석(長行釋)이 함께 '중론(中論)'이라는 이름으로 한역되어, 중론송의 주석서로는 가장 오랜 것으로 제일 많이 읽혀지고 있다.

㉤ 바수(婆藪)(Vasu) : 제바의 백론(百論)을 해석찬 백론소(百論疏) 9권을 지었다.

중기 중관학자들

㉠ 불호(佛護 Buddhap litaa, 470∼540년 경) :

귀류논증 형식으로 중론송 일부를 해석하여 (티벳역으로만 현존) 중관사상을 부흥시켰다.

㉡ 청변(Bhavaviveka, Bhavya, 490∼570년 경)

중론송에 대해 주석했다. 이것은 한(漢)·장(藏) 양역(兩譯)되어 현존하는데 그 한역본이 반야등론석(般若燈論釋)이다. 이 밖에 독자적인 저서로 『중관심론송(中觀心論頌)』(범어 티벳어 모두 존재한다.) 『사택염(思擇炎)』 (중관심론주(中觀心論註), 장역(藏譯),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 등을 찬술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는 자립적인 정언적 논증형식(Svatantr anum na)을 구사하여 불호를 비판했다.

㉢ 월칭(月稱)(Candrakirti, 600∼650년경 ) :

Prasannapad 라는 유일한 중론송 범어 주석서를 남겼다. (티베트역으로도 되어 있음). 그가 청변(淸辨)을 공박하고 스승 불호(佛護)를 옹호함으로써 중관학파의 분열이 뚜렷해졌다.

『십지경(地經)』의 십 바라밀(波羅蜜)에 따라 중관사상을 밝혔고, 중관불교입문서인 『입중론 즉 『Madhyamak vat ra(장역(藏譯)뿐)을 짓거나, 오온론(五蘊論) (Pa caskandaprakaran,a), 사백론(四百論), 공칠십론(), 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 등에 주

석했다.

㉣ 관서(觀誓 Avalokitavrata, 7c) : 불호(佛護)의 중론석 비판, 청변의 반야등론(般若燈論)을 주석하는 반야등론광석(般若燈論廣釋)』(Praj pradipat ka, 장역(藏譯)뿐)을 지어 인도철학이나 불교 각 학파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 적천(寂天)( antideva, 650∼750년 경) : 육바라밀(六波羅蜜)을 기준으로 보살의 학행(學行))에 관한 교훈을 모은 『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 (S'iks samuccaya,학처요집(學處要集), 27 게와 그 주석 및 경증(經證), 범장본(梵藏本) 현존)과 초심자에게 보살행을 밝혀 주는 『보리비결(菩提翡潔)(Bodhicary vat ra, 입보리행론, 10품(品) 900여게, (범어본 티벳본 현존), 그리고 『경집(經集)』(S trasamuccaya) 등 지었다.

㉥ Praj karamati(950∼1030년 경) : 위의 『입보리행론 』을 주석한 『입보리행론 세소(細疏)』(Bodhicaryavatrapanjika, 범본 현존)를 지어 경량부나 유식파 비판하였다.



후기 중관학자

㉠ J nagarbha(8c.) :

적호(寂護)의 스승으로 『이체분별론(二諦分別論)』(Satyadvayavibha ga, 46게, 티벳역뿐임 )이나 『이제분별주(諦分別註)』(satyadvayavibha g v t 티벳역뿐임) 및 『유가수습도(瑜伽修習道)』(Yogabhavanamarga, 티벳역 뿐임.) 등을 지었다..

㉡ 적호(寂護) ' ( antaraksi 728∼788년 경) :

외교제파(外敎諸派)와 유부 및 경량부 등의 이론을 소개 비판하는 『진실요의(眞實要義)』(Tattvasa graha, 3645게, 범장본 현존)와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Madhyamak la k ra) 및 이에 대한 자주(自註)(∼vrti)를 지었고, 스승의 『 이제분별론』을 주석하였다.

싼타라크시타(725-784무렵)는 인도불교사에 있어서 가장 해박한 지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바바비베카 학통(學統)에 속해 있었지만 다르마키르티의 인식론과 논리학에 정통하였으며 유식학파의 장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유식의 이론을 중관교학의 일부로서 수용하였기 때문에 유가행(瑜伽行) 중관학파(中觀學派)라 불려지기도 하였다. 싼타라크시타는 자신의 철학체계를 유부(有部) ·경량부(經量部) ·유식학파(唯識學派)의 이론에서 최고의 진리인 중관(中觀)으로 향해 을라가는 단계로서 설정하였는데, 말하자면 그는 불교의 4대 학파와 지식론학파의 이론을 종합하였던 것이다. 那爛陀寺(梵 Nalanda)의 학자로 靜命大師라고도 칭한다..

㉢ 연화계(蓮華戒)(Kamalasita, 745∼795년경) :

스승 적호의 『진실요의(眞實要義)』와 『중관(中觀) 장엄론 』에 대한 주석서인 『진실요의세소(眞實?義細疎)』(범어본 티벳본 현존)와 『중관장엄론세소 (中觀莊엄론 세소) 』(티벳역뿐)를 저작했고, 『중관명(中觀明)』(Madhyamak loka)와 『진실명』(Tattv loka) 그리고 『 일체법무자성논증』 등 독자적 저서 남겼다.

㉣ Vimuktisena(8c.) :

Haribhadra의 스승으로서 , 이만오천송 반야경(般若經)을 해설한 『현관장엄론(現觀莊嚴론)을 주석하는 『현관장엄론주(現觀莊嚴論註)』(Abhisamay -la k ra -vrti)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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