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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탄트라 (by 조환기)

티벳 불교와 문화..../by Scrap

by O_Sel 2011. 12. 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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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탄트라



글쓴이 : 조환기(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출 처 : 월간 『붓다』 2002년 3월호 (통권 제 169호)


티벳의 링 린포체 왕사(王師)께서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는 달라이 라마의 스승의 환생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환생한 왕사의 사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불교의 토양인 인도에서는 윤회관(輪廻觀)이 모든 사상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 윤회는 고통스러운 존재들의 본모습을 여실하게 드러내주는 것이다. 부처님도 윤회에 대해서는 종종 말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삶의 윤회에서 해탈하는 것이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목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티벳에서 환생이 등장하게 된 것은 카르마 파(Karma pa)를 통해서이다. 티벳 카르마파의 흑모파의 스승이 1283년에 죽었을 때, 어떤 아이를 그의 환생으로 간주하여 다시 한 번 그의 종교지도자이면서 정치적 리더로서의 지위를 누리도록 훈련하였다. '환생한 라마'라는 이 현상은 그후 다른 학파들*도 채택하였다. 이것이 티벳과 몽골 불교의 한 특징이 되었다.

이러한 환생이 이루어지는 것은 수행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티벳에서는 환생하는 수행자는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의 화신(化身)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환생이 이루어지는 것은 중생에 대한 한없는 자비의 결과이고 그것이 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승 불교를 따르고 있는 티벳 불교에서는 중생들의 근기를 하근기 중근기 상근기로 분류하고 상근기의 보살들을 위한 수행의 탄트라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수행의 길이 불교적 요가(이를 불교적 요가라고 함은 인도철학파의 하나인 요가 철학과 다른 불교의 요가로 구분하기 위함이다. 이 불교적 요가는 유식학의 근간이 된다)에 의한 탄트라(Tantra)이다.

이 탄트라의 수행에 있어서 '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고, 이 보리심은 다른 중생들의 고통에 대한 깊은 자비심으로부터 나온다.

이 보리심을 각성시키는 원인과 탄트라 수행법은 경전들마다 약간씩 다르다. 인도와 티벳 불교에서는 주의 깊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마침내 보리심을 일으키게 되는 두 가지 명상 수행법을 언급하고 있다.

첫번째 명상은 '여섯 가지 원인과 하나의 결과'라고 부른다. 명상에 앞서 수행자는 모든 중생들을 향한 평정 혹은 평등의 감정, 즉 '편견 없는 태도'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 명상 수행자는 적, 친구, 그리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느낌을 들게 하는 사람을 관상(觀想)한다. 이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는 동등하다.

끝없는 환생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친구, 적, 그리고 중립적인 사람을 사귀었다. 이들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방해하기도 한다. 원래부터 친구이거나 원수인 사람은 없다. 현생에서도 이들은 적, 친구 혹은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갖지 않게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향한 평정, 평등의 감정을 갖는다.

보리심을 발전시키기 위한 두번째 명상은 '나와 남을 바꾸는 것'이다. 우선 나처럼 모든 중생들도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피하려는 점에서 같다고 명상한다. 내가 고통을 겪는 것을 싫어하는 것처럼 다른 중생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자 하면 그들의 고통을 없애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나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는 숫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에, 언제나 나보다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 합리적이다. 처음에는 중생의 고통에 정신을 집중하고, '나'만큼 소중한 중생들의 아픔을 인식하고, '나보다' 소중한 중생들의 고통을 각인하는 것이다. 명상 수행자는 위에서 언급한 평등 명상을 반복해야 한다. 이때 그는 다른 중생보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행위에 포함되어 있는 결점과 문제점을 명상한다. "세간의 모든 고통은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것에서 유래한다. 세간의 모든 행복은 다른 중생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에서 발생한다."

이 탄트라 수행의 결론은 '나와 남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내가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은 중생들이 나를 활용하는 것, 중생들에게 봉사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서원과 결심이 자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자신의 마음 아주 깊은 곳으로부터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탄트라를 수행하면서 수행자는 자신의 눈 앞에 여러 가지 상태나 6도 윤회세계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떠올린다. 또한 숨을 들이쉬면서[吸] 중생들의 고통을 떠안고, 숨을 내쉬면서[呼] 중생들의 행복을 책임진다고 상상한다. 이것은 중생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행복으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이처럼 고통받는 중생들을 두고 윤회에서 해탈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욕망의 소산이므로 대승의 보살 정신과는 배치된다. 따라서 무한한 중생들이 존재하는 이상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보살의 환생도 무한히 계속 되어야 한다. 마치 지장보살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두고 성불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티벳 불교에서 환생은 중생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의 발로이고, 이것은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실천하는 삶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비심의 연장선상에서 환생이라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환생이 과학적으로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에 중점을 두어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라, 무한한 자비심의 보살 정신의 실천이란 측면에서 환생을 보아야 할 것이다. 종교가 인류의 정신 문화에서 필요한 이유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경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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