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S 도솔산 보광사/온라인 법회

형제가수 송인효 송인상: 백중영가를 위한 기도문 & 빛으로 가소서....

O_sel's Archive.... 2025. 9. 12. 16:28

아래는 가수 송인효님의 페이스북 게시 글입니다.

'네 종교가 무엇이냐'
이 질문에 먼저 탈랄 아사드의 말을 빌린다.
- 종교라는 보편적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 기독교적 맥락에서 발명된 범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종교가 뭐냐 또 묻는 다면
달라이라마의 말을 빌린다.
-“나의 종교는 친절입니다. 사원이 필요 없고, 복잡한 철학도 필요 없어요. 우리의 뇌와 마음이 사원이죠.”
작년 겨울, 다급한 전화를 받고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다.
따뜻한 방바닥에서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주변에서 들리는 우는소리에도 기척이 없었다.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표정에서 슬픔도 기쁨도 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꿈을 꾸시는 듯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표정도 그랬다.
 
축 늘어진 할머니의 몸이 들것에 실려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열다섯에 대전으로 시집온 할머니는 8남매를 낳고 3명의 아들과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중에 어느 아들은 시각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어느 아들은 스님이 되어 출가를 했다. 그 무거운 삶속에서 할머니는 남몰래 푸념을 늘어놓으시다가도, 아이고 다리야 하시며 천천히 일어나 부엌에서 어느새 김치찌개를 만들어 손주들에게 내어주시고, 약도 꼬박꼬박 챙겨드시며 주어진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셨다.
 
어찌 보면 불행하고 가난한 삶이라 할 수 있지만, 할머니는 그 삶을 피하려 하지 않았으며, 양반집에 시집온 규수라는 자존감을 지키고 품위를 잃지 않으셨다. 그 품위는, 아무리 가난해도 이웃과 손님에게 먼저 내어주고 덕을 행하는 실천과 정돈된 살림살이, 자식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였다.
 
그런 할머니가 또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제사였다. 개신교를 믿는 식구분들이 할머니께 전도를 하거나 함께 교회에 가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지만, 제사만큼은 끝내 포기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시어머니를 어머니로 생각하고 의지했다 하셨다. 그 양반집에서 얼마나 많았을 제사를 치렀을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두 여성은 침침한 밤이 될때까지 삯바느질을 하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런 할머니에게 제사는 마땅한 도리이기도 하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기억하고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식이기도 했다.
 
나는 어릴적 부터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제사일을 함께 했는데, 집에서 기른 채소들을 가져와 제사상에 올리고 식구들끼리 나눠먹고 웃으며 함께 만나는 시간이 그저 행복했다. 그런데 머리가 여문 어느 시점에는, 집안의 여자들이 고생해야하는 이 짓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제사일을 주로 도맡아 하시는 큰집 어머니와 누나들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죄송스러웠다.
 
그때 나는 할머니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는 불만만으로 제사가 싫었다. 할머니라는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의 무게와 방식, 그리고 그 배경을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견주어보니, 감히 그것을 내가 바꾸려 했던 것은 큰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문명이나 사상들이 들어올 때, 이미 우리에게 있던 정신적 유산과 삶의 아름다움이 존중받지 못하고 소외되게 하는 것과 같다고 여겨졌다.
 
산업화, 근대화, 문명화의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 없이 ‘바꾸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니, 물질적인 풍요를 얻었을지라도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적 불행과 공허함과 대립은 더 커진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제사일을 하는것을 할머니의 삶에 공감하는 일,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생각의 전환이 있고 나서 부터는 기쁜 마음으로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고생이란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도맡아 해오신 큰집의 어머니와 누나들의 마음 또한 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할머니가 '내가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치르면 좋을까' 하고 내게 물어보셨다. 나는 그저 할머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그동안 살아오신 방식을 생각하면 전통방식이나 불가의 방식이 자연스러울 것이었다. 그 질문은 개신교를 믿는 친척분들을 의식하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당신의 죽음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당신께서 살피신 것이었고, 형제들이 이 문제로 싸우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로 기어코 그날은 오고야 말았다.
 
스님이신 삼촌은 장례식에 오지 못하셨다.
본인이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형제들 간의 종교 문제에서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으셨던 것이었다.
장례는 개신교의 방식에 맞추어 진행하였다. 그런데 장례 이후 할머니의 유해를 어떻게 모실 건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어른들 간에 마찰이 있었다.모든 장례 과정을 개신교 방식으로 따랐는데 납골당 만큼은 할머니의 의사와 너무 다른 것 같아, 납골당을 주장하는 개신교 분들의 의견만큼은 따를 수 없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마땅한 대안이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생전에 당신의 장례 문제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상황을 내다보고 형제들 중 누군가가 서운해할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방식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었구나 싶었다.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절에서 우리 아버지를 모셨던 것처럼 할머니를 49일간 모시고 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도 할머니를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난 아버지의 죽음 이후 49일간의 기도 시간이 너무도 값진 경험이었기에 그 시간을 또 갖고 싶었다. 다행히도 개신교 분들이 넓은 마음으로 그것을 허용해 주셔서 할머니를 절에 모시게 되었다.
그렇게 십자가가 세겨진 할머니의 유골함을 모시고 절에 왔다. 제주도에 계신 삼촌 스님도 오셨다. 십자가가 새겨진 유골함이 절에 모셔진 것을 보고 스님은 '할머니는 개신교에서도 불교에서도 기도해 주시니 좋은 곳에 가시겠구나' 하셨다.
 
스님 삼촌은 티베트 불교 승려이신데, 티베트 불교의 중심이신 달라이라마께서도 “교리나 제도보다는 삶 속에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하셨듯, 삼촌 역시 십자가가 새겨진 유골함을 전혀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 주셨다. 스님의 주관으로 49일간 함께 기도를 했고, 그동안 궁금했었던 불교철학 공부, 또 티베트 사자의 서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날마다 영가에게 다르게 나타나는 환영의 빛속에서 유혹과 집착의 빛이 아닌 자유의 빛으로 안내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들어 매일 할머니께 불러드렸다.
 
49일간의 기도가 끝나고 할머니의 씩씩한 일상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후에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어느 자리에서 이런 경험을 나눈 적이 있었다. 저마다 주변의 죽음을 경험했던 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너무 이른 나이의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장례식장, 연명에 치중된 병원에서의 고통스러운 죽음.. 내가 경험한 주변의 죽음이 가장 슬픈 일이라 여겼던 한구석의 마음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조차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 우울함을 가진 채로 굴러가야 하는 바쁜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크게 실감했다. 종교라는 제도가 현대 우리의 삶에 필요코자 한다면, 우리 종교를 믿어라 또는 가르치려 들게 아니라 그저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먼저가 되면 좋겠다.
 
49재 기간에 할머니를 위해 동생과 함께 만들었던 노래 중 하나를 백중날에 다른 영가분들을 위해 불러달라고 어느 자비로운 스님이 요청해 주셨다.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써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운 내 노래를 누군가 깊이 들어주는 일인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자리에서 노래할 수 있게 되어 벅찰만큼 기뻤다.
 
그 노래엔 불가의 방식으로 할머니를 모셨다 보니 나무아미타불 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무아미타불은 빛의 부처님께 귀의한다, 그것은 끝없는 지혜와 자비의 본질에 나를 내려놓고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라는 것이다.
깊고 컴컴한 바닷속과 같은 두려운 미지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영가에게 두려워 마시라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슬퍼말고 즐겁게 여행하시라고 응원하고 위로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이별의 고통을 경험하고 집착으로 괴로워 하며, 어느날 갑자기 불행이 닥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계속 죽음을 향해가는 나 또한 바르도, 삶과 죽음 사이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이가 어떻게 앞을 보지 못하는 이를 이끌 수 있느냐고도 말한다. 맞는 이야기다. 나는 두려워서 노래를 부른다. 내 앞도, 내 자신도 보지 못한 채였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는 큰 사랑으로 이 자리를 열어주셨다. 그 사랑 덕분에 부끄러운 노래를 마음 깊이 들어주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며, 삶과 죽음 사이의 바르도 속에서 빛을 찾는다.
할머니가 무거운 삶 가운데에서도 아픈 다리로 일어나 김치찌개를 끓여주셨던 것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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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송인효 소개

 

송인효는 개인의 삶의 경험과 내면의 성찰을 음악적 언어로 기록해 나가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그의 노래는 특정한 장르적 기교보다는 직접 살아낸 경험에서 비롯된 감각과 진솔한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는 일종의 ‘경험적 작가주의’로 읽힌다. 담백한 멜로디와 솔직한 가사,

그리고 절제된 표현 속에서 그는 청중에게 삶을 마주하는 또 다른 시선을 제안한다.

 

▶️ https://youtu.be/ENV7wmuquxI?si=OcrhDNQOp1qlXs57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ong_inhyo

 

🪷 싱어송라이터 송인상

노래를 만든다는 것은 내가 지나온 길을 지도로 그려놓는 일과 닮았습니다.

노래 안에는 내 삶의 조각들, 소중한 기억과 감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만든 음악은 나만의 보물지도가 됩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F6heihypoTE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ong_insang 

 

 

📢 유튜브 채널: 형제의 길 / Songs o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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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길 / Songs on the road

여행하는 두 형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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