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티베트 문화와 불교 (by 주민황)

티벳 불교와 문화..../by Scrap

by O_Sel 2011. 12. 14. 10:10

본문

티베트 문화와 불교


글쓴이 : 주 민황
출 처 : 월간 『샘이 깊은 물』 12월호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티베트는 신비의 땅으로 불린다. 주변국가와의 왕래를 거부하는 자연환경에 둘러싸여서 자신의 세계를 가꾸어 온 티베트는 물질문명에 압도되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올 정신세계를 간직하고 있다. 가난하고 비참한 환경 속에서도 낙천적인 웃음과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은 티베트의 정신문화가 지니고 있는 힘이다.

티베트 사람들의 핏줄에는 태어날 때부터 불교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티베트의 문화란 불교문화라고 할 만큼, 티베트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는 불교가 스며들어 있다. 그이들을 여유 있고 자비롭게 만드는 티베트 불교의 성격은 어떤 것일까, 과연 다른 나라의 불교와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티베트 불교는 인도의 정통불교를 이어받았다고 말한다. 티베트 불교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와 밀교가 함께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자기들의 불교가 인도 불교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가 다른 나라의 불교와 겉으로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티베트에 불교가 처음으로 들어갈 때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교와 뵌교의 싸움

티베트에 불교가 처음 소개된 것은 송짼감보 왕 때의 일이다. 작은 부족들이 흩어져 있던 티베트 고원을 통일해서 티베트 왕국을 처음 세운 이가 송짼감보였다. 그 당시의 티베트 사람들은 전투를 즐기던 유목민족이었고 무속신앙의 일종인 "뵌교"라는 토속 종교를 믿고 있었다. 티베트의 너른 자연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미약한 존재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자연의 어디에나 신들이 있다고 믿었다. 산마다 산신들이 있고, 강에는 강의 신이 있고, 우물에는 우물의 신이 있다고 믿는 원시적인 자연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뵌교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고, 액을 막는 무속신앙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로부터 전해진 불교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바로 수용될 수가 없었다. 송짼감보 왕의 시대에는 티베트가 이웃인 중국과 네팔과 전쟁을 벌이곤 했다. 그래서 평화조약의 조건으로 네팔 공주와 중국 공주가 몇 년 사이로 송짼감보 왕과 혼인을 했다. 그 두 공주는 혼인예물로 불상도 모셔왔다. 그 불상들을 모셔놓기 위해서 티베트에서는 최초로 법당을 세웠지만, 아직 불교 교리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왕가를 중심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다가 팔 세기 후반에 이르러 티쏭데짼 왕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인도의 고승들을 초청해서 불교 교리를 전파하고, 나라에서 관리하는 번역청을 만들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티베트어로 번역하고, 불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다. 왕은 불교 사원들을 많이 세우고 티베트 승려들을 배출하여 경제적으로 충분한 후원을 해 주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티베트의 민간신앙이었던 뵌교의 저항은 강력했다. 뵌교도들은 불교에 대항하기 위해서 불교경전을 모방해서 뵌교의 경전들을 편찬한 뒤에, 불교에서 자기들의 경전을 모방했다고 선전했다. 그래서 티송데짼 왕은 뵌교의 경전들을 모두 거둬들여 불태워 없애도록 했기 때문에 뵌교도들은 일부 경전들을 몰래 숨겨놓았다고 한다. 어쨌든 왕가가 강력하게 불교를 후원했기 때문에 뵌교는 음지로 물러섰다. 그러나 당시의 티베트 민중은 불교의 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때까지 자기들에게 익숙했던 뵌교의 의례들을 좋아하고 의지했다.

티베트에 처음 들어온 불교 문화는 티베트 민중이 좋아하는 요소들에 동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티베트 점성학의 바탕에는 고대 뵌교의 점성학의 요소가 들어 있다. 티베트의 불교종파들은 뵌교의 점성학에 쓰였던 용어들을 불교 사상에 맞는 용어로 바꿔서 사용하게 되었다. 그 밖에도, 여러 약초와 나뭇가지를 태워 신에게 향기와 연기를 바치는 의식이나 실로 엮어서 만든 집 모형 속에 악신들을 가두어놓고 장애를 막는 의식을 비롯해서, 티베트 불교와 다른 나라 불교가 구별되는 여러 불교의례들은 모두 뵌교 의식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것들이다.

티쏭데짼 왕은 티베트의 첫 불교사원인 삼예사원을 세웠고, 중국 불교와 인도 불교 학자들 사이에 대 토론을 벌이게 한 뒤, 인도 불교를 선택했다. 중국 불교는 "선"의 일종으로서,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 부처님의 경지에 오른다고 주장했고, 인도 불교는 여러 가지 수행의 단계를 밟아감으로써 점차로 무지를 없애고 부처님의 경지에 오른다고 주장했다. 아직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던 티베트 왕이 인도 불교의 손을 들어준 것은 단순히 수행방법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앙아시아의 영토를 놓고 서로 경쟁하던 중국이 티베트를 넘보기 시작한 것을 눈치챈 왕이 중국의 영향을 견제하기 위해서 중국과 거리를 두고 인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티베트는 인도 불교를 근본으로 해서 수행법과 교리들을 배우게 되었다. 구 세기 전반의 랄빠짼 왕(본명은 띠쭉데짼)도 불경 번역 사업을 더욱 활발히 하고, 사원과 승려들에게 온갖 특혜를 주었다. 랄빠짼이라는 이름은 "긴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이의 별명이었다. 그이가 자신의 긴 머리를 길에 늘어뜨린 다음에 승려들이 그 머리를 밟고 가게 할 만큼 승려들에게 존경심을 표했다고 하는 데서 붙은 별명이다. 랄빠짼은 사원들과 승려들에게 지나칠 만큼 많은 후원을 해 주었기 때문에 국가는 재정과 병력이 흔들릴 정도가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영토도 많이 잃어버렸다. 백성들의 원성이 커지자 뵌교의 잔존세력들과 결탁한 귀족들은 랄빠짼 왕을 암살하고 그이의 형인 랑다르마를 왕으로 앉혔다. 그이는 사원들을 모두 파괴하고 승려들을 환속시키거나 백정으로 만드는 들 하여 극심한 불교탄압을 자행했다. 그러나 그이 또한 한 불교승려의 손에 암살되었다.

랑다르마 이후 백 년 동안 티베트에는 공식적인 사원이나 승려들이 없었다. 랑다르마 또한 별명인데, "도깨비"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도깨비 왕은 머리에 뿔이 있었고, 혀가 없었기 때문에 뿔을 가리기 위해서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티베트 사람들은 악마가 랑다르마로 태어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들은 랑다르마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면 모자를 한 손으로 들어올리면서 혀를 쭉 내민다. 나는 머리에 뿔도 없고 혀도 있으니 악마가 아니라고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티베트 사람들의 인사법으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티베트의 순진한 촌사람들을 만나면 혀를 쭉 내밀고 싱긋 웃는다. 서양 사람들은 그것이 티베트의 전통적인 인사법인 줄 알고 흉내내는데, 세련된 도시 사람들은 이제 그런 인사는 하지 않는다. 불교를 탄압했다는 까닭에 랑다르마는 티베트 민중들에게 영원히 악마로 남아 있는 것이다.



"라마"는 스승이라는 뜻

랑다르마 왕의 암살로 티베트 왕조가 무너지자 한 왕자는 서부 티베트로 피신하고, 또 한 왕자는 중부 티베트로 피신했다. 서부 티베트로 간 왕자는 그 곳에서 자리잡았고 그이의 후손들이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이때 티베트는 중앙정권이 없는 무정부상태로 사백 년을 지내야 했다. 불교 탄압 이후로 공식적인 불교 사원이나 승려들이 없었던 백 년 동안 일부의 개인들은 제멋대로 불경을 해석하면서 때로는 수행을 빙자해서 타락한 행동을 하였고 사회의 기강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서부 티베트 왕가는 혼란에 빠진 티베트를 재건하려면 올바른 불교정신을 가지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국민들의 의식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티베트의 청년들을 인도로 유학 보내 인도의 불교경전들과 불교예술들을 배워 오게 했다. 그이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사람이 린첸상보였다. 린첸상보의 활약으로 불교 재건 운동이 시작된 뒤 서부 티베트 왕가는 올바르고 건전한 불교수행의 방법을 티베트에 전파하려는 목적으로, 당대 최고의 인도 고승인 "아티샤" 스님을 티베트로 초청했다.

아티샤 스님은 당시 인도의 유명한 대학이었던 비끄라마실라의 학장이었다. 그이는 탄트라의 대가였지만, 티베트 제자들의 간청으로 주로 마음 닦는 법에 관해서 가르침을 폈다. 그이를 티베트로 초청한 "장춥외"라는 스님이 수행법에 관한 저술을 해 달라고 부탁하자 아티샤는 수행을 단계적으로 설명한 「보리도등론」을 지었다. 단계적인 수행을 티베트어로는 "람림"이라고 한다. 아티샤 이후로 람림은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행이 되었다. 서양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에 매력을 느끼고 수행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은 람림 덕분일 것이다. 각 종파마다 람림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거의 비슷하다. 그 주제들은 전문적인 수행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태어나고 죽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다. 사실, 불교 수행은 태어나고 죽어야만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닥친 문제들을 정면으로 대면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람림 수행은 우선 정신적인 스승에게 완전히 의지하라고 가르친다. 티베트 말로 스승을 "라마"라고 한다. 흔히들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 부르는데 티베트에는 라마교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청나라 시대에 중국 사람들이 지은 별명일 뿐이다. 라마를 부처님처럼 떠받드는 것을 보고 티베트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 아니라 라마의 가르침을 믿는 것이라고 비하시킨 것이다.

라마는 산스크리트의 "구루(스승)"를 티베트어로 옮긴 말이다. 라마라는 말은 "최상의"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최상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라마라는 호칭을 얻으려면 제자를 가르칠 만한 학식과 높은 수행을 쌓아야 한다. 티베트 승려들을 모두 라마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티베트불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밀교 수행에는 스승의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스승은 제자의 능력을 살펴서, 제자의 의식 수준에 맞는 수행을 가르치고 지도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천오백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라마는 살아있는 스승으로서 부처님의 말씀과 생각과 행동을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는 사람이기에 라마를 부처님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라마의 말씀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지, 라마 자신이 개발한 독자적인 사상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이비 라마도 있을 수 있기에, 티베트 사람들은 오랫동안 라마의 설법을 듣고 행동을 주시하면서 언행이 일치하는지, 제자에 대해서 진심으로 자비심을 가지고 지도하는지를 살핀 뒤에 스승으로 모신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가깝게 맺지 않더라도, 라마가 설법하는 곳에 참석할 수 있다.



깨달음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티베트 사회에서 라마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주로 "뚤꾸"들이다. "뚤꾸"는 전생에 높은 수행의 경지에 올랐던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 것으로 공인된 사람들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들이 태어났다가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것을 윤회라고 부른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었다는 것은 생사의 반복인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것을 말한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완전한 열반이다. 열반은 허무가 아니다. 열반은 나고 죽는 것을 초월한 완전한 행복과 평화의 상태를 말한다. 열반을 구하는 것은 소극적인 현실 도피가 아니라 완전한 행복을 찾는 적극적인 열망이다.

뚤꾸는 보살의 화신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경지인 깨달음을 얻었지만, 고통받는 중생을 돕기 위해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뜻을 갖는다.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자비심과 지혜를 보살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구체적인 형상을 보면서 실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보살의 형상을 상상해 낸 것이다.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관세음보살은 부처님의 자비심을 형상화한 것이고, 부처님의 자비심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이 세상에 뚤꾸로 태어난 분이 달라이라마라는 것이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거나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부른다.

외국사람들은 달라이라마라는 말을 쓰지만,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를 "개와린포체"라고 부른다. 린포체는 귀하다는 뜻인데, 티베트 사람들은 아주 귀중한 것에는 모두 린포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개와"는 부처님을 뜻한다. 「쿤둔」이라는 영화의 끝 장면에서 인도국경을 지키는 병사가 달라이라마에게 묻기를 "당신이 부처님이라는 분입니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개와린포체라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부처님 린포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달라이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나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개인을 우상화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상화가 아니라, 그분을 통해서 인간의 최고의 장점을 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체에게 부처님의 성질이 잠재되어 있다고 말한다. 부처님의 성질을 달라이라마에게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사는 보통 사람들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다. 성철 큰스님이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법어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에게서도 부처님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세상 그대로가 정토가 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형상만을 보기 때문에, 그 안에 감추어진 잠재력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잠재력이 그래도 많이 발현된 사람들에게서 부처님을 찾는다. 달라이라마를 부처님의 화신으로 보는 까닭은 그분이 수행의 힘으로 부처님의 성질을 많이 구현하신 분이라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외국 청년 하나가 기쁨에 들떠 달라이라마께 말했다. "달라이라마께서 어젯밤 제 꿈속에 나타나셔서 저를 지도해 주셨습니다. 달라이라마는 정말 신통력을 가진 분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그러자, 달라이라마가 대답하셨다. "나는 자네 꿈속에 나타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네. 그건 자네가 만든 세상이야." 달라이라마는 자신을 평범한 비구라고 항상 말씀하시듯이, 사람들이 그이를 우상화하거나 환상 속에 사는 것을 경고한다. 만일 깨달음의 지혜를 제자에게 덥석 안겨줄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주었던 깨달음을 도로 빼앗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니, 그렇게 주고받은 깨달음은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스승에게서 깨달음을 물건처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으라는 부처님의 유언을 명심하라고 달라이라마는 강조한다. 그렇게 달라이라마는 진실한 수행자이고, 깨달음을 향해 가는 길을 중생들과 동행하면서 안내하는 스승이기에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를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는 것이다.

티베트어로 스승을 "덕을 갖춘 길동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이라는 훌륭한 분에게 노예처럼 순종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깨달음을 향해 길을 가는 동안에 부처님을 좋은 길동무요 훌륭한 안내자로서 믿고 따라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달라이라마에 대한 믿음이나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맹목적인 우상화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은 소중한 기회

람림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불교에서는 인간만이 우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회세계에는 인간말고도 지옥의 세계, 배고픈 짐승들의 세계, 질투에 찬 아수라의 세계, 신들의 세계 들이 있고, 그이들 모두가 우주를 살아가는 생명의 주체들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절에서는 남은 음식 찌꺼기도 하수구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배고픈 귀신들은 몸은 집채만하지만, 목구멍이 바늘구멍만 해서 고춧가루하나라도 목에 걸리면 목이 막혀서 물도 안 넘어 가기 때문에, 혹시라도 음식찌꺼기를 배고픈 귀신이 먹을까 봐 조심해서 설거지물을 하수구에 버린다. 그런 행동은 우주에 인간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중생들도 살고 있으니 환경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더 광범위하다. 그이들은 냄새를 먹고 사는 신이 인간들의 쓰레기장에 와서도 냄새를 맡고 살 것이니, 쓰레기를 소독하기 위해 독가스를 뿌리면 신들이 해를 입을 것이라고 삼간다. 쓰레기에 독가스를 뿌려서 소독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애초에 쓰레기를 적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난한 티베트 사람들은 최소한의 물질을 소비하고, 최소한의 쓰레기를 만들었다. 물질이 풍부해진다는 것은 쓰레기가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변덕 많은 사람의 욕심대로 온갖 산업 생산품들을 만들어 내어 즐기다가 싫증나면 버리고, 또 다른 물건을 만들어 내어 사용하다가 또 버리는 과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최소한의 물질로 만족하며, 정신을 개발시키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던 티베트 고원의 삶의 모습도 이젠 중국정부의 서부개발계획으로 사라져 갈지도 모를 위기에 이르렀다.

티베트 사람들은 인생은 그저 웃고 한탕 즐기다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의 다음에는 다음 생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윤회사상은 불교의 기본사상이지만, 티베트 사람들은 그것을 철저히 믿는 반면에, 다른 나라의 불교도들은 윤회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윤회를 믿지 않으면 자기 삶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로 흐르기 쉽다. 이 생만 살고 죽으면 그 다음에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말이다. 만일 이 생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부산까지 가는 것이 목적인데 대전까지 갔다가 죽는다면, 다음 생에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서울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이 다음 생의 새 육체를 타고 태어나서 대전에서부터 출발해서 부산을 향해서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티베트 사람들의 윤회관이다.

그것은 티베트 불교의 독창적인 개념이 아니라, 윤회를 믿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현생은 전생의 결과이니, 지금 고통받는 것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매를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를 맞아서 홀가분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미래의 행복을 가져올 씨앗을 지금 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티베트 사람들은 낙천적일 수 있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을 갖는다. 어떤 생에는 짐승으로 태어났고, 어떤 생에는 신으로 태어났고, 어떤 생에는 배고픈 귀신으로 태어났다가 죽음과 태어남을 반복하고 있으니, 인간으로 태어나서 생각할 능력을 갖고 있을 때 열심히 수행해서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자는 불교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른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기회가 드물고 귀하니까, 내 인생이 귀하듯 다른 사람들의 삶도 귀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권존중 사상은 그이들의 불교 속에 저절로 배어 있는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항상 웃는다. 직업의 귀천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이들에게 없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이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일을 하는 사람은 만족을 느낀다. 도로의 청소부는 자기가 길을 깨끗이 쓴 뒤 지나가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니까 자기 일에 보람을 느낀다. 집을 짓는 인부들은 그 집에서 살게 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낀다. 행정가들은 자신들의 정책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것이라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일을 할 때부터 남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른바 세속적인 개념의 직업의 귀천의식에서 오는 압박감이 없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남들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이라면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이다. 남들이 상을 받거나 칭찬을 들으면, 그이들이 과거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그런 상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즐거워한다. 질투 대신에 "함께 즐거움을 나눔"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이다.

남의 행복을 함께 기뻐하라고 라마들은 항상 가르친다.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함께 기쁨을 나누는 일이 생활화되었다. 그것은 불교의 업과 업보 사상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 좋은 일을 해서 남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니 지금 상을 받는 것을 보고 내가 기뻐진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과거에 나쁜 일을 해서 지금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은 그 사람의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며, 그 생각은 과거에 생겨났다가 사라졌으니, 그 생각이 영원히 그 사람 자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생활 속에 배어 있는 것이다.

과거에 잘못된 생각을 했던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 대가로 지금 고통받고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는 것이다. 누구나 과보를 피할 수는 없다. 죄를 지었어도 불쌍하니 벌을 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죄의 과보를 받아서 고통받고 있는 것을 이겨낼 힘을 주자는 것이다. 이렇듯, 티베트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업과 업보와 해탈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세상 떠나면서 주는 마지막 선물

티베트 사람들의 음식과 의복과 가옥, 교통수단, 혼례식, 장례식, 풍습, 축제 들에는 고원지대의 특성이 배어 있다. 그이들의 주식은 보리미숫가루와 버터를 섞어 끓인 차와 보리막걸리다. 티베트 사람들은 며칠 동안 고기를 안 먹고는 살아도, 버터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물 대신에 버터차를 마신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보리막걸리는 남녀노소 막론하고 즐기는 음료수다. 춥고 건조한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몸을 따듯하게 만드는 음료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고기와 바람에 말린 육포와 우유와 치즈도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다. 티베트 사람들은 거개가 소매가 긴 전통의상을 입는다. 티베트 가옥의 옥상은 진흙을 밟아 편편하게 만든다. 때때로 지붕에 올라가 진흙으로 보수하고 발로 밟아주는 광경이 쉽게 눈에 띈다.

티베트 사람들은 인사할 때 "카닥"이라고 부르는 긴 비단 스카프를 주고받는다. 주로 흰색을 쓰는데, 순수함과 믿음을 표시한다. 푸른색 카닥은 지혜를 높인다는 의미를 가진다. 몽골에서는 주로 푸른색의 카닥을 쓰는데, 티베트에서는 주로 흰색의 카닥을 쓴다. 사람들은 법당에 가서 부처님 앞에 인사를 할 때도 카닥을 공양물로 바치고, 라마를 뵈러 갈 때도 카닥을 바치며 인사를 한다. 공양물을 바칠 때도 카닥을 위에 얹어서 바친다. 누군가 떠나갈 때도 인사로 카닥을 목에 걸어주면서 그 사람의 수명장수와 행운을 빌고, 시신을 보낼 때도 카닥을 위에 얹는다. 카닥의 길이가 긴 것은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듯 티베트 사회에서는 인사와 경의를 표하는 곳에서는 어디에나 카닥이 쓰인다.
불교 밖의 요소들이 티베트 불교 의례 속으로 흡수된 것도 여러 가지가 있다. 공중에 보리미숫가루를 뿌리는 풍습도 한 예이다. 고대 티베트 사람들은 자기들이 수확한 곡식을 신들에게 공양물로 바침으로써 감사를 표현했다. 그이들의 주식인 보리미숫가루("짬빠")를 공중에 뿌려서 신들에게 공양을 올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칠 세기 중반에는 왕의 즉위식과 장관들의 임명식 때 보리미숫가루 뿌리는 것이 공식적인 의례가 되었고, 십삼 세기쯤에는 티베트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행사들에 빠지지 않는 관습으로 자리잡았다. 혼례식이나 생일 같은 축하 행사 때는 짬빠 한 움큼을 공중에 뿌려서 기쁨과 풍요를 기원하는 표시로 삼았다. 특히, 사원이나 남의 집에 새해 인사를 하러 갈 때는, 제단 위에 쌓아놓은 짬빠 더미에서 짬빠 한 움큼을 집어서 공중에 뿌리면서 "따시델레(행운을 빕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행운을 빕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변함없이 항상 행복하세요"라고 대답한다. 짬빠를 공중에 뿌리면서 나와 남의 행복을 기원하고 장애를 극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 관습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의 장례의식은 땅 속에 묻는 매장과 불에 태우는 화장, 강 속에 묻는 수장, 새들에게 죽은 시신을 공양하는 조장이 있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나 아이 때 죽은 시신은 강 속에 묻어 물고기의 먹이가 되게 한다. 땅 속에 묻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가장 흔한 것이 조장이다. 시체 운반하는 사람들이 시신을 특별한 장지로 옮긴 다음에 독수리들이 시신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뼈를 모아서 화장한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배고픈 중생을 위해서 도움을 주고 간다는 생각에서 조장을 하는 것이다.

물론, 티베트에 나무가 귀해서 화장을 하기가 어려운 까닭도 있을 것이다. 보통 라마들의 시신은 화장하고, 달라이라마나 빤첸라마나 높은 지위의 라마들의 시신은 미라로 만들어 금, 은으로 도금한 탑 속에 보존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 생을 살다간 선배들을 보면서 후학들이 수행의 지표로 삼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는 어디에나 불교의 가르침이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