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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밀교의 분파 (by 이태승)

티벳 불교와 문화..../by Scrap

by O_Sel 2011. 12. 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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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밀교의 분파


* 글쓴이 : 이태승 (동국대 강사)


티베트 불교를 특징짓는 하나의 특색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곧 불교의 종파적 전개이다. 그리고 이 종파적 전개는 인도나 중국과는 달리 티베트 각지역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씨족 집단과 사원이 밀접히 결부되어 전개해 가는 특색을 보이고 있다.

티베트에 등장하는 최초의 종파는 아티샤의 사상을 잇는 카담파이지만 이 카담파가 성립하는 11~12세기를 중심으로 다수의 불교종파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불교 종파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카담파를 비롯해 카규(Kagyu)파, 닝마(nyingma)파, 사캬(sakya)파, 겔룩(Gelug)파를 들 수 있다.
카담파는 아티샤의 제자인 돔톤이 라뎅에 밀교도량을 세움으로서 시작된 것이다.

이 돔톤의 제자들 가운데서 밀교의 실천을 중시하는 敎誡派와 현교중심의 敎說派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카담파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티샤를 라사에 초빙하여 그의 제자가 된 곡.렉폐셰랍이 1073년 상푸寺를 세운 것이다.

카담파 중 상푸寺에 속하는 학지를 秘訣派라고도 부르지만, 이 절은 렉페셰랍의 조카인 로덴셰랍(1059-1109)과 차파 최키셍게(1109-65)가 座主이었던 시대에는 전티베트를 대표하는 학문寺로서 이름을 떨쳤다. 로덴셰랍은 캐시미르에서 17년간 공부한 명번역가로 알려져 있으며, 논리학과 여래장사상, 중관사상 등의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차파의 학문적 명성도 높았는데 특히 차파는 중관파 가운데 "자립논증파"를 중시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 차파의 학문적 성과를 잇는 상푸사의 교학은 후에 게룩파의 학문사를 비롯해 거의 모든 티베트 사원의 모범이 되었다.

사캬파는 1073년에 곤촉겔포(1034-1102)가 사캬 지방에 절을 세워 일족이 그곳을 거점으로 포교한 것에 유래하는 것으로 씨족 교단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파는 <헤바즈라탄트라>를 근본경전으로 중시하고 교리적으로는 유식적 색체가 짙은 "唯心"을 강조하며 수도의 결과를 중시해 부처와 범부가 일치하는 경지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 파에서는 직계인 쿤가닝포(1092-1158)를 비롯해 소남체모(1142-82), 닥파겐첸(1147-1216), 사캬판디타(1182-1251), 팍파(1235-80)를 5대학자로 간주해 존경한다.

그러나 차파로부터 배운 소남체모부터는 현교중시의 경향이 생겨나 대학자 사캬 판디타(사팡)의 교학이 형성되는 바탕이 되었다. 사팡은 회교도의 난을 피해 1204년 티베트에 들어온 비크라마실라 사원의 대학자 사카슈리바드라 (1127-1225)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수학하여 여러가지 논서를 지었다. 특히 그의 논리학서인 <正理寶藏>은 당시 우세하였던 차파의 논리학설을 압도하여 티베트에 다르마키르티의 논리학서를 보급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사팡은 티베트의 여러 사원이 몽고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처했을 때 티베트의 대표로 몽고왕과 회담을 하였다. 특히 그의 외손자인 팍파는 1270년 元 쿠빌라이의 스승이 되어 티베트 대리 통치를 위임받기도 하였다.

또한 이 팍파는 몽고의 八思巴문자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같이 사캬파는 元朝를 배경으로 후에 카규파가 정치적 힘을 얻기까지 티베트의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카규파는 聖포(990-1139)를 개조로 하는 파와 마르파 (1012-96)를 출발로 삼는 두 파가 있다. 특히 마르파는 인도에 유학하여 나로파로부터 "나로6법"을 배우고, 마이트리파로 부터는 "大印"의 비법을 배웠다고 한다. "나로6법"이란 심신의 훈련을 비롯해 마음을 타인에게 옮기는 등의 여섯가지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대인"의 비법과 함께 카규파의 중요한 교리를 이룬다. 마르파는 부인을 두고 세속적인 삶을 영위한 것으로 알려지지만 그에게는 종교시인으로 유명한 미라래파(1040-1123)라는 제자가 있다.

이 미라레파의 생애는 그의 자서전적인 詩인 <十萬歌謠>와 <미라레파전>에 묘사되어 널리 티베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미라레파의 주요제자 가운데 감포파(1079-1153)가 있으며, 그는 미라레파로부터 "나로6법"과 "대인"의 비법을 배우고 1121년 감포에 승원을 건설하여 제자를 양성했다. 감포파는 본래 카담파에서 구족계를 받은 인물로 그의 저술은 카담파의 "道次第" 설과 카규파의 "대인"설을 통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감포파 이후 카규파는 카담파의 현교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감포파의 제자인 뒤숨켄파(1110-93)와 팍모두파(1110-70)로부터 각각 카르마派와 팍모두派가 생겨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유력했다.팍모두파 계통인 야르룽 지역의 랑씨는 1354년 팍모두파 왕조를 탄생시켜 그후 1세기정도 티베트를 지배했다.

또한 카르마파는 한 씨족에게만 의존하지 않는 活佛相續制라는 독특한 교단유지법을 만들어 내 교단의 세력을 증진시켜 강력한 종파를 만들었다. 이 카르마파는 정치적으로도 강력하게 되어 후에 게룩파가 정치적 실권을 장악할 때까지 치열한 싸움을 전개해 간다.

닝마파는 "古派"란 말이지만, 이는 前傳期에 번역된 탄트라에 의지한다는 의미로 린첸상포 이후 후전기의 신역 탄트라에 의존하는 여러학파(사라마파라고도 함)와 구별된다.

닝마파는 전전기의 파드마삼바바를 개조로 받들지만, 실제 교단으로 성립된 것은 11세기 이후의 일이다. 교리적인 면에서는 인도밀교와 중국선이 융합된 형태로 本覺論, 修道無用論 등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大究境"이라 일컬어지는 최고의 단계가 성취해야 할 목표로서 이 상태가 곧 성불의 단계라고 주장하였다.

닝마파는 교리적인 이유로 타파로부터 배척받았지만, 14세기 롱첸파 (1308-63)등의 사상가와 나와 "대구경"등의 교의를 체계화하였다.

게룩파는 티베트에 최후로 나타난 종파로서 후에 달라이 라마를 수장으로 하여 티베트 불교를 대표할 정도의 최대 종파로 성장한다.

특히 게룩파는 간텐寺, 데풍寺, 세라寺, 타시룬포寺의 소위 4대학문사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발전을 이루고 티베트 불교학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4대 학문사 중 타시룬포寺만이 총카파 사후 건립된 것으로 다른 셋은 총카파 당시부터 건립되어진 것들이다.따라서 이들 학문사에는 총카파가 생전에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카담파의 상푸寺 영향이 다수 남아있고 특히 현교의 교육과정에 있어 그 영향은 두드러진다.

즉 因明學.般若學.中觀學.律學.俱舍學의 교육과정은 이런 상푸사의 영향을 보이는 것이지만, 이것이 오늘날 티베트 불교학의 튼튼한 초석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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