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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월(水月永旻, 1817~1893)스님: 경북 의성 고운사

지복에 이르는 길..../관련자료

by O_Sel 2008. 1. 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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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 고운사의 김수월(水月永旻, 1817~1893)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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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고운사 수월 선사 진영.
수월 영민 선사(1817~1893)는 수행하는 납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다간 고운사의 대표적인 선지식이다. 충남 홍성 출신으로 연변에 화엄사를 건립한 수월 음관 스님과는 동시대의 인물이다.
 
의성군에서 태어난 선사는 17세 때 고운사에서 출가해 송암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혜월 화상의 법을 이었다. 각화사 남암에서 10년간의 면벽 수행 결사를 시작한 이후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깨달음을 향한 구법 순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봉암사 결사 이전에 이미 선사를 비롯한 이 땅의 수행자들이 오직 깨달음을 위해 ‘법대로 살자’는 용맹정진의 삶을 추구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선사는 생전에 많은 제자들에게 법을 전했다. 민족대표 33인이었던 백용성 스님도 수월 선사에게 법을 전해 받았다.
 
선사는 평소 천수대비주 수행에 철저했고 계율에 엄격한 무욕의 삶을 살았다. 수월 선사의 그런 성품과 가르침은 지금도 때 묻지 않은 고아한 선사찰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고운사에 남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고운사가 있는 의성군에는 선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남아있다. 고운사 전체가 불이 난 듯 환한 빛에 휩싸여 있기에 인근 주민들이 놀라 달려가니 그 빛은 수월 선사에게서 나오더라는 이야기부터 선사의 몸에서 9차례에 걸쳐 총 64과의 생사리가 나왔다는 얘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선사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은 선사를 기리는 비문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선사는 마지막 입적의 순간까지 “울지 말고 빈소도 차리지 말고 곧바로 화장하라”며 수좌들에게 수행자의 본분을 져버리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실천으로 사부대중들에게 본보기가 됐던 수월 선사의 일대기는 수행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 시대에 환한 등불이 돼 줄 것이다.


관련글: 제3차: 등운산 고운사 (騰雲山 孤雲寺), 2007년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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