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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약찬게(略纂偈) 해설_무비스님

 

오늘하고 다음 한번하고 해서 약찬게(略纂偈)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동한 화엄경(華嚴經)의 일부인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공부를 했습니다. 근데 여래출현품은 화엄경 사십품 가운데 한 품이죠. 그 공부가 이제 끝나고 전체적으로 화엄경이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한 번 알기 위해서 약찬게 공부를 하고 그 담에 또 약찬게 끝나면 이어서 이제 그 사상과 뜻은 또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는 뜻에서 법성게(法性偈)를 또 그 한 시간하기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약찬게 두 시간 법성게 한 시간 이렇게 이제 하기로 했죠.


그럼 용수보살(龍樹菩薩)은 어떤 분인고하면 어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같이 그런 분이 아니고 부처님제자로서 그 뛰어난 분들을 우리가 일컬을 때 존자(尊者)라는 말도 쓰고, 보살(菩薩)이란 말도 쓰고, 조사(祖師), 또는 종사(宗師), 선지식(善知識), 무슨 큰스님, 보통 화상(和尙), 무슨 아사리,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뭐 사미(沙彌), 여러 가지 그 뭐 또 아라한(阿羅漢), 여러 가지로 부르는 그런 그 명칭이 있습니다. 보통이제 부처님의 제자 다시 말해서 歷史的인 인물로서도 말하자면 菩薩이라고 하는 말을 이렇게 잘 써요.

그 중국에 오면은 스님들이 또 보살이란 말을 잘 씁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그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여자신도들에게 보살이라고 하는 말을 붙여서 이제 부르는데 물론 보살행을 잘 합니다. 여성 신도분들이 菩薩行을 잘 하니까 보살님 보살님 합니다 만은. 그 참으로 그 한국 그 여신도님들은 청신녀(淸信女) 여러분들은 참 복이 많아요. 정말 우연히 보살이라고 그렇게 붙여졌어요.

이게 여자신도에게만 붙여지는 말이 아닙니다. 스님들도 보살이라고 그래요. 스님들도 보살이라고 그래. 여 용수보살이라고 하는 이도 그냥 스님입니다. 보통스님이에요. 보통스님인데 좀 道가 뛰어난 그런 스님이지요. 그런데 보살이라고 붙이니 최고의 명칭이거든요 이게. 부처님 다음가는 그런 명칭이라고 봅니다.

하기사 뭐 부처도 될 그런 그 모두 재목(材木)들인데 미리 菩薩이라고 붙여준다고 해서 아까울 것은 없지만은 또 어떤 이는 굳이 또 보살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잘못이에요. 부처라고 불러도 괜찮은데 보살이라고 부르는게 그게 크게 잘못될 건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들 마음속에 부처가 있고 그것을 우리가 결국은 이제 드러내서 부처로 살기위한 것이 불자의 그 목표일 바에는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 될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그런 그 생각은 오해죠 사실은.

이 용수보살(龍樹菩薩)에 대해서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분은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지 600년쯤 지난 뒤에 그 남인도에서 태어나신 분입니다. 인도 남쪽 지방에서 태어났는데 부처님제자의 어떤 그 대수(代數)를 치는데 말하자면 가섭존자가 부처님제자로서 一 代거든요. 그 다음 아란존자가 가섭존자의 법을 이어받아서 또 二 代 이렇게 합니다. 그 다음 상라화수가 三 代. 무슨 뭐 사자존자가 四代 이런 식으로 쭉 쳐 온다고요. 그러면 달마스님은 28代가 됩니다. 28대 祖師가 되거든요. 육조스님은 33代 祖師가 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경허스님께서 그러니까 74댄가 5대 6대 7대 8 칠십 오대가 되는구나. 75대쯤 되고요. 그런 식으로 이제 스님들의 그 대수가 전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전부 예를 들어서 경주 최 씨 누구하면은 경주 최 씨 몇 대 손 이런게 있듯이 이 용수보살은 14대손입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14대 손에 해당되는 그런 법맥을 이은 그런 그 조사다 하는 이야깁니다.


이 분은 본래 이름이 나가르주나라고 이제 인도말로 그러는데 용수 용 용자(龍) 나무 수자(樹) 또는 뭐 용 용자(龍) 용맹할 맹자(猛) 또 용 용자(龍) 수승하다고 하는 승자(勝) 이렇게 이제 그런 여러 가지 이름을 부릅니다.


어려서부터 굉장히 총명해가지고 인도 고전인 소위 그 사 베다 네 가지 베다를 달통하고 천문이니 지리니 그런 그 기존 학문에 통달했다고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그래가지고 이제 출가를 해서 아 출가하기 전에 말하자면 인생의 그 목표는 향락을 즐기는데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아주 머리도 총명하고 학문도 높고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그 삶에 어떤 그 가치관은 제대로 서 있지가 않아가지고 향락을 즐기는데 이제 인생의 목표가 있다 해가지고 그야말로 주색에 몸을 맡기는 그런 입장이 되었었습니다. 굉장히 그 총명하고 참 뛰어난 분이 이제 그렇게 되다보니까 궁중에 까지 왕궁에 출입하면서 궁녀들하고도 이렇게 놀아나는 그런 입장이 됐어요. 그 정도 수준에 말하자면은 그 당시 인도에서 뭐 뛰어난 한량(閑良)이었다 이렇게 봐도 괜찮을 그런 그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말 하자면 그런 사실들이 왕에게 알려져 가지고 그 자기 친구 두 사람은 死刑을 당하고 이 사람은 어쩌다가 참 다행스럽게도 사형을 면했어요. 도망을 갔는지 어쨌는지 하여튼 사형을 면한 걸로 그렇게 歷史가 나옵니다. 두 친구는 이제 사형을 당하게 되고 그렇게 됐죠.

그 길로 이제 뭔가 자기의 어떤 삶을 깨닫고는 이제 머릴 깎고 出家를 하는데 출가를 해서 어디로 들어가는고하면 小乘佛敎 계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소승불교 계통에서 모든 학문을 굉장히 깊이 연구를 하고 그 닦아 익히죠. 그리고는 이제 마음이 안 차가지고 다시 북쪽으로 북쪽으로 설산 히말라야 산 쪽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거기에 들어와서 어떤 노스님을 한 분 만납니다. 노스님을 이제 만나가지고서 그야말로 佛法의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그 인연이 돼요. 佛法의 큰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그 佛法의 큰 바다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근본사상 속에 들어갔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걸 佛法大海라 그래요. 부처님의 마음속에 제대로 이제 들어갔다 하는 것인데 그래서 이제 불법의 큰 바다 속 거기서 용궁이라는 말까지 씁니다. 그래서 용궁 바다 속 용궁에 들어가서 많은 大乘經典을 열람하게 되고 大乘의 理致를 부처님의 바른 思想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서 최고의 경전 華嚴經을 만나게 된다 하는 이야깁니다.

그래서 그 화엄경을 가지고 세상에 나와서 폈다. 이렇게 이제 이야기가 돼 있거든요. 그러면은 그 불법의 바다 속에서 화엄경이라고 하는 그런 그 대승의 가르침을 만나게 됐다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설산의 노스님을 통해서. 그 역사가 전부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래가지고 화엄경을 세상에다 이제 펴고 화엄경뿐만 아니라 화엄경을 편 책은 십주비바사론이라고 하는 그런 책을 지어가지고서 화엄경을 일부 해석을 하면서 화엄경을 소개했고 그보다도 더 이 분의 저서로써 뛰어난 것은 중론(中論)이라고 하는 論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대지도론(大智度論)이라고 하는 논.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백 권이 되고 중론은 네 권이나 되는데 중론과 대지도론 그것을 통해서 세상의 굉장히 그 불교 올바른 사상을 전하게 됐습니다. 특히 이제 중론은 중도의 어떤 입장을 정리하는데 아주 그 불교 이론 정립에 큰 공헌을 세운 것이 바로 이 중론(中論)이에요. 이 용수보살이 지은 중론입니다. 이분의 저서가 이제 그렇게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분은 第 二의 釋迦다. 제 이의 석가다. 그 당시 그 용수보살의 위대한 업적으로 볼 때 제 이의 석가나 다를바 없다 그 말이에요. 물론 고 앞의 마명보살이라고 하는 이가 마명(馬鳴)이라고 하는 이가 말하자면 그 大乘의 이제 기신론(起信論)을 통해서 드날리기 시작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용수보살이 더 그것을 크게 확장을 시키는데 큰 공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이 분을 제 이의 석가다. 또는 뭐 팔 종의 불교종파의 팔 종의 조사다 또 이런 표현을 할 정도로 불교역사에서는 아주 그 손꼽는 분입니다.

뭐 인도에 있어서의 많은 부처님제자 중에서 최고의 공헌이 있다 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쪽에 중국으로 넘어와서 한국으로 오면은 또 다른 분들이 물론 있습니다만은 인도에서 말하자면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 사상을 더 빛나게 세상에 이제 더 드날리게 하는데는 최고의 공헌이 있는 분이 이 용수보살이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 분의 그 저서가 그렇게 오늘날까지 큰 그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론(中論)이라든지 대지도론(大智度論)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그리고 또 특히 무엇보다도 華嚴經을 이 세상에 전하게 된 그런 그 功德으로 해서 더 이제 용수보살이 빛나게 되지요. 그래서 이 용수보살이 화엄경을 말하자면은 공부를 하시고서 이 많은 것을 누가 다 그렇게 공부할 이가 몇이나 되겠느냐? 또 그리고 평소에 짧은 어떤 그 내용을 읽음으로해서 화엄경 전체를 머릿속에 이렇게 그릴 수 있는 그런 그 글을 지어서 세상에 펴야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지어서 세상에 내놓은게 바로 이 화엄경 약찬게(華嚴經 略纂偈)입니다.

그래 이게 이제 우리나라까지 전해지고 해 가지고 이걸 한 번 읽으면은 화엄경 전체를 이제 이렇게 간추릴 수가 있고 또 화엄경을 잘 아는 사람이 읽으면 더 이제 간추리기가 쉽고 그렇죠. 그리고 또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기 전에 또 이런 것은 익숙하게 외우면 더욱 좋고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입에 아주 그냥 익숙할 정도로 그렇게 이제 많이 읽어놓으면 화엄경 전체를 이해하는데 좋을뿐더러 또 여기는 신장(神將)이름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신장이름은 다른 것이 아니라 물론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그런 그 어떤 그 옹호신중(擁護神衆)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만은 옹호신중이라고 하는 어떤 그 특정한 어떤 그 신으로 봐도 상관은 없습니다만은 또 우리가 좀 더 그것을 폭넓게 생각 이해하기로 하면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 또 모든 환경이 전부 옹호신(擁護神)입니다.


환경이 이제 말하자면 오염이 되면은 우리가 살 수가 없지 않습니까? 환경 그대로 옹호신이에요. 또 옆의 사람들이 전부 옹호신이야. 옆의 사람들이 나를 자꾸 헐뜯고 내 망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내 허물만 자꾸 지적할려고하고 그러면 그건 옹호신이 아니에요. 그래 바로 옆의 사람이 나를 감싸주고 보호해 주고 칭찬해주고 같이 더불어 살고 정답게 살고 이렇게 하면 전부 옆의 사람이 전부 옹호신(擁護神)이 된다구요.


華嚴經의 理致는 우리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궁무진한 이치가 거기서 자꾸 나옵니다. 전 뭐 화엄경 공부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참 그래 쉬운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늘 이 생각을 하면 생각할수록 자꾸 어떤 그 새로운 이치가 거기에 깨달아지고 깨달아지고 그러는데 그 여기서 앞으로 많은 신이 많이 소개 될 텐데 그런 신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 우리가 뭐 사람이 죽어서 영혼같이 떠돌아다니는 그런 신이냐? 이렇게 생각하면 곤란해요. 여기서 나오는 신은 神格視 하는 것입니다. 특히 기독교 같은 데서는 신이 최곱니다. 또 인도 힌두교에서는 또 신이 최곱니다.


요 화엄경이 다시 말해서 불교가 발생한 인도사회에 있어서 오늘날은 힌두교가 거의 장악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전에도 힌두교가 있었어요. 사실은 불교는 극소수 사람들이 불교를 믿었고 그 佛敎 理致가 워낙 유명하고 훌륭하기 때문에 전 세계 전파됐다고 해석을 했지. 사실 인도 그 지역에는 힌두교 신을 모시는 힌두교가 굉장히 성하고 있습니다. 그 인도에서 인도가 그 후진국으로 저렇게 떨어져있는 그 이유 중에 하나도 힌두교 사상 때문이다 하는 것입니다.


힌두교는 여러 가지 그 좋은 점도 많은데 한 가지 안 좋은 것은 사람차별을 해요. 사람차별을 사성계급(四姓階級)을 이렇게 둬 가지고 농민은 영원히 농민. 설사 그 새로운 어떤 그 기술을 배워가지고 무슨 컴퓨터 기술자가 됐다 아니면 자동차 기술자가 됐다. 그럼 옛날에 인제 그런 기술자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 농민출신이면 그 사람이 계속 농민계급이야. 또 하인 계급이면 그 사람이 설사 장관이 돼도 영원히 하인이라구요.


근데 인도의 중간에 하인계급에 있는 최하위계급에 있는 사람이 법무부장관이 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힌두교인인데 뭐 다 힌두교니까 불교로 개종을 할 때 인도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나다시피 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저 그 네로수상인가 이분이 그 사람을 그래도 제일 천민에 있는 사람을 갖다가 물론 그릇이야 충분히 되지요. 아무리 그 人格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렇게 장관으로 쓸 수가 없는거에요 그런 천민을. 그런데 그 사람이 과감하게 장관으로 등용을 했다구요.


登用을 하고 그 나중에 이 사람이 또 佛敎로 改宗을 하고 그래서 인도에선 굉장히 그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때 불교로 개종을 할 때 수백만 명이 말하자면은 불교도가 됐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사상이 좋으니까. 이 불교는 萬民平等. 마음을 갖은 사람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하는 그런 만민평등을 부르짖는 종교이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힌두교에서는 그런게 없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점이 좀 힌두교의 문제점입니다. 뭐 어쨌거나 인도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신을 굉장히 존중하는 그런 그 사회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인도에선 神하면 최고에요.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미륵보살 같은 이들은 힌두교서 많은 신들 중의 한 사람이야 그냥. 그래서 불교는 힌두교 속의 한 종파 또는 그 어떤 한 신만 좋아하는 고런 편식을 하는 어떤 힌두교도다 이렇게 보는 거에요. 우리 불자들을. 힌두교인들은 최소한도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불교는 독립된 종교라고 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판명이 물론 되고 했습니다만은 법적인 소송도 많고 그랬어요. 그 저 부다가야 소위 그 성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佛子가 차지해야 된다. 힌두교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의 한 종판데 말이지 힌두교 재산이다 이렇게 해 가지고 결국은 소송을 해 가지고 여러 해 소송을 해서 결국은 불교가 독립된 종교다 해서 이겨가지고 결국은 불교 땅이 됐어요 그것이.소위 부다가야 그 聖地, 탑이 있는 부처님 成道한 그 자리, 그 땅이 말이지 불교 땅인데 자기들 힌두교 땅이라고 막 그렇게 해 가지고 소송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이기고한 그런 역사도 있고 합니다 만은. 그만치 인도사회에서는 신을 그렇게 존중합니다. 부처라고 하는 말보다도 菩薩이라고 하는 말보다도 神을 훨씬 더 존중해요.


그래서 여기서 神이란 말이 아주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서 물은 물신이라고 그러고, 불은 불신이라 그러고, 主火神 主水神 허공(虛空)을 허공신 主空神 별의별 무슨 뭐 바람은 主風神 이러거든요. 그러면 바람이 뭐 그게 神일 까닭이 있습니까? 물이 그까짓 神일 까닭이 있습니까? 또 불이 무슨 신일 까닭이 있습니까? 또 공간이 이게 뭐 이 텅 빈 空間이 무슨 그 神일 까닭이 있습니까? 그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그런 神의 개념(槪念)을 없애야 돼. 그걸 일단 놔두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그 所謂 神을 다시 새롭게 이해해야 됩니다.

그럼 그게 뭔고하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말하는 거에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를 神格視하는 거라. 왜냐? 세상에선 神이 제일 높으니까.

사실 물 하나만 보십시오. 물은 생명의 근원이야. 물 없이 우리 하루도 못 산다고요. 불도 마찬가지야. 불도 불 없이 우리 하루도 못 살아. 공간도 마찬가지야 空. 공도 공간이 없으면 우리 한 순간도 못 살아. 우리가 못 있어 여기에. 공간이 있으니까 여기에 이렇게 우리 몸을 가지고 사는 거야. 바람은 어때요 主風神, 바람은 우리가 호흡하고 움직이고 동작하는 것은 전부 바람의 요소라고요. 이 바람의 요소가 없으면 우리가 한 순간도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어.


그렇게 하나하나 우리가 이해해 들어가면요. 전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의 요소의 하나하나가 전부 神아님이 없어. 그야말로 神이야. 그거 없으면 내가 있을 수가 없어요. 물이 없으면 내가 없고, 불이 없으면 내가 없고, 공간이 없으면 내가 없고, 바람이 없으면 내가 없고, 땅이 없으면 내가 없고, 하늘이 없으면 내가 없고, 전부 그렇게 되어있어요. 사실은 그렇게 짜여있어요.

그런 모든 그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전부 동원이 돼서 결국 나하고 하는 존재가 여기 있게 되고, 내 삶이 비로소 여기서 형성돼 가는 거에요. 숨 쉬고 물마시고 따뜻하고 말이죠. 이렇게 움직이고 말하고 하는 그런 인간의 어떤 그 삶이 영위 돼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동원되는 조건들이요 수십만 수천만 가집니다. 수천만가지라고요. 수천만 가지 인연들이 모여가지고 동원이 돼 가지고 수천만 가지 사실들이 동원이 돼 가지고 내 한 인생이 여기에 이렇게 살아가게 된다고요. 요걸 이제 우리가 제대로 깨닫고 살자 하는게 이 華嚴經의 목표입니다.

그걸 우리가 제대로 깨달으면요. 참 이 세상은 너무 좋은 세상이다. 너무 좋은 세상이다. 그래 이제 화장세계(華藏世界)다 화엄세계(華嚴世界)다. 꽃으로 장엄한 세계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 華嚴 꽃으로 莊嚴했다 이거야.

우리가 화장실에 말이죠. 꽃 한 송이 컵에 탁 꼽아가지고 화장실에 딱 갖다놔 보십시오. 이미 그건 화장실이 아니야 화장대야. 그렇게 환경이 싹 달라진다고요. 꽃이란게 그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세상도 그렇게 봐야 된다. 이거야.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꽃다운 행동이 나와. 꽃다운 마음씨가 나오게 돼있어 또. 이 세상을 꽃으로 이해한 사람은 꽃다운 마음씨가 나오게 되어있어. 그걸 뭐라고 그래? 보살행이라고 그런다 菩薩行. 여러분들 전부 菩薩 아닙니까? 그 菩薩行 「꽃다운 행동, 꽃다운 마음씨를 늘 실천하는 분들이다」라고 해서 그래서 보살님 이렇게 한다고요. 그래 보살님들이 있어야 이 세상이 아름다워져 장엄(莊嚴)이 된다고요.

화장실 그 냄새나는 화장실에 꽃 한 송이 착 해서 그 화장실을 장엄해 가지고 분위기를 싹 바꿔놓듯이. 집안에 거실에도 꽃 하나 척 이렇게 말이지. 화분에 꽂을줄 몰라도 이렇게 갖다놓으면 그 거실 분위기가 싹 다르거든요. 그만치 꽃은 그렇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한 끼의 밥보다도 더 큰 일을 하고 있어요. 꽃 한 송이가.


그 우리가 살아가는데 꽃다운 마음씨, 꽃다운 말씨, 꽃다운 행동, 신구의 삼업((身口意 三業)이죠. 신구의 삼업이 전부 꽃다울 때 사회는 어떻겠어요? 얼마나 밝아지고 얼마나 좋은 사회가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華嚴이다. 이거에요. 이거 꽃은 비유에요.


要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주인공이니까 이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에요. 사람 위에도 사람 없고, 사람 밑에도 사람 없어. 그저 사람이 최고일 뿐이야. 사람이 주인인 까닭에 그 주인이 주인 역할을 제대로 하자고 하는 거에요.


그 제대로 하는 것은 결국 뭔고 허니 菩薩行 하자는 것입니다. 보살행은 꽃다운 말씨, 꽃다운 마음씨, 꽃다운 솜씨라고 할까? 행동을 무슨 씨라고 하죠? 맵씨? ..... 꽃다운 行動 그러면 세상은 전부 꽃으로 莊嚴한 그런 세상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華嚴이라고 하는거죠.


그렇게 될려면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萬物과 그리고 나를 잘 이해해야 돼. 내 자신을 잘 이해해야 돼. 그 만물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느냐? 神으로 이해해야 돼. 하나하나 尊貴한 神으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神으로 이해했을 때. 사실은 그렇거든요. 사실은 둘도 없는 그런 神이나 다를 바 없는 거거든.


부처님은 없어도 우리가 살지만은 물 없이는 못 살아. 부처님은 없어도 살지만 불 없이는 못 살아. 그 부처님보다 불이 더 중요하고, 물이 더 중요하고, 공기가 더 중요하고, 바람이 더 중요하고, 공간이 더 중요하고, 나무 저 숲이 더 중요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이해를 했을 때 하나하나 소중한 거에요. 하나하나 그 무엇도 소중하지 않은게 없어. 그 소중함을 뭐라고 도대체 대접을 해 줘야 옳을까? 부처라고 할까, 菩薩이라고 할까, 神이라고 할까? 그 때로는 보살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부처라고 부르고, 때로는 신이라고 부르고 최고의 그 대접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렇게 해도 사실 성이 차지 않지.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제일 尊貴한 표현이 그거뿐이니까 뭐 그거로라도 임시 표현을 하자는 거죠.


그래서 보살님 부처님 나무 大自然菩薩摩訶薩. 저 자연보다 더 좋은 훌륭한 보살이 없거든요. 허공장보살마하살(虛空藏菩薩摩訶薩), 일광보살마하살(日光菩薩摩訶薩) 월광보살마하살(月光菩薩摩訶薩). 달은 달대로 보살이요, 해는 해대로 보살이거든. 또 神이라고 불러도 좋고. 신이라고 할 때도 있고 뭐 또 일천자(日天子) 월천자(月天子) 天子는 또 얼마.. 천자는 이 천하를 다 통일한 그 왕이 天子거든요. 小國은 王이라고 하고 대국의 왕은 天子라고 하잖습니까. 그래 일천자(日天子) 월천자(月天子) 그런다 .. 뒤에 나오면 또 일천자 월천자라고 해. 천자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명칭이거든. 지위가 제일 높다고요.


천자라고 이렇게 글을 쓰다가 天子라고 하는 글자가 나오면 얼른 위에다 갖다 써야 돼. 아무리 밑에 말이지 뒤에 남아있어도 얼른 위에다 갖다 첫줄에다 딱 써야 된다고요. 그만치 천자를 그 위했어 그렇게 기록 안 돼 있으면 그건 큰일이야. 잘못 기록 ..사가들이 전부 그렇게 기록해.. 옛날 책들 보면 다 그렇게 해 놓았어요. 쭉 써 내려가다가 뭐 임금 王 字가 나온다든지 아니면 天子라고 하는 낱말이 나온다든지 하면 얼른 위에다 갖다 써야 돼. 제일 높으니까 옛날 역사책보면 전부 그래 돼 있습니다. 그게 밑에 자를 데도 아닌데 탁 잘라가지고 위에다 갖다 올려놓거든요. 그 제일 이 세상에 尊貴하다 이거야. 저 해가 제일 천자다 달이 천자다. 佛敎선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 제일 존귀한 표현들이죠.


그렇다면은 그런 모든 것이 동원이 돼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주인공 여러분들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은 얼마나 또 소중하고 계급이 높고 존귀한 존재겠느냐 이거에요. 이건 뭐 천자라고도 붙이고 天子, 佛, 菩薩, 神, 뭐 온갖 하여튼 그 귀한 소리 다 그게 붙여놔도 아깝지가 않은 존재들이 여러분들이라고. 人間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이해했을 때 우리들 자신이 그렇고 우리 가족이 그렇고 우리 이웃이 그렇고 그렇게 이제 이해했을 때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행동이 나오게 돼 있어. 그래서 바로 이 세상은 화엄 만다라의 세계다 그럽니다. 화엄경에서 보면 이 세계 그대로가 화엄 만다라(華嚴 曼陀羅)의 세계다.

曼陀羅라고 하는 것은 뭔고하니 말하자면 요 방안에 예를 들어서 부처님을 크게 이렇게 모신다. 그러면 단(壇)을 이렇게 차리게 되겠죠. 그 제일 성스러운 곳 아닙니까? 탁자위에 부처님 모셔놓은 그 자리가 제일 성스러운 자리야. 그걸 만다라라고 그래. 그 탁자, 壇 단을. 만다라를 번역하면 단입니다. 그 집단 그 단이라는 거야. 또 壇場 장 자(場)까지 합하기도 하고 그냥 壇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떤 그 境界를 이렇게 그어가지고 뭐 둥글게 긋던지 네모나게 탁 이렇게 긋던지 해 가지고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뭐 산에 가서 그 묘(墓)를 쓸 때 제사(祭祀)를 지내더라도 그 산신이 뭐 제사를 지내지요. 그럼 그 장소를 이렇게 깨끗하게 정결을 한다고요. 해 가지고 자리를 깔고 이렇게 하면 그게 만다라야. 고 안이. 그 경계 안을 만다라라고. 제일 성스러운 곳이야. 거긴 아무도 범접을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해요. 그 예식을 올릴 때만 딱 들어가서 하는 거지. 그래 이제 불교에서 예를 들어서 뭐 의식을 집행할 때 그렇고. 그 탁자위에 함부로 못 올라가잖아요. 그 함부로 올라가 ... 스님들도 함부로 안 올라가거든요. 그 탁자위에는. 고 탁자 위 그게 壇이라. 단 아닙니까. 그걸 만다라라고 그래. 전부가 그런 곳이다.


그야말로 화엄세계로 이 세상이 어디 뭐 대웅전 탁자 위만 탁자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곳이 전부 대웅전 부처님을 모셔놓은 탁자와 같은 그런 단이다. 그래 화엄 만다라의 세계다. 이 우주가 화엄 만다라의 세계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제 보는게 화엄의 시각이에요.

그래서 그 가운데 숨을 쉬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 인간이 말하자면 태어나서 늙고 죽고 그다음에 또 다시 태어나고 하는 이런 운동을 계속하는 거에요. 죽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가 흘러가고 살아가고 움직여가고 굴려가고 있다 이거야. 그게 결국은 뭔고하니 오십이위 점차(五十二位 漸次)야. 한 계단 한 계단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한 살 두 살 먹게 되고 일생 이생 살아가고, 그런 것을 말하자면은 가만있으면 그대로 죽은 하나의 단일뿐인데 거기서 숨을 쉬고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존재한다 이게 중요하거든 결국은.

그러면 그것은 어떤 공간+시간이라고 하는거 그런 어떤 그 생동감이 그 속에는 포함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그 속에는 포함 되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거기는 순서가 있고, 절차가 있고, 단계가 있고, 春夏秋冬이 있고, 생주이멸(生住離滅)이 있는 거야. 1.2.3.4.가 있게 되는 것이고,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게 되는 것이야. 이걸 우리가 또 부정(否定)을 못하잖습니까? 뭐 그냥 좋다 이거에요. 좋다 라고 까지는 좋은데 그 다음에 정작 움직여보니까 그게 아니거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더라 이거야.


그러면 그것이 이제 씨줄과 날줄이 서로 이제 엮어져 가지고 입체적인 만다라가 형성이 돼 가는 거지요. 입체적인 만다라. 그냥 그 평면적인 만다라는 이해가 되는데 입체적인 만다라, 어떤 그 시간을 통해서 살아가는 그런 그 시공 시간과 공간 전체에 어떤 그 화엄만다라가 연출이 되어야 된다하는 것입니다.


그 연출해 가는 과정이 뭔고하니 그 작은 종이에 그 뭐죠? 菩薩 五十二位 修行階位라 그랬죠? 이게 이제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서 첫 계단부터 오십이 계단까지 이렇게 이제 올라가서 부처가 되는 그런 그 과정을 이렇게 그려놓은 것입니다. 참 이 그림이 기가 막히게 좋은거야. 그림이 기가 막히게 좋은거라.

우리가 五十二位 오십이위 들었죠.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그 다음에 등각(等覺), 묘각(妙覺) 이렇게 해서 五十二位가 되는 거라. 그럼 화엄경에는 보면은 그런 그 전체 과정을 여기에 맞춰가지고서 五十二位에 맞춰가지고 설해놓은 거야. 참 그 짜임새가 기가 막히게 된 거죠. 그래 우리가 살아도 만다라요, 죽어도 화엄만다라다. 어떻게 살아가든지 오늘도 화엄만다라의 세계요, 내일도 화엄만다라의 세계라.

그 하루하루 온 우주가 그대로 부처요 보살이요 신의 세계라면은 다시 더 어떻게 더 꾸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 사실은. 없는데 그런 없는데서 말하자면 또 하루하루 삶이 있기 때문에 그 삶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렇게 이끌어가는 거에요. 살아가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그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뭐 修行 특별히 수행해 가지고 이 과정을 밟아간다 우리가 얼른 생각에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삶이 그대로 修行입니다. 살아가는게 그대로 修行이라고요.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수행을 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것 같이 그렇게 돼 있지만은, 또 그런 의미도 있지만은.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그 삶의 어떤 그 과정입니다. 전 과정이에요. 삶의 전 과정이 이 오십이단계(五十二段階)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그래서 法門을 봐도요. 십신 법문을 봐도 어렵다면 아주 어렵고, 쉽다면 또 쉽습니다. 저 위에 等覺 妙覺法門을 봐도 역시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워요. 아무 그런 그 차별이 크게 없다고요 보면은. 화엄경 어디를 봐도 큰 차별이 없습니다. 뭐 법문 단계가 높다 낮다 그렇지도 않아요. 저기 저 十地 법문에 가도 뭐 소승교리 같은거 많이 나오고 그래요. 저 밑에도 그 높은 그 어떤 교리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그런 어떤 차별은 사실 알고 보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큰 그물을 펼쳐놨는데 전체가 똑 같은 그물이야 사실은. 어느 부분이 그물의 어느 코가 중요하다 이게 없어요. 가치는 동등해요. 물론 그물코 하나만 가지고도 그물은 그물이야. 그렇지만 고거하나만 딱 만들어놓으면 그거보고 그물이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아무도. 두 개 세 개 해 놔도 그물이라 안할 거야 아마. 그 하나하나가 모여서 비로소 하나의 그물이 된다고요.


그래서 그런 모든 그 필요한 것이 구체적으로 이렇게 전부 집합이 되고 종합이 돼서 어울렸을 때 비로소 이제 완전한 삶이 되고, 완전한 한 세계가 되고, 완전한 하나의 어떤 그 어떤 그 이상적인 세계, 화엄 만다라의 세계가 된다 하는 그런 그 입장에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리고 내가 여기서 존재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과정, 이런 모든 것을 전부 화엄경에서 표현해 본 것입니다.

표현해 본 것이고 우리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달은 사람으로서 눈을 뜬 사람으로서 일깨워준 그런 그 말하자면「화엄 만다라의 세계 속에 우리는 다 이렇게 더불어 살고 있다」라고 하는 그런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깨닫고서 살아가는 것. 마 『이것이 마 화엄경의 목적이다』하는 것입니다.

동안 말한 것이 깨달은 사람의 시각에서 그렇게 이제 보이는 것이고, 또 우리는 이미 그 속에 있는데 미처 느끼지 못하니까 화엄경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죠.

그 총괄적인 것이 되고 또 그러면서 또 서론이 되고 역시 저 약찬게의 어떤 그이게 이제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화엄경을 이해하는 말하자면 어떤 내용들을 그 하나하나 들어가면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낱낱이 그렇게 집어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이제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로서 내가 말씀드린 것입니다.

쭉 神이 나오는데 도대체 이 神이 뭔가 무슨 天子가 나오고 무슨 뭔가 나오고 그러는데 이게 도대체 뭔가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린 겁니다. 그래서 보살의 五十二位 修行 階位를 옆에다 딱 놓고 그담에 略纂偈를 이제 쭉 보면서 고거하고 연결이 돼있거든요.


말하자면 꽃밭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아간다. 하~ 끝없이 펼쳐져있는 꽃밭을 꽃으로 만든 사람이, 꽃으로 된 사람이 그 꽃밭을 역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꽃이 꽃밭을 걸어간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어디로 가도 꽃이에요. 걸어가는 사람도 꽃이고, 밟히는 그 어떤 땅도 역시 꽃밭이라. 그렇게 이해해야 되요.


그래서 이 52단계를 처음 출발도 꽃밭이요, 걸어가는 사람도 꽃밭이요, 도착지도 꽃밭이다. 그런데 걸어갈게 뭐 있느냐? 또 안가고 있으면 뭐 할거에요? 그렇죠. 안가고 있어도 별 수가 없어. 다 좋긴 좋아. 다리가 아프면 쉬어서 가면 돼. 그냥 또 갈게 뭐 있느냐 그러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혹 있다하더라도 그 사람이 먼저 갈 거야. 그냥 있지를 못 해. 있어라 하고 가보면 그 사람이 따라오게 돼 있어. 왜냐? 가만히 죽은 존재가 아니니까, 살아있는 숨을 쉬는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움직이게끔 돼 있어.

이게이게 문제거든요 要는. 그 뭐 좋지 않은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가만있으면 괜찮겠는데 이게 움직여싸니까 움직여싸니까 사건을 만들거든요. 늘 그렇잖습니까? 가만있기만 하면 괜찮지. 그래 이 죽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가만있지를 않는 거라.

그러니까 꽃이 꽃밭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거에요. 이게 우리의 삶이라. 화엄경에서 보면 이게 우리의 삶이라고요. 전체가 꽃이요, 꽃밭에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만다라의 세계라. 만다라의 세계. 그래 이제 여기에서 우리가 만다라라고 할 때 한 구획을 딱 그어가지고 거기만 만다라라고 보지만은 이 화엄경에서는 온 우주가 전체가 다 만다라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나무화장세계해 비로자나진법신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라 나무화장세계해 비로자나진법신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 고 네 구절이 위에 두 줄은 말하자면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란 뜻이고

그 다음에 네 구절 나무(南無)는 귀의한다는 뜻이죠. 인도말로써. 화장세계(華藏世界)의. 말하자면 꽃으로 돼있는 세계를 말하자면 전체가 이 장 자(藏)는 냉장고 할 때 장자 아닙니까? 그냥 이렇게 겉으로 꾸며놓기만 한게 아니야 속속들이 꽃이야. 그래서 이 장 자(藏)를 쓴다고요. 화장세계(華藏世界)라고 할 때는. 안에까지 꽃이다 이거여. 안팎이 다 꽃이야. 그래 이게 냉장고할 때 장 자(藏)에요. 안에 감출 장자, 창고 장자, 창고 속에도 가득히 꽃이다 이거야. 그래 화장세계가 그래야 돼. 겉만 꽃으로 돼 있으면 그건 가짜거든요. 화장세계해(華藏世界海)의 海는 넓다는 뜻입니다. 비로자나진법신(毘盧遮那眞法身) 비로자나법신부처님이죠. 진법신(眞法身) 참법신과. 화장세계(華藏世界)에 계시는 비로자나의 참법신 부처님과, 또 현재의 설법하고 계시는 노사나부처님과,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 그리고 그 나머지 많은 如來에게 뭐한다고? 나무~ 하옵나이다. 귀의(歸依)하옵나이다. 이 말이에요.


그래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그러면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이 다 나왔죠. 법신은 그대로 법신 진리당체고. 노사나(盧舍那)는 보신(報身)인데 그 영향력. 늘 그러죠.


예를 들어서 꽃이 있으면 꽃의 향기가 있을 것이고 그 꽃이 남에게 끼치는 어떤 그 영향력이 있을 거라. 마찬가지로 사람도 다 그래요. 사람도 뭐 그 집의 안주인이라고 해서 그 영향력이 똑 같은게 아니야. 백 명이면 다 그 사람이 그 집에서의 영향력이 다 달라. 다 다르다고요 내 안 봐도 다 알아. 그 사람이 닦은 어떤 수행력 뭐 성격이다 하지만 성격도 수행력이야. 그 사람 어떻게 살아왔냐 하는게 성격을 형성하거든요. 또 그 사람이 거기서 별 볼일 없으면 별 볼일 없는 대로, 굉장히 공덕이 있으면은 그 집에서 공덕이 있고 그 집안을 다 먹여 살린다든지 아니면 뭐 참 넘어질 가세를 어떻게 자기가 일으켜 세웠다던지 하면 참 그 사람이 말발이 서잖아요. 그게 공덕신(功德身)이라고도 하고 보신(報身)이라 그래. 과보(果報)의 몸이다. 노사나(盧舍那)는 그런 뜻입니다.


그 이제 달빛을 비유를 하거든요. 달빛을 보신불(報身佛)에 비유를 합니다. 달빛이 달 크기에 따라서 빛이 다르잖아요. 달 크기에 따라서 달빛이 다르거든. 달은 변함이 없는데 그게 이제 예를 들어서 지구에 가리고 뭐 이러면 달빛이 달라진다고요. 고거 빛은 이제 보름달하고 초생달하고 영 다르거든. 그게 보신불(報身佛)의 영향력.


그 다음에 화신불(化身佛)은 뭐라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인데 歷史的인 인물. 또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라고 해 가지고 어디든지 필요로 하는 곳에 나타나게 돼있어. 저기 강에 달이 없어요. 江에 달이 없습니다. 가서 볼 때에 있어. 갈 때. 내가 가서 눈을 거기다 딱 이렇게 볼려고하면 그 순간에 달이 거기 있지 달이 거기 있는게 아니에요. 거 필요로하면 나타나게 돼 있는게 이게 화신불(化身佛) 교화(敎化)하기위해서 나타나는 化身부처님인데 그게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다. 그런 분에게 나무(南無) 귀의(歸依)하옵나이다.



과거현재미래세 시방일체제대성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과거 현재 미래세의 시방일체 제대성이 시방일체(十方一切) 모든 큰 聖人들 과거 현재 미래 이 불교에서는 三世를 늘 잘 이야기하지요. 어제 오늘 내일, 과거 현재 미래. 오늘이 있으면 어제가 있기 때문에 오늘이 있어. 오늘이 있으면 또 내일이 있어. 이걸 부정(否定)하고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그 사람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소린데 그게 될 수가 없거든요. 그게. 과거현재미래 이게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空間的으로 시방(十方), 시방일체(十方一切) 그러니까 三世 시방삼세(十方三世)가 되겠죠. 그런 일체 큰 성인들, 위대한 그 聖人들이



근본화엄전법륜 해인삼매세력고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근본화엄전법륜은 근본. 화엄을 근본(根本)으로 해서, 화엄이 근본이거든요. 왜 근본이죠? 최초에 설해서. 최초에 설한 것은 깨달음이 말하자면 그대로 드러나 있고, 깨달음이 근본이 돼 가지고서 그 다음에 모든 법문(法門)이 그 깨달음을 통해서 연출이 되거든요. 그래서 화엄(華嚴)은 고대로 깨달음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는 그대로 화엄. 그 깨달음을 통해서 다른 모든 法門들이 온갖 經典들이 전부 거기서 나온 것이니까. 華嚴을 根本으로 해 가지고서 法輪을 굴리는 것은 轉法輪. 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은 전법륜(轉法輪).


법의 바퀴를 굴리는 것은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세력권(勢力圈)이다. 해인삼매세력(海印三昧勢力). 해인삼매의 세력이다 이 말이에요. 해인삼매(海印三昧)는 말하자면은 화엄경(華嚴經)을 說하기 위한 그런 三昧. 다시 말해서 화엄경이 그 해인삼매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해인삼매 속에서 나오는 거에요. 해인삼매의 힘이다 이 말이에요. 해인 삼매의 힘이다. 그러면 모든 佛敎의 가르침이 바로 깨달음 그리고 해인삼매 그것을 통해서 모든 佛法이 펼쳐졌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죠.


그래 해인사(海印寺)가 화엄경을 펼치기 위해서 세워진 사찰이거든요. 그래서 해인사 그런다고요 해인사. 바로 화엄경을 설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명상이라 冥想. 명상이름이 해인삼매거든. 그래서 해인사. 거기가면 구광루(九光樓). 아홉 번 방광(放光)했다고 해서 해인사 제일 중심에 있는 건물이름이 구광루라고요. 아홉 구자(九) 광명이라는 광자(光). 또 거기에는 대웅전(大雄殿)이라 하고 대적광전(大寂光殿) 그러거든요.


그래 華嚴經에서는 主佛이 누군고하니 비로자나불(毘盧遮那)이야.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곳은 대적광토라 그래. 그래서 대적광전 이렇게 해 놨다고요. 그래 그런 그 사찰의 어떤 그 건립구도를 옛날에는 보면은 전부 말하자면 화엄세계를 지상에다가 펼쳐 보인 거에요. 지상에다가 사찰이름을 건립하는 것입니다. 그건 또 그것대로 작은 만다라(曼陀羅)야 사실은. 그 도량(道場) 안이 그대로 화엄세계(華嚴世界)라고요. 해인사가. 부석사가 그렇고, 저기 저 화엄사가 그렇고, 화엄사는 그대로 이름이 화엄사. 그런 내용들 우리가 그 참 면밀히 살펴보면 아주 재미가 있죠.



세력고(勢力故)이나 그 다음에 이제


보현보살제대중 집금강신신중신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족행신중도량신 주성신중주지신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보현보살제대중 집금강신신중신 족행신중도량신 주성신중주지신 이렇게 이제 쭉 나가는데. 보현보살 하는데 요게 이제 보현보살하고 여러 대중들 여기에 이제 화엄경에 보면 보현보살하고 그 다음에 해월광등 또 보살들이 쭉 이렇게 이제 많이 나와요.


그런 이들은 말하자면 십신 오십이위 수행 계위를 이제 보십시오. 십신(十信), 열 가지 그 믿음 최초의 단계입니다. 믿음을 이제 표현하는 十信의 법을 표현하는 그런 그 대중입니다. 사람이에요. 그러면 사람이 그대로 법을 표하는 거에요. 화엄경이. 그래서 사람이름을 이렇게 들먹거림으로 해서, 사람 내지 神 이름을 들먹거림으로 해서 바로 그 십신법문(十信法門), 십주법문(十住法門), 십행법문(十行法門)이 그대로 그 사람이름 속에 다 드러난다고요.


예를 들어서 누구하면 그 사람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김소월하면 착 우리 머리에 오는게 있지요. 그런 식이라. 말하자면 보현보살 하면은 십신법문(十信法門), 십신법문이 전부 보현보살 속에 착 이렇게 떠오르는거야. 이승만하면 이승만의 그 모든 그 활동상황과 그 사람의 어떤 인격과 이미지가 그냥 삭 이렇게 드러나듯이. 이게 그런 식으로 돼 있습니다. 고 내용은 이제 화엄경을 이제 보시라 이렇게 해야지. 그러나 이제 요 속에 요 이름 하나의 이름 속에 그게 이제 착 드러나는. 전부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짜여져있습니다 이게.


그래서 十信은 그 뭐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신심(信心), 무명심, 정진심(精進心) ◀十信:①신심(信心) ②염심(念心) ③정진심(精進心) ④혜심(慧心) ⑤정심(定心) ⑥불퇴심(不退心) ⑦호법심(護法心) ⑧회향심(廻向心) ⑨계심(戒心) ⑩원심(願心) 뭐 이렇게 돼 있는데. 열 가지 믿음이죠. 열 가지 믿음의 법문을 하는 것은 고 밑에 보면 【제2의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설한 육품경(六品經)◀세주묘엄품 여래현상품 보현삼매품 세계성취품 화장세계품 비로자나품▶이 십신법문에 해당함】 그렇게 했죠. 화엄경 본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요 왜 믿을 신자(信)를 쓰느냐? 佛法의 眞理를 믿어가지고 의심이 없는 경지. 아! 이건 진짜야. 요 가르침이야 말로 진짜 바른 소리야. 요건 이제 사기성이 없어. 요렇게 이제 요건 진실이다. 라고 이렇게 딱 信義 가지는 자리다 해 가지고 十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뭐 佛敎 소개받아가지고도 그 처음부터 당장에 믿고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또 그래 믿을 필요도 없고요. 자기 그 理性으로 충분히 걸러가지고 인정이 되면은 그래서 이제 믿는 거야. 믿는 거는 그 강제로 되는게 아니라고요. 자기가 저절로 믿어질 때 그게 믿음이지. 믿어라 믿어라 해서 믿어지는게 결코 아니야 그거는. 믿어지는 거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고게 이제 十信을 표한 것입니다. 보현보살제대중(普賢菩薩諸大衆)까지 가요. 그러면서 십신법문(十信法門)이 되면서 또한 십주법문(十住法門)의 발심주(發心住) 역할을 한다고요. 믿음이 꽉 차면은요. 發心이 생겨. 아 내가 믿음이 꽉 차면 어떻게? 무슨 생각나지요 그 다음에? 야! 이거 진실이구나! 그럼 내가 공부해야 되겠다. 그냥 안 있는다구요. 믿음이 딱 생기면 그냥 그 사람 가만두지를 안 해. 어쨌든 하여튼 움직이게 된다 發心이 생기게 돼. 그래 初發心地야 그 다음에 처음에. 十住 밑에 보십시오. 일은 발심주(發心住)라 그랬죠. 그래서 요 十信하고 發心住하고 같이 보는거야. 십신만심(十信滿心)에 초발심주(初發心住)가 된다 그래요. 그 믿음이 가득차면은 가득 찬 그 자리가 발심주(發心住)가 된다. 그렇게 됩니다. 그럼 고 사람. 사람으로 보면은 보현보살제대중하고 고게 이제 (제일발심주가 되면서) 十信이 되면서 제일 발심주(第一 發心住)가 되지요.


그 다음에 집금강신(執金剛神)은 어떻게 된다? 제이 치지주(第二 治地住)에 해당되겠지. 그 다음에 신중신(身衆神)은 제삼 수행주(第三 修行住)가 되겠죠? 요런 식으로 다 배당이 됩니다. 그 다음에 족행신(足行神), 도량신(道場神), 주성신(主城神) 성(城)을 맡은 신, 주지신(主地神) 땅을 맡은 신, 산을 맡은 주산신(主山神), 숲을 맡은 주림신(主林神), 약을 맡은 주약신(主藥神). 고기까지입니다. 고기까지 한번 세어볼까요? 보현보살(普賢菩薩), 집금강신(執金剛神), 신중신(身衆神), 족행신(足行神), 도량신(道場神), 주성신(主城神), 주지신(主地神), 주산신(主山神), 주림신(主林神), 주약신(主藥神), 열 명이죠. 요렇게 해서 십신하고 제일초지(第一初地)는 같이 들어간다고 그랬죠? 같이 (맥)먹힌다고 고래서 이제 보현보살제대중(普賢菩薩諸大衆)은 십신이 되면서 초발심주(初發心住)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이중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그 다음에 이제 주가신(主稼神)부터는 어디에 해당되겠죠? 十行에 해당됩니다 저절로. 그 十住가 어느새 넘어갔는데 왜 住라고 그랬느냐? 왔다갔다할 약찬게(略纂偈)하고 오십이 수행계위(五十二 修行階位)하고 왜 머물 주자(住)를 썼느냐하면은 진리의 경지 다시 말해서 부처의 삶이라고 하는거. 사람이 부처의 삶을 산다고 하는데 대한 이해. 거기에 安住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주자(住)를 써. 머물 주자, 안주할 주자 그렇게 해 놓는 거에요.


그 다음에 十行은 뭔고하니 이타행(利他行)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을 완수하고자 중생교화(衆生敎化)의 실천을 위해 정진하는 주위(住位)가 바로 十行입니다. 利他行 결국은 남을 위하는 행. 그거뿐이라고요 다른거 없습니다. 佛敎는 남을 위하는 행 그거뿐입니다. 자기 이로움도 남을 이롭게 할 때 그것을 통해서 내가 이로워진다. 이렇게 보는게 불교의 이론입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불교 안 믿어야 돼요. 남을 이롭게 함으로 해서 내가 이로워진다. 라고 보는게 불교의 행복의 열쇠라고요. 『남을 행복하게 할 때 남을 즐겁게 할 때 내가 즐거워진다.』라고 하는게 佛敎의 어떤 그 原理입니다. 「내가 이로울 때 남도 이로워진다」하는 그거 아니에요. 남을 이롭게 할 때 그것을 통해서 내가 이로워진다. 그래서 利他行을 불교에선 중요시여깁니다.


그래서 이타행(利他行)을 완수해야 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돼? 중생교화(衆生敎化)해야 돼. 사람들을 자꾸 敎化하고 사람들을 보살피고 사람들을 위해줘야 되는데 고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精進하는 地位가 十行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거 주가신(主稼神)부터 줄을 딱 그어가지고 十行에 해당되는 것은 주가신(主稼神) 요건 농사지을 가자(稼)입니다. 농사짓는 그 일 자체의 神이야. 농사 안 지으면 부처고 뭐고 없잖아요.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아야 뭐 일단 부처를 믿던지 뭘 믿던지 할 거 아닙니까? 그야말로 신이야. 농사 그 자체가 神이야. 藥 그 자체가 神이야, 숲 그 자체가 神이고, 山 그 자체가 神이라고요. 아까 그 이야기는 충분히 말씀을 드렸죠.


주가신(主稼神) 주하신(主河神) 그 다음에 주하신중주해신(主河神主海神) 이 무리 중자(衆)는 『하나가 아니고 많다』하는 뜻입니다. 어디 江이 하나뿐입니까? 많죠. 주해신(主海神) 저 우리 부산은 바다혜택을 많이 보고 있죠. 그야말로 神이라 해도 절대 아깝지가 않습니다 바다가. 그래 주해신(主海神), 주수신(主水神), 주화신(主火神) 세보면요. 그다음에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 주방신중주야신(主方神衆主夜神) 주방(主方)이라고 하는 것은 이건 방향 방자(方)입니다. 동쪽 서쪽 하는 그 方字에요. 그 다음에 주야신(主夜神) 주주신중(主晝神衆) 거기까지지요 아마? 거기 까지 (열 번이죠) 열 분입니다.


밤 신, 낮 신. 낮이면 낮이지 무슨 뭐 낮 神이라 할게 뭐 있습니까? 그런데 아니야 神이라 해 줘야 돼. 부처라고 해 줘야 된다고요. 밤은 밤대로 부처님이요, 밤은 밤대로 보살님이요, 밤은 밤대로 신이야. 낮은 낮대로 신이야. 낮의 고마움 밤의 고마움 참 기가 막히죠 알고 보면은.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 뭐 이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거 하나만 가지고 주풍신(主風神) 하나만 가지고도 뭐 얼마든지 논문을 써도 뭐 한 백 페이지 논문을 쓸 수 있을거야. 왜 神이라고 해야 하는가? 바람을 가지고 왜 神이라고 해야 하는가? 사실은 뭐 부처라고 붙여줘도 아깝지가 않고 神이라고 붙여줘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십회향(十廻向)이야. 아수라(阿修羅)부터 십회향(十廻向)에 해당되지요. 십회향을 이제 또 봅시다. 十廻向은 회향(廻向). 우리가 돌린다 그러거든요. 회향한다. 나의 善行을 一切衆生에게 돌려준다. 그 功德으로 어디 가겠어요? 우리가 부처가 되는 거지요. 정말 행복하게 사는 거지요. 우리가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합니다. 아주 좋은 일들을 많이 해요. 좋은 일을 해 놓고, 좋은 일 했으니 요건 전부 내꺼야 하질 않고. 좋은 일을 한 그 공덕, 그 功德을 다른 사람에게 또 돌려주는 거야. 좋은 일한 것도 남을 위해서 좋은 일 했고, 좋은 일 했으니까 내한테 돌아오는 공덕이 있어. 그것도 딴 사람에게 또 돌려요. 그럼 뭐 그야말로 공덕을 뭘로 받아? 따따블로 받는거지. (웃음) 참 이치가 간단하다고요. 이치가 간단해. 그래 좋은 일 한 공덕은요. 금방 돌아오는게 금방 또 할 수 있어 좋은 일 또 하고 싶어져. 그 참 묘해. 그럼 좋은 일 해 놓고 거기에서 돌아오는 공덕을 또 딴 사람에게 돌려준다. 그게 회향이야 회향(廻向). 회향의 뜻이 그겁니다. 아시겠죠? 내가 좋은 일 하고 그 좋은 일 해서 돌아오는 공덕을 중생들에게 돌려줘 딴사람에게 돌려준다 그랬을 때 돌아오는 그 功德 그것은 결국은 부처가 될 수밖에... 그건 뭐 부처죠 이미. 그런 이를 일러서 부처(佛陀)라 하고 菩薩이라고 하는 거죠.


그게 이제 십회향(十廻向)의 내용인데 그런 그 내용들을 사람으로서 표현한 것, 또는 神으로서 표현한 것이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우리가 아수라(阿修羅), 긴나라(緊那羅) 안 좋은 神으로 봤죠? 천만에! 그건 그것대로 다 필요한 神이야. 필요한 신이라고요.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야차왕(摩喉羅伽夜叉王) 그 다음에 제대용왕구반다(諸大龍王鳩槃茶) 건달바왕월천자(乾達婆王月天子) 일천자중(日天子衆)까지 세어 보면 열 명이 돼요.


월천자(月天子)는 달이야 일천자(日天子)는 해라고요. 저 지금 밖에 저렇게 하늘에 떠 있는 해가 바로 일천자(日天子)야. 이런 모든 세상에 우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 안 좋다고 생각했던 것,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어울려가지고 세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뚱이 속에 안 좋은 것이 많죠. 그렇다고 그거 빼 버리면 우리가 살아남을 줄 알아요? 못 살아요. 나라고 하는게 없어져 버려 그래 되면. 필요해요 필요해. 다 필요하다고요.


무슨 뭐 쌀만 필요하고 그 겨는 필요없다 해가지고 쌀만 열려라 하면 그 쌀만 열려질 줄 압니까? 그 껍질이 없으면 쌀이 안 생겨요. 이치가 우리가 알고 보면은 하~~나 뭐 누구 더 잘난 것도 없고 더 못난 것도 없고 똑~같이 존중받아 마땅한. 尊重도 이만저만 존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부처(佛陀)로 존중받아 마땅한, 神으로, 저 아주 훌륭한 그 아버지 하나님으로 존중받아 마땅할 그런 존재들입니다. 모든 것이요. 삼라만상(森羅萬象) 그 무엇 하나도 그렇지 아니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십회향(十廻向) 뜻은 그렇게 알았죠. 도리천(兜利天)부터 십지(十地)에 해당됩니다. 그 十地는 이제 땅 지자(地)지요. 땅 지자(地)는 땅의 역할 그것도 또 참 가당찮죠. 우리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어떤 자리에 있으면서 德을 保存하고, 眞理를 保存하고, 그것을 育成하는 것. 육성하는 것 그것에 의해서 결국은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거죠. 말하자면 땅에서 어떤 씨앗이 保存되고, 또 거기서 싹이 트고, 그래서 결국은 열매를 맺어간다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진 것이 땅 지자(地)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제 十地다 그러는 거에요. 고런 역할을 한다 이거에요. 고런 역할을 하는 것이 땅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아까 말씀드렸듯이. 온 宇宙는 전부 꽃으로 널려있다. 그 꽃밭을 걸어가는 그 사람도 역시 꽃이야. 어디가도 꽃이라.




화엄경 약찬게(華嚴經 略纂偈)


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나무화장세계해 비로자나진법신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과거현재미래세 시방일체제대성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근본화엄전법륜 해인삼매세력고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보현보살제대중 집금강신신중신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족행신중도량신 주성신중주지신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주산신중주림신 주약신중주가신

主山神衆主林神 主藥神衆主稼神

주하신중주해신 주수신중주화신

主河神衆主海神 主水神衆主火神

주풍신중주공신 주방신중주야신

主風神衆主空神 主方神衆主夜神

주주신중아수라 가루라왕긴나라

主晝神衆阿修羅 迦樓羅王緊那羅

마후라가야차왕 제대용왕구반다

摩喉羅伽夜叉王 諸大龍王鳩槃茶

건달바왕월천자 일천자중도리천

乾達婆王月天子 日天子衆兜利天

『꽃이 꽃밭을 걸어가고 있다』이렇게 이제 봐야 된다. 뭐 꼭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고 내가 거기까지 언제 올라가나 이렇게 이해하면 그건 화엄경(華嚴經) 이해 잘못하는 거에요. 처음 출발부터가 꽃이야. 출발부터가 신이요 부처요 ***로서 말하자면 감이 없이 가는 거야. 그걸 이제 여공중도적(如空中道跡)이라 그러는데 마치 새가 앞산에서 뒷산으로 날아가는 거와같이 그렇게 자취가 없어. 우리가 살아가되 살아가는 자취가 없는거, 수행을 하되 수행하는 자취가 없는 것을 그렇게 이제 표현합니다.


본래 부처인데 다시 부처될게 어디 있느냐 이거거든요. 그럼 본래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또 부처될게 있어. 그게 어떻게 들으면 모순 같지만은 앞산에 있는 새는 뒷산으로 날아가야 돼. 날아가고 싶어서 날아가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흔적이 있는게 아니라고. 선(線)이 그어져 있거나 뭐가 아무 흔적이 없어. 그렇게 흔적 없이 날아가. 갔다고 해서 뭐 거기에 무슨 뭐 모이가 더 있는 것도 아니라고요. 모이가 더 있는 것도 아니고, 환경이 더 좋은 것도 아니야 똑같애. 똑같지만은 이게 살아있는 존재기 때문에 안 날아가고는 못 배겨. 날아가야 돼.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쌓아나가야 되고 하루하루 살아가야 돼.


그 살아가는 과정을 말하자면 중생에서부터 저 부처의 단계로 올라가는 거라고 이렇게 그려 놓은 거야. 참 이 기가 막힌 거라. 우리의 삶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앞으로 발전하는 그런 그 삶을 살아야 된다. 그런 꿈과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말하자면은 보살 오십이 수행계위(菩薩 五十二 修行階位)야. 이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살아야 되는 거에요. 보다 더 내일.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라고 이 자리에 왔잖아요 여러분들. 내일이 내 인생에 오늘보다 나아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온 거에요. 고런 계산은 안했어. 올 때 계산은 안했지만은 이것은 본능이야.


사람의 본능으로 내일의 삶이 더 나아져야 된다고 하는 그런 어떤 그 목적의식에서 이 자리에 온 거에요. 본능이라구요 이거는. 누가 가르쳐줘서 하는 것도 아니요, 마음속에 그런 계산을 해서 온 것도 아니요, 또 그런 소리를 일찍이 들어서 온 것도 아니야. 본능적으로 그냥 움직이게 돼 있는 거야. 더 나아져야 되는게 우리의 본능이라. 그게 우리 삶이라. 그 삶을 이렇게 멋지게 그려놓은 거에요. 그 오십이위(五十二位) 그 지위점차(地位漸次)를 이렇게 멋지게 그려놓은 거에요. 우리가 어차피 걸어가야 할 삶이라면은 더 행복하고 더 발전되고 더 나은 삶으로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건 당연한 거지요.


그래서 그 다음에 이제 십지(十地), 도리천(兜利天) 야마천(夜摩天) 도솔천(兜率天). 천왕이다 그랬네요. 天王 최고위 아닙니까? 천자(天子)란 말이나, 천왕(天王)이란 말이나, 뭐 하여튼 좋은 말, 고급스러운 말, 존귀한 존칭 이건 다 갖다놨습니다 여기다.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이것도 전부 王이에요. 뒤에 저 구체적으로는 아수라왕(阿修羅王) 가루라왕(迦樓羅王) 긴나라왕(緊那羅王)인데 요 일곱 자로 맞추기 위해서 그것이 생략이 돼서 그렇죠.


그 담에 야마천(夜摩天), 도솔천(兜率天), 화락천(化樂天), 타화천(他化天), 대범천왕(大梵天王), 광음천(光音天), 변정천(遍淨天), 광과천(廣果天), 대자재왕불가설(大自在王不可說). 불가설(不可說)까지 이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많은 이들』이라고 하는 그런 뜻에서 여기까지 이제 불가설(不可說)이라고 이렇게 붙였습니다.


그 담에 이제 또 보면은 보살들이 또 다시 등장하죠. 처음에 普賢菩薩이 나왔고 뒤에 또 보현보살이 이렇게 또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이제 씨줄로 날줄로 그야말로 화엄만다라의 세계를 우리가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삶이 그렇게 쌓아나가는 삶이에요. 이 전개돼있는 화엄 만다라 속에서.


그런 식으로 화엄경은 구성이 됐고 또 그걸 그렇게 보았어요. 깨달은 눈으로 부처님의 깨달은 눈으로 보니까 이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게 화엄 만다라(華嚴 曼陀羅)의 세계로 꾸며져 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꾸며져 있더라. 그러니 우리가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 길을.


보현보살 보현문수대보살(普賢文殊大菩薩) 법혜공덕금강당(法慧功德金剛幢) 법혜보살(法慧菩薩) 공덕보살(功德菩薩)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금강혜보살(金剛慧菩薩) 그 담에 광염당보살(光焰幢菩薩) 수미당보살(修彌幢菩薩) 그 담에 대덕성문사리자(大德聲聞舍利子) 급여비구해각등(及與比丘海覺等) 우바새장우바이(優婆塞長優婆夷) 선재동자동남녀(善財童子童男女)



요건 이제 또 딴 이야기에요. 딴 이야기인데 우선 그 보현보살(普賢菩薩) 그것 들어가기 전에 저기 다른 것을 한번 보살 오십이 수행계위(菩薩 五十二 修行階位)를 잠깐 또 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제 등각(等覺) 묘각(妙覺)이 밑에 이제 이렇게 나와 있어요. 등각 묘각이 나와 있는데, 요 등각묘각은 보면은 제7회 보광명전(寶光明殿)에서 설한 십일품경(27.십정품 28.십동품 29.십인품 30.아승지품 31.여래수량품 32.보살주처품 33.불부사의법품 34.여래십신상해품 35.여래수호광명공덕품 36.보현행품 37.여래출현품) 이 거기에 해당되고 그 담에 제8회 보광명전(寶光明殿)에서 설한 일품경(이세간품)이 묘각에 해당된다 그랬어요. 그러면은 등각(等覺)은 등자는 동등할 등자(等) 이 말이거든요. 동등하다 그럼 각(覺)과 동등하다 이 말이에요. 그럼 그 覺은 무슨 각인고? 묘각(妙覺)이란 말입니다. 묘각과 동등하고 밑에는 바로 곧바로 묘각이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등각(等覺)은 같다 그랬지, 그건 직접 그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서 뭐 “아! 그 사람 같다” 하면은 그 사람이란 말은 아닙니다. 「그 사람같다」이래했지 「그 사람」이라고 했나. 우리가 그런 말하잖아요. 「그거하고 비슷하다고 했지 그거라고 하진 않았다」이런 말이 있듯이 등각(等覺)이란 말은 딱 그 뜻입니다. 覺하고 비슷하다 이거야, 같다 이 말이야, 같기만 하지 각은 아니야. 그럼 바로 覺은 뭔고하니 妙覺이 覺이라고요. 그게 이제 佛이라.


그러나 이제 이런 것들을 이렇게 사실은 나누어 본 것이지 뭐 크게 여기에 이 지위(地位)에 와서 분별이 크게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또 세밀하게 우리의 어떤 그 마음의 변화상. 예를 들어서 이쪽 꽃밭 끝에서 저 쪽 꽃밭 끝까지 걸어가면서 똑 같은 꽃밭이지만은 그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마음의 변화는 있을 거야. 틀림없이 마음의 변화의 모습은 있을 거라고요. 뭐 지루하면 지루하다든지 더 아름다우면 더 아름답다든지 아니면 그만치 더 걸어왔으니까 더 황홀하다든지, 마음이 더 정화(淨化)가 돼 가지고 아주 명경지수(明鏡止水)같이 정말 마음이 맑아졌든지. 뭐 그런 변화는 있을 거야.


그런 그 변화를 이 오십 두 가지로 이렇게 한 번 또 펼쳐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많이 나눌 수도 있겠죠. 그거 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고 해서 무슨 육조스님 같은 이들은 당당히 그냥 바로 부처가 되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이것을 오십이 단계로 나누지만은 이 보다 더 많을 수도 있고 영 생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생략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이제 왜 이렇게 십십십 해서 오십으로 해가지고 이 단계를 이렇게 했는고 하니, 본래 이 이런 계위가 이 뒤에도 이제 역시 선재동자(善財童子)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요걸 이제 잘 알아야 돼요. 부처님을 이렇게 보니까 저렇게 뛰어난 인물은 하루아침에 된게 아닐거다 이거야.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 틀림없이 과거에 닦았다 이거야. 그럼 과거에 오랫동안 닦은 것을 또 과거에 닦았다. 과거에 많이 닦았다. 이 말 한 마디 가지고는 또 부족하다 이거야. 그럼 과거에 많이 닦은 것을 좀 더 세분해서 우리가 이해를 하자 이 말이야.


그럼 세분해서 이야기하다보니까 그러면 그걸 보살행위(菩薩行位)라고 하고 보살행위는 열 개의 단위가 있는 걸로 우리가 한 번 이해를 해 보자. 그렇게 이제 열 개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뭐 오십 년을 살았다, 육십년을 살았다 그래 가지고 예를 들어서 자기의 어떤 그 무슨 뭐 수기(手記)를 썼다 해도 그 어떤 단계를 이렇게 그어서 연도(年度)로 나누듯이 뭘 이래 그어서 나눠가지고 쓰면은 편리할거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과거 수행도 열 단계로 그어 보는 거야 나눠보는 것입니다. 그걸 보살십지(菩薩十地)라 그래.


처음에는 52단계로 이렇게 안 나눠져 있었어요. 교리가 발전하면서 요게 이제 나누어졌지. 그래서 열 단계로 나누어서 보던 것이 이거 가지곤 부족하다 이거야. 그래서 좀 더 세분하고 세분하고 세분해가지고 이렇게 오십이 단계가 대승교리(大乘敎理)에는 52단계로 이렇게 정착이 된 것인데. 이보다 훨씬 더 나눌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가 예를 들어서 무슨 뭐 한 1Km 되는 꽃밭을 우리가 걸어간다 할 것 같으면 처음에 발걸음 옮길 때 하고 차츰차츰 갈 때하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변화가 있을 것이고, 마음의 어떤 그 저 어떤 무의식(無意識)속에서 변화는 틀림없이 있을 거거든요. 그런 것들을 낱낱이 세밀하게 이렇게 분리해 보면은 많은 그 변화를 우리가 읽을 수가 있겠죠. 그것을 더 세밀하게 나눌 수도 있고 더 단축시킬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선가(禪家)에 와 가지고는 그것을 확 단축을 시키지요. 그래서 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다. 한다든지 아니면은 무슨 뭐 동정일여 참선(參禪)을 할 때요. 동정일여 그 담에 무슨 뭐 오매일여 그 담에 몽중일여.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 뭐 이런 식으로 그렇게 이제 나누기도 하고, 아니면 뭐 한꺼번에 그냥 바로 깨달았다 이렇게도 나누기도 하고 그렇게 이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뭐 오십이위(五十二位)로 나눴던 몇 위로 나눴든 크게 우리가 마음 쓸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능엄경(楞嚴經)도 이제 52位로 나눠져 있어요. 능엄경엔 55位인가 그렇게 돼 있지 아마. 여기는 이제 오십이위(五十二位)가 그거하고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이렇게 나눈 것이 거의 정확한 나눔으로 그렇게 봅니다.


그 십지(十地) 밑에 보면 제2회 보광명전에서 설한 육품경(7.여래명호품 8.사성제품 10.보살문명품 11.정행품 12.현수품)이렇게 했거든요. 요게 이제 뒤에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이라는 데 가서 한 번 더 언급하겠지만 그럼 일 회(一會)에 설한 것은 뭐냐? 일 회는 왜 여기 빠졌느냐? 또 이렇게 볼 수가 있고. 그 다음에 팔 회까지는 왔는데 구회(九會) 라고 알고 있는데 왜 구 회는 어디 갔느냐? 또 이렇게 볼 수도 있어요. 거기에 말하자면 문제를 우리가 제기를 해야 됩니다.


화엄경 전체가 보살 52계위(菩薩 五十二 階位)가 중심이 돼요. 그래서 이 회(二會)부터 팔 회(八會)까지 중간이 말하자면 본론이 되면서 화엄경 전체의 중심이 되고, 그 다음에 제 일회(一會)에 설한 것은 서론격(序論格)이 되고, 그 담에 이제 마지막 구 회(九會)에 설한 것은 결론격(結論格)이 됩니다. 그래서 일 회에 설한 것은 부처의 성불이다 그래요. 제 일회(第一會)에 설한 육품경(六品經)입니다.


육품경은 부처님의 성불이다 그렇게 보고, 그 다음에 이 회(二會)요게 이제 제대로 된 것인데 요게 이제 오십이위(五十二位)를 닦아가는 보살 수행인데 요것이 이제 굉장히 양도 많고 華嚴經의 本論的인 내용이 되죠. 그 담에 이제 마지막 구회에서는 선재동자가 오십삼 선지식을 친견하면서 수행해가는 그런 내용의 이야긴데 그것은 중생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같은 중생이 發心을 해 가지고 부처가 되기까지의 그 과정을 아주 멋지게 그려놓은 것이 구회(九會)의 이야기에요.


그러면은 그것도 역시 요거하고 중복으로 된다고요. 뒤에 이제 선재동자선지식(善財童子善知識) 앞에 얼핏 봤지만은 선재동자선지식도 요 앞의 보살 오십이 선지식 법을 표한 내용이나 법을 표한 대중들이나 선재동자의 선지식이나 전부 요렇게 매칭이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서 본문의 내용하고도 전부 연결이 되고. 그것은 결국은 뭔고하니 우리의 삶의 전 과정이다. 그렇게 보면 돼요. 삶의 전 과정. 우리의 삶의 전 과정이 오십이위(五十二位)이고, 그것을 한 인간을 이렇게 구체적인 한 인간을 내세워가지고 그 과정을 그려놓은 것이 말하자면 선재동자가 선지식 찾아가는 구체적인 행위를 그렇게 나타내 보인거죠. 이런 식으로 구성이 돼 있습니다. 화엄경에 평소에 조금 조예(造詣)가 있는 이들은 얼른얼른 이해가 되겠습니다만은 그런 관계들은 이제 화엄경에 조예가 없으면은 얼른 안 들어가겠죠. 그러나 이제 이렇게 한 번 들어두면은 참고가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보현보살 보현문수대보살(普賢文殊大菩薩) 하는 여기에는요. 선재동자가 등장하는 전초작업이라고 할까요. 그런 어떤 그 환경 설정을 위해서 보살들이 많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 요거는 이제 그런 내용이 됩니다. 보현보살이 등장을 하고, 그러니까 八會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설한 一品經(38.이세간품)까지 다 끝난 택이거든요. 여기에 이제 고런 인물 배제는 꼭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부처의 경지기 때문에. 그래서 보현보살(普賢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법혜보살(法慧菩薩) 공덕보살(功德菩薩)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금강혜보살(金剛慧菩薩) 광명당보살(光焰幢菩薩) 수미당보살(修彌幢菩薩) 이런 보살들이 등장을 하고 그 담에 대덕(大德), 큰 덕이 많은 덕이 많은 이다 하는 말입니다. 聲聞들 舍利 舍利佛 목건련(目健蓮) 뭐 이런 이들입니다. 그리고 비구해각등(比丘海覺等) 그 담에 우바새(優婆塞) 長이라는 뜻은 장자(長者)라는 뜻입니다. 또 우바이(優婆夷). 우바새(優婆塞)는 남자신도, 우바이(優婆夷)는 여자신도 그렇죠.


이런 이들이 말하자면은 선재동자의 선지식으로 이제 등장을 하게 되는데 선재동자동남녀(善財童子童男女)하고 선재동자하고 그 담에 동남동녀 동남녀(童男女)란 말은 동남동녀 각각 오백 명씩이 되지요. 기수무량불가설(其數無量不可說)이라 그랬는데 그 숫자가 저 앞에 보현보살 뭐 보현문수대보살(普賢文殊大菩薩) 법혜공덕금강당(法慧功德金剛幢) 금강장급금강혜(金剛藏及金剛慧) 대덕성문사리자(大德聲聞舍利子) 급여비구해각등(及與比丘海覺等) 우바새장우바이(優婆塞長優婆夷) 해 가지고 그 숫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숫자들이에요. 선재동자하고 선재동자(善財童子) 한 사람을 위해서 주변에 이제 등장한 인물들입니다. 그래 이제 선재동자(善財童子) 한 분만 간게 아니라 오백동자(五百童子) 오백동녀(五百童女)가 같이 간다고요.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찾아갑니다. 그 숫자가 기수무량불가설이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하는 그런 이야깁니다.


그 다음에 이제 선재동자선지식(善財童子善知識)은 문수사리(文殊舍利)가 최제일(最第一)이고 맨 처음에 문수보살을 만난다고요. 그 다음에 덕운해운선주승(德雲海運善住僧) 해 가지고 쭉 나가는데 고 얘기는 다음시간에 하기로 하고 여기까지 이제 말하자면 보살이 수행해가는 52계위 (五十二階位)그 관계와 여기에 있는 그 등장하는 그 階位의 法門을 표현하는 나타내는 인물들을 소개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약찬게(略纂偈)를 읽을 때 그 인물 이름을 이렇게 한 번 읽음으로 해서 그 법문이 그 인물 한 사람 속에 다 포함된다 이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십주(十住)에 열 사람, 십행(十行)에 열 사람, 십회향(十廻向)에 열 사람. 왜냐 십행(十行)이니까. 그러면 예를 들어서 환희행(歡喜行), 요익행(饒益行), 무위역행(無違逆行) 뭐 무진행(無盡行) 해 가지고 열 개의 行이 있다고요. 그럼 그 한 행 한 행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딱 그 의미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야. 그럼 그 사람은 바로 그 행의 법문 내용을 또는 그 안에 있는 사상의 어떤 모든 것들을 자기가 하나의 이름으로써 표현한다. 이렇게 된 거에요. 그러니까 고 이름 하나 딱하면은 벌써 환희행(歡喜行)의 모든 내용이 그 이름 속에 포함된 거라. 그러니까 약찬(略纂)이지 간략하게 편찬한 거지. 환희행 이야기가 얼마나 길다고요. 굉장히 길거든요. 그럼 여기서 이름 한 사람 딱 들먹거림으로 해서 歡喜行에 대한 法門 내용이 그 이름 속에 다 포함되어 버리는 거라. 그걸 약찬(略纂)이라 그래 약찬(略纂).


예를 들어서 十地 法門이 얼마나 많습니까. 책으로 한 권이거든요. 한 권인데 여기 열 사람 이름가지고 그냥 예를 들어서 도리천(兜利天), 야마천(夜摩天), 도솔천(兜率天), 화락천(化樂天), 타화천(他化天), 대범천(大梵天), 광음천(光音天), 변정천(遍淨天), 요 이름 하나 하나 할 때마다 일지 이지 삼지 사지 요렇게 그냥 다 그 내용을 생략을 하고 이렇게 이름하나로써 나타내는 거지요. 그래서 약찬(略纂)입니다. 그래 이름 한 번 읽으면은 요 열 명 이름 읽으면은 십지법문(十地法門)이 다 끝난 거에요. 또 열 명 이름 읽으면 십회향법문(十廻向法門)이 끝나고, 또 열 명 이름 읽으면은 십행법문(十行法門)이 끝나고, 십주법문(十住法門)이 끝나고, 십신법문(十信法門)이 끝나고, 등각(等覺)묘각(妙覺)이 끝나고, 이런 식으로 전부 이 짧은 약찬게 속에 화엄경 전체가 전부 농축이 되어 있습니다. 엑기스에요. 그야말로. 화엄경 엑기스가 이 약찬게라고요. 전부 농축이 다 되어 있어. 고 관계를 이제 이해하시겠지요?


이걸 이제 알고 읽으면은 그냥 입이 안 떼지지. 어떤 것은 한 품이 그냥 그 속에 다 들어있는데 사람 하나 속에 그 한 품이 많은 내용이 다 그냥 무르녹아 있다고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약찬게(略纂偈)를 공부하고 이렇게 외우고 읽으면은 더 이제 信心이 나고 또 화엄경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고 또 화엄경을 읽고 싶을 때 이걸 이제 척 이렇게 한 번 읽으면은 그만 華嚴經 全篇을 다 읽는 그런게 되겠지요.


이렇게 해서 오늘은 선재동자선지식(善財童子善知識) 그 前까지 한 걸로 하고 다음시간에 선재동자선지식(善財童子善知識)하고 그 담에 각각 품, 品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면 이제 華嚴經 전체를 쭉 한 번 섭렵하는게 되겠습니다. 오늘 서두에 말씀드린게 제일 중요해요. 서두에 말하자면은 華嚴經의 視覺은 어떤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나있는 모든 삼라만상을 대표하는 이름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그대로 전부 열거한 것이다. 왜 그렇게 열거해서 화엄경의 의미를 삼는가 라고 하는 것 뭐 이런 관계들을 序頭에 말씀을 드렸는데 그게 아주 핵심이 되겠습니다. 오늘 法會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딱딱딱딱 (죽비소리)

지난 시간부터 화엄경 전체적인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약찬게를 가지고 공부를 합니다. 화엄경 약찬게라고 하는 것은 화엄경을 간략하게 또는 간추려서 편찬한 그런 내용이다. 그래서 비록 간추리고 간략하긴 했지만은 이 화엄경 약찬게 속에 화엄경 전체의 내용이 다 들어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화엄경 약찬게를 한 번 외움으로 해서 화엄경 한편을, 화엄경 전체의 그 책 80권을 읽는 것하고 똑같이 우리가 생각을 하고 읽는 거지요. 또 그만치 그 한구절한구절 속에는 화엄경의 그 방대한 경전 속에 담겨있는 내용이 함축돼 있기 때문에 뜻이 깊다고 이제 생각을 해야 되겠지요. 한구절한구절 속에 그만치 많은 뜻을 또 담고 있습니다.


약찬게를 우리가 접하다보면은 제일 머리에 먼저 떠오르고 또 읽고 나서도 남는 것은 결국은 이제 여러 신들, 보현보살제대중(普賢菩薩諸大衆) 집금강신신중신(執金剛神神衆神) 족행신중도량신(足行神衆道場神) 주성신중주지신(主城神衆主地神)이라고하는 쭉 그 신장(神將)의 이름이 나열이 되고 그걸 이제 우리가 화엄신중(華嚴神衆) 그렇게 해서 신중단(神衆壇)을 향해서 예배(禮拜)를 드리고 또 신중단에게 기도도하고 그러죠. 그걸 이제 우리가 사찰에 가면 통칭 화엄신중 화엄신중 그렇게 이제 말을 합니다. 그게 이제 화엄경에 나오는 신중들입니다. 신중(神衆), 여럿이라고 해서 중자(衆)를 「무리 중」字(衆)를 쓰고 또는 그 하는 일이 어떤 그 호위(護衛) 불법옹호(佛法擁護) 이런 그 일을 주로 담당하기 때문에 신장(神將)이다 지키고 옹호(擁護)할려면 힘이 있어야 되니까 그래서 장군이라고 할 때 쓰는 그 장字(將)를 그렇게 씁니다. 神이라고 하는 신자하고 신장이라고하는. 그래서 신장(神將) 신장님 이런 말도 하고 그러죠. 그래서 신장(神將)이라고 할 때는 뭐 화엄신장(華嚴神將)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제 무슨 도량신(道場神)이니 또 여러 가지 神으로 이야기를 하지요. 그 다음 화엄신중(華嚴神衆) 속에는 神이라는 이름 이외에도 菩薩들도 있고 무슨 뭐 王들도 많고요 天子도 많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후라(摩喉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아수라(阿修羅) 또 야차(夜叉) 용왕(龍王) 건달바(乾達婆) 구반다(鳩槃茶) 뭐 일천자(日天子) 월천자(月天子) 도리천왕(兜利天王) 도솔천왕(兜率天왕) 화락천왕(化樂天王) 타화자재천왕(他化自在天王) 하늘의 王들까지도 이렇게 쭉 그 나열이 되고 있어요. 그렇게 많이 나열이 되는 그 신장(神將)들 천자(天子)들 왕(王)들 또는 뭐 천룡팔부(天龍八部)들 이런 많은 것들이 도대체 華嚴經에서 또는 그 우리가 화엄신중(華嚴神衆) 할 때 대개 이제 佛敎를 옹호(擁護)하고 또 佛法을 믿는 사람들을 옹호하고 부처님을 받들고 하는 그런 이야기로 一般化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 신중(神衆)을 보통 그 신중단(神衆壇)에 그려놓은 그런 그림의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형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그 신장(神將)들을 본 사람은 또 없습니다. 봤다면은 우리가 그 사천왕전(四天王殿)에 라든지 아니면 신장(神將)에서 본 그것이 머리에 마음속에 남아있어서 그것이 재현(再現)해서 나타났을 뿐이지 그 외에 어떤 독특한 어떤 그 형체를 독립된 어떤 그 형체를 지닌 어떤 존재로서 나타나 가지고 무슨 뭐 좌지우지한다든지 또 우리의 어떤 그 삶을 이렇게 바꿔놓는다든지 하는 그런 일은 없어요.


그러면은 우리가 소위 신장(神將)이라고하는 그 화엄신장(華嚴神將)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華嚴經 안에 있는 내용과 우리가 일반화된 그 불교 상식에서의 어떤 그 신장(神將)까지 다 합해서 그럼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이제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 지난 시간 그 내가 그것을 많이 언급했습니다 마는 내 주변에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가 신장(神將)입니다. 그러기에 일천자(日天子) 뭡니까 태양이에요. 월천자(月天子) 바로 달입니다. 주수신(主水神)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 주화신(主火神) 물을 담당하는 신, 불을 담당하는 신, 땅을 담당하는 신, 무슨 바람을 담당하는 신, 허공을 담당하는 신 이런 식으로 이게 돼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요. 우리 주변에 있는 널려있는 모든 삼라만상이 전부 이 속에 다 포함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치도 못하는 어떤 그 기상천외의 어떤 인간들도 있고, 그런 어떤 세상도 있고, 그런 어떤 경험도 있고, 그런 것까지도 다 이 속에 다 포함돼요.


예를 들어서 뭐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喉羅伽) 야차왕(夜叉王) 도대체 듣도 보도 못한 인물들인데 그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어떤 그 사건들 또 그런 사람들 그런 상황들 뭐 어제 있었던 일이 오늘 있을 수도 있고, 과거에 있었던 일이 미래에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만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요. 항상 새로운 상황입니다. 알고 보면 항상 새로운 상황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그 상황 속에서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어떤 그 기상천외(奇想天外)의 일들 뭐 이런 것은 또 우리가 뭐 여기 주풍신(主風神) 주공신(主空神)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외의 다른 것 저급한 거라든지 고급한 거라든지 뭐 고급한 거라면 뭐가 있습니까?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든지 무슨 뭐 야마천(夜摩天)이라든지 화락천(化樂天)이라든지 대범천(大梵天)이라든지 광음천(光音天)이라든지 하늘이라고 하는 그런 그 인간보다도 훨씬 차원이 높은 그런 그 입장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내보다도 훨씬 그 수준이 높은 어떤 그 세계의 어떤 사람들과 또 내 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은 정신세계 또는 어떤 그 생활 이런 어떤 그 세계의 사람들과 사람이 이뤄가고 있는 모든 영역들을 전부 일컬어서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기 가루라 긴나라 아수라 야차 이런 것들은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저급(低級)하고. 가끔은 우리가 또 이렇게 지금은 보통 사람으로 이렇게 있습니다만 훨씬 지금보다도 못한 생각을 하면서 살 때도 또 있고 그런 행위를 하면서 살 때도 있고 또 지금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거의 신선(神仙)이 다 된 또는 부처가 다 된 그런 어떤 그 행동과 선업을 지으면서도 또 살아가는 그런 순간도 또 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말씀드리면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는 말을 하는데 「한 인간의 한 순간 속에는 삼천 가지의 어떤 그 삼천 가지 차원의 삶이 포함돼 있다」하는 것입니다. 무슨 뭐 육도윤회(六道輪廻)만이 아니에요. 삼천가지종류의 길을 우리가 윤회(輪廻)하고 다닙니다 사실은. 하루에도 그럴 수가 있는 거에요.


또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람들도 만나고 아주 저급한 사람들도 만나고 내가 그렇게 될 때도 있고 내가 그리 높아질 때도 있고 내가 저급해질 때도 있고 이런 모든 그 상황들. 그야말로 이 세상에 널려있는 나를 중심으로 해서 내 주변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널려있는 모든 사건, 상황, 사물, 시간과 공간 다 합해서요. 그런 것들이 모두가 화엄신중(華嚴神衆)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대자재왕불가설(大自在王不可說)까지 했어요. 두 번째 장 오늘은 보현문수대보살(普賢文殊大菩薩) 지난시간도 약간 언급했습니다 만은

화엄경(華嚴經)이 전체적으로 사십품(四十品)인데 오늘 나눠드린 그걸 볼까요? 오늘 나눠드린 유인물 『화엄경 7처 9회 40품』이라고 하는거. 거기에 보면은 제 일회 보리도량(第一會 菩提道場). 이것도 이야기할 기회가 따로 있습니다만은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의 六品 이것은 이제 비로자나의 성불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 담에 이제 제2회 보광명전(普光明殿) 제3회 제4회 제5회 제6회 제 7회 제8회까지가 보살의 성불과정을 쭉 이야기 했는데 그것이 지난시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십지(十地), 등각(等覺), 묘각(妙覺) 보살(菩薩)로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밟아가는 그런 과정입니다. 고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회향(十廻向) 그거는 이제 유인물 속에 다 명칭이 있었죠. 고 명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뭐 우리가 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십신(十信)은 뭐다 住는 뭐다 行은 뭐다 하는 것은 설명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제9회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 이품이다 그랬어요. 그러면 이제 요것은 39품으로서 입법계품(立法界品)인데 요건 선재동자가 유명한 소위 그 소설로도 또는 영화로도 잘 알려져있던 소위 유명한 입법계품(立法界品) 선재동자의 구법행각기(求法行脚記)에 대한 내용. 그 내용은 무슨 뜻이 어떻다라고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 다 있어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그게 소위 53선지식(善知識)이죠.


그럼 53선지식(善知識)이 쭉 이렇게 나열되는데 나열되기 전에 상수보살들이 쭉 이제 포진이 됩니다. 그게 이제 보현보살(普賢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법혜보살(法慧菩薩) 공덕보살(功德菩薩)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 금강장보살(金剛藏菩薩) 금강혜보살(金剛慧菩薩) 그 담에 광염당보살(光焰幢菩薩) 수미당보살(修彌幢菩薩) 이런 식으로 이제 입법계품(立法界品)배경들 다시 말해서 선재동자라고 하는 평범한 한 인간이 성불해 가는 과정을 발심(發心)해서 성불(成佛)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 입법계품 (立法界品)의 내용인데 그 내용을 설하기 위해서 서두(序頭)에 등장하는 대중들입니다.


보현문수대보살(普賢文殊大菩薩) 법혜공덕금강당(法慧功德金剛幢) 금강장급금강혜(金剛藏及金剛慧) 광염당급수미당(光焰幢及須彌幢)까지가 그래요. 그 담에 대덕성문사리자(大德聲聞舍利子)라고 하는 것은 뭔고하면은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이제 찾아 나섭니다. 찾아 나설 때 거기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따라가는 사람들이. 선재동자가 혼자 간게 아닙니다.


따라간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에 이제 비구(比丘)가 육천 명이 따라갑니다. 그게 이제 대덕성문(大德聲聞) 성문을 보통 그 당시 부처님제자들로서는 이제 일컫는 존칭이 성문입니다. 덕이 많다 그래서 대덕성문이라 이렇게 얘길하는데 대덕 사리자(大德 舍利子)라고 하는 말은 사리불(舍利弗) 우리가 잘 알고있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주인공, 법화경(法華經)의 주인공인 사리불(舍利弗)이죠. 사리불과 함께 육천 명 비구가 동행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육천 명 비구는 해각(海覺)비구, 선생(善生)비구 앞에 그 해각이라고 나왔죠. 사리자 급여비구해각등 이렇게 했잖습니까? 대덕성문사리자(大德聲聞舍利子)하고 급여비구해각등(及與比丘海覺等)까지가 이게 등자(等)가 육천 명의 비구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해각(海覺)비구, 선생(善生)비구, 복광(福光)비구, 대동자(大童子)비구, 전생(電生)비구, 정행(淨行)비구, 천덕(天德)비구, 군혜(君慧)비구, 범승(梵勝)비구, 적혜(寂慧)비구 등 이런 이들이 육천 명이 이제 함께 이 선재동자의 어떤 구법행각(求法行脚)에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 담에 우바새 우바이. 우바새장우바이(優婆塞長優婆夷) 우바새장자 우바이. 우바새는 청신사가 되고 우바이는 청신녀가 되는데. 오백 우바새와 오백 우바이가 따라 나섭니다 또. 오백 우바새, 오백 우바이. 그러니까 거사님들이 오백 명, 보살님들이 오백 명. 그렇게 이제 따라나서는데. 오백 그 우바새는 어떤 우바샌고 하면은 수달다우바새, 그 담에 바수달다우바새, 그 담에 복덕광(福德光)우바새, 유명칭(有名稱)우바새, 시명칭(施名稱)우바새, 월덕(月德)우바새, 선혜(善慧)우바새, 대혜(大慧)우바새, 현호(賢護)우바새, 현승(賢勝)우바새 이런 이들이 이런 오백 우바새가 함께 문수사리동자 있는데 와서 발에 엎드려 절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옆에 이제 물러앉게 되지요.


그리고 뒤따라서 오백 우바이가 오게 됩니다. 오백 우바이가 있는데 대혜(大慧)우바이, 선광(善光)우바이, 신묘(身妙)우바이, 가락신(可樂身)우바이, 현(賢)우바이, 현덕(賢德)우바이, 현광(賢光)우바이, 당광(幢光)우바이, 덕광(德光)우바이, 선목(善目)우바이 뭐 이런 이들이 또 오백 우바이가 역시 이제 문수사리동자 있는데. 이 문수보살이라고 문수사리동자라고 했는데 선재동자하고는 다릅니다. 문수보살을 때로는 문수사리동자 또는 보살 이렇게 하는데 그건 또 이유가 있어요. 그래 이제 함께 동참을 하게 됩니다. 그게 이제 말하자면은 우바새장우바이 까지고.


그 다음에 이제 선재동자동남녀(善財童子童男女) 이렇게 했어요. 여기에 보면 또 선재동자하고 오백동자하고 오백동녀가 또 이제 동참을 하게 됩니다. 오백동자 오백동녀. 그런데 동자가 오백 명, 동녀가 오백 명 그래 이름도 다 구체적으로 오백 명까지 다는 아니다 하더라도 대표만 이름을 소개를 하고 있어요. 그 저 입법계품에 보면 다 나옵니다.


이른바 선재(善財)동자, 선행(善行)동자, 선계(善戒)동자, 선위의(善威儀)동자, 선용맹(善勇猛)동자, 선사(善思)동자, 선혜(善慧)동자, 선각(善覺), 선안(善眼), 선비(善臂), 선광(善光) 등 이런 이들 오백동자가 문수보살한테 와서 예배를 하고 동참을 하게 되고. 또 그 담에 오백동녀가 있는데 선현(善賢) 동녀, 대지거사의 딸 동녀, 현칭(賢稱)동녀, 미안(美顔)동녀, 견혜(堅慧)동녀, 현덕(賢德)동녀, 유덕(有德)동녀, 범수(梵授)동녀, 덕광(德光)동녀, 선광(善光)동녀, 이런 이들이 또 오백 명이 역시 이제 동참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재동자동남녀 이렇게 이야길 하는 거에요. 선재동자와 그리고 동자 동녀 동남동녀. 이래서 이제 선재동자동남녀(善財童子童男女) 요 한 일곱 자의 한 구절 속에 그런 많은 뜻이 그런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고 또 그들이 각각 지니는 뜻도 함께 포함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약찬게지요.


그래서 기수무량불가설(其數無量不可說)이라 그 외에 여긴 이제 소개를 다 안했지만은 그 외에 무량불가설(無量不可說) 그 숫자가 한량없는 불가설(不可說) 한량없어서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많은 숫자들이었다. 이런 많은 이들이 선재동자를 척 앞세우고 대 부대가 돼 가지고 말하자면 선지식을 찾아서 행군을 이제 시작을 합니다. 행군을 시작하는데 그들을 일러서 우리가 선재동자의 선지식이라. 그래서 선재동자선지식 아닙니까.


그 맨 처음 문수사리최제일(文殊舍利最第一). 문수사리를 제일 먼저 만나거든요. 요건 이제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또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이걸로 배려를 하자면 십신(十信)에 해당됩니다. 두말 할 것 없이 처음에는 믿음이니까요. 信과 住와 行과 그거에 대해서는 이제 설명을 생략을 하겠습니다.


문수사리최제일(文殊舍利最第一)이고 그 다음에 이제 덕운해운선주승(德雲海雲善住僧) 이런 식으로 이제 나가는데 이들은 이제 십주위(十住位)에 해당되겠죠. 저 앞에서 菩薩의 수행계위(修行階位)를 이야기한 지난번에 나눠드린 유인물 거기에 그대로 있듯이 전부 포함됩니다. 그러면은 보살 수행의 계위 화엄경의 본론인 그 보살수행계위(菩薩修行階位)에도 역시 같은 식으로 밟아가고, 우리 평범한 중생이 발심을 해서 부처에 이르기까지의 어떤 그 과정도 역시 그 같은 계위를 역시 밟아서 나가는 거죠. 그 법은 똑같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사실은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고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고 또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이고 말이죠. 그건 이제 뭐 법성게(法性偈)에서 설명이 되겠습니다 만은「본래로 이름이 부처다」라고 하는 그런 주의니까. 또 「마음과 부처와 중생.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 이 셋이 차별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 또 유심사상(唯心思想)이라고 우리가 말하는 소위 그 화엄경의 중심된 사상일 바에는 부처가 말하자면 부처의 길을 밟아가는 거죠.


이게 이제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죽은 물건이 아니고 살아있는 또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그 가운데 게재돼 가지고 우리가 가만히 있지를 못 하는 거에요. 살아가야 돼. 그래서 인생이야. 사람이 살아가는 어떤 삶의 과정이죠. 그러니까 그것을 말하자면 이렇게 한단계한단계 밟아 올라가고 앞으로앞으로 나아가야 되고, 발전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의 당위성(當爲性)이에요. 꼭 그렇게 해야 돼. 그러니까 퇴보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 그 의미에 맞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물러서고 자꾸 퇴보하고 퇴화하고 뭔가 발전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에 말하자면은 위배(違背)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어떤 그 생물의 원리에 위배하는거다 하는 것입니다. 생물이라면은 성장해야 되요. 발전해야 됩니다. 죽은 물건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은 없어요. 그럼 그 반대로 살아있는 물건이라면은그게.

살아있는 존재라면 자꾸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살아있는 존재의 특색이에요. 그리고 특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과정은 우리가 불교를 뭐 인연 맺어서 불교공부를 한다고 해서 받아가는게 아니에요. 불교하고 인연 못 맺고 전혀 부처 불자를 모르는 그런 삶이라 하더라도 그런 그 원리원칙은 똑 같습니다. 똑같이 적용 되요. 이왕 성장하고 나아가는 길이라면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또 그걸 알고 인생의 본래의미를 알고 나아가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 佛法의 좋은 점이다. 우리가 불법을 만난 것과 만나지 아니한 인연의 차이가 그 공덕의 차이 가치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겁니다.


이왕 우리가 서울로 가는 길이라면 서울 가는 코스와 교통편을 잘 알고 가는 것. 얼마나 편리하겠습니까? 무턱대고 간다고 생각했을 때 그거는 참 얼토당토 않는 거지요. 그런 佛法의 理致를 우리가 잘 알고 가는 것은 인생의 어떤 그 가야할 길을 잘 알고 가는 것이고, 그런 이치를 우리가 佛法과 因緣을 맺지 못하고 사는 것은 가기는 가는데 인생에 있어서 살기는 사는데 가야할 곳과 가야하는 어떤 그 당위성 어떻게 가는지 그걸 모르고 무턱대고 가는 것이다 이렇게 알면 돼요.


불교와 불교 아닌 것과의 차이는 그것입니다. 불교를 우리가 공부하는 것, 불교를 믿는 것과 불교를 믿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그것이다. 그래 알면 돼요. 이래도 살아가고 저래도 살아가요. 불교하고 인연 안 맺어도 살아가고, 불교를 비방하는 사람도 잘 살아가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제 차이가 있다면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무턱대고 살아가는 것하고 살아있으니까 살기는 살거든요 어쨌든. 불교를 통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인생의 진정한 그 삶의 의미를 알고 그 의미에 맞게 정말 잘 알고 사는 것. 이 차이입니다.


서울을 갈 때 비유를 우리가 생각하면은 쉬운 거죠. 그 어떤 그 교통편을 잘 알고 거기에 시간을 맞춰서 탁 가서 정확하게 탁탁 타고 가는 것하고 덮어놓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고 허둥대는 것하고는 영 어떤 그 효과가 달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은 우리가 그 화엄경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라고 하는 그 표현을 한다면은 바로 그런 점이 어려운거죠. 뭔가 새로운 것 어떻게 새롭게 해야 되는 것 이런 거를 가르치면 차라리 쉬운데 이미 되어 있는 것 이미 완성돼 있는 것 이것을 우리가 이해하자고 하는 게 이게 이제 화엄경의 어려운 점이라면은 어려운 점이다 이렇게 이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菩薩의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오십이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것 이것이 역시 선재동자도 그대로 밟아 올라가는데 그 밟아 올라가는 것을 여기선 특별히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해서 한계단한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걸로 돼 있습니다. 그래서 참 그 구성이 재미가 있지요.


맨 첨에 덕운(德雲) 해운(海運) 선주(善住)비구거든요. 이들은 전부 비구(比丘)들입니다. 이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한계단한계단씩 올라가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는데 오늘은 이런 선지식 내일은 저런 선지식 그런 善知識들을 늘 만나면서 성장해간다 발전해간다 이렇게 이제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덕운비구(德雲比丘) 해운비구(海運比丘) 선주비구(善住比丘) 미가장자(彌伽長者)라 그래요 미가장자. 그담에 해탈(解脫)도 長者입니다. 그 담에 해당(海幢)은 비구에요. 두 분 長者가 있고 그 담에 해당비구(海幢比丘)고.


휴사(休舍). 우바이에요. 휴사. 점 찍어야 되겠죠. 휴사우바이고. 비목구사선(毘目瞿沙仙) 이는 神仙이라는 사람이라 그래 선자(仙)가 붙었죠. 비목구사선(毘目瞿沙仙) 신선이다 이 말이야. 그 담에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입니다. 이거 외도(外道)에요. 승열바라(勝熱婆羅)까지가 이제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이야기고 그 담에 열 번째 자행동녀라. 자행동녀(慈行童女) 자비를 행하는 동녀 승열바라문(勝熱婆羅門) 하면 예를 들어서 이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승열바라문이죠. 이 승열바라문에게 가서 그랬는가 그 수승할 승자(勝)하고 더울 열자(熱) 아닙니까 이게. 그런데 말하자면 선재동자가 이 불을 섬기는 외도에요. 인도에는 불을 섬기는 외도도 있습니다. 선재동자가 거기 가니까 불속에 뛰어들라고 이제 그런 가르침을 내린다고요. 그러니까 선재동자가 깜짝 놀라고 ‘저 사람이 외도고 소견이 잘못된 사람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의심을 굉장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심을 하게 된 것을 기화로 해서 굉장히 많은 가르침이 거기에 나열이 됩니다. 그거는 이제 화엄경을 본격적으로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자행동녀(慈行童女)고.


그 담에 十行을 표현하고 있는 善知識이 선견비구(善見比丘)고. 그 담에 자재주동자고 자재주동자(自在主童子). 그러니까 이름을 한 줄에 두 사람도 쓰고, 세 사람도 쓰고, 한 사람도 쓰고, 이제 일곱 자 게송으로 정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됩니다. 그 담에 구족우바이(具足優婆夷)고 우바이에요. 보살이죠 말하자면. 명지거사(明智居士)고. 그담에 법보계장자고 법보계장(法寶髻長). 여(與)는 더불어 이 말이죠. 하고 보안(普眼) 보안장자고. 그 담에 무렴족왕(無厭足王) 무렴족왕이에요 이는. 그담에 대왕도 왕이고 대광왕(大光王) 무렴족왕대광왕(無厭足王大光王) 그러죠. 그 담에 부동우바이(不動優婆夷)고. 변행외도(遍行外)에요. 이(夷)도 외도입니다. 그야말로 이(夷)는 바라문이란 말보다도 더 표현이 불교와는 거리가 먼 外道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십회향(十廻向) 善知識으로서 우바라화장자인(優婆羅華長者人) 이 이가 이게 육향장자라고 향을 파는 장자에요. 그 다음에 바시라선인 바시라선(婆施羅船) 이 선자(船) 여기 선자는 배 선자(船)지요. 말하자면 뱃사공 이런 말입니다. 뱃사공. 그래 뱃사공도 만나요 선재동자가. 그 담에 무상승(無上勝) 무상승장자에요. 그담에 사자빈신(獅子嚬伸) 사자빈신이라고 했는데 사자빈신비구니야 사자빈신비구니(獅子嚬伸比丘尼). 별별 사람이 다 나오죠. 그 담에 바수밀다녀(婆須密多女)라고 해서 그 담에 사자빈신바수밀(獅子嚬伸婆修密) 바수밀다녀인데 이는 말하자면 기생이라고 할까요 기생입니다. 그래서 여 바수밀다(婆須密多) 이 대목에 가서 읽어보면 아주 재미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종다양(多種多樣)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모두 동원이 됐다. 이렇게 알면 됩니다. 그럼 간단해요. 지금은 아주 참 우리의 직업이 복잡해지고 사람이 살아가는 양상들이 아주 복잡해졌죠. 그래서 뭐 다 열거할 수도 없겠습니다만 물론 옛날에도 많았지만은 지금하고야 비교가 안 되지요. 그러나 옛날에 단순했어도 이렇게 많이 소개가 됩니다. 이건 왜 이렇게 여러 가지로 여기다 소개하는고. 꼭 그 뭐 숫자가 필요해서도 아니에요 사실은. 그 숫자도 물론 어느 정도 감안을 하고 또 거기에 나열하는 여러 사람들도 다 나열하면, 아! 우리도 여기 해당되겠구나 뭐 외도에 해당되던지, 무슨 뭐 기생에 해당되던지, 아니면 무슨 바라문(婆羅門)에 해당되든지, 무슨 장사꾼 육향장자 장사꾼에 해당되던지, 比丘에 해당되던지, 比丘尼에 해당되던지, 아니면 무슨 뭐 거사에 해당되던지, 어디에 해당되던지 다 해당된다고요 대개. 설사 해당 안 된다 하더라도 의미가 전부 다종다양(多種多樣)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전부 모든 계층의 사람을 여기에 다 포함시키고 있다 이 뜻입니다.

그담에 이제 바수밀녀 비슬지라거사 비슬지라거사(毘瑟祗羅居士) 이는 한분이에요 비슬지라거사인(毘瑟祗羅居士人). 그담에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도 나타나네요. 관자재존 그 담에 여정취 여도 정취보살이야. 정취보살도 관자재보살의 어떤 다른 이름입니다 사실은. 물론 뭐 변신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겠습니다만. 그 담에 大天神이에요 神 대천신. 그 담에 안주지신(安住主地神)이라. 대천에 점 찍고, 그 담에 안주지신 안주주지신 안주주지신이라.

그 담에 十地 善知識에 해당되는데 바산바연주야신(婆珊婆演主夜神) 보덕정광주야신(普德淨光主夜神) 그 담에 희목관찰중생주야신(喜目觀察衆生主夜神)이에요. 여기도 주야신(主夜神)입니다. 묘덕주야신(妙德主夜神) 보구묘덕주야신(普救妙德主夜神) 묘덕신(妙德神) 역시 한 사람. 적정음해주야신(寂靜音海主夜神) 여기는 이제 한 사람들로 돼 있죠. 수호일체주야신(守護一切主夜神) 개부수화주야신(開敷樹華主夜神) 대원정진력구호(大願精進力救護

대원정진력구호중생주야신(大願精進力救護衆生晝夜神)이다. 이름을 이제 생략을 해서 그렇지 대원정진력구호중생주야신(大願精進力救護衆生晝夜神) 이런 말이죠. 그 담에 묘덕원만구바녀(妙德圓滿瞿婆女)했는데... 요 구바녀(瞿婆女)에 대해서 특별히 그 묘덕원만신(妙德圓滿神)이 있고 또 거기도 점을 하나 찍어야 되겠네요. 그 담에 선녀구파라고 해서 묘덕원만신(妙德圓滿神)은 이 람비니신이다. 람비니신 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동산을 지키는 신이다. 이런 뜻이에요. 그 신은 묘덕이 원만하다 그래서 이제 묘덕원만 람비니인신이란 말이에요. 룸비니인신 룸비니숙직이


그 담에 구바녀는 이제 석씨가 그 동네 살잖아요. 그래서 석씨구바라 그 말입니다. 구바녀(瞿婆女). 그 담에 이제 거기 가서 이제 마야부인(摩耶夫人)이 등장 안할 수가 없죠. 마야부인. 마야부인 등장안할 수가 없지요 거기는 이제 또. 그래서 마야부인까지도 거기에 등장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마야부인부터는 뭐 회인입실상(會因入實相)이라 해서 원인을 모아가지고 인은 씨앗을 모아가지고 실상에 들어가는 것을 표현한다. 그리고 일인(一人)은 전체적인 뜻이 되고 나머지 열 명은 특별히 한 사람 한 사람 모습을 나타내는 뜻이 별다른 특별한 뜻이 된다. 이렇게 해서 일인은 총의(總意)가 되고 십인(十人)은 별의(別意)가 된다 이런 식으로 합니다. 그럼 마야부인이 총의가 되는 거에요. 마야부인이 전체적인 뜻이 되고 나머지 열 명은 개별적인 뜻이 된다 그런 말입니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야부인의 중요성을 우리가 감안할 때 더욱 그렇죠. 그 담에 천주광(天主光) 마야부인 천주광왕녀(摩耶夫人 天主光王女)라 이이는 그러니까 왕비죠.

그담에 변우동자(遍友童子) 그 담에 중예각(衆藝覺) 변우동자하고 중예동자(衆藝童子). 그담에 최적정바라문(最寂靜婆羅門) 그랬죠. 현승우바이(賢勝優婆夷)에요. 사실은. 그담에 바라문 그이가 이제 최적정바라문이라 바라문인데 이제 ....

현승견고해탈장 賢勝堅固解脫長 할 차례구나 현승우바이고 그담에 견고해탈장자고 그래요. 현승우바이고 해탈장자고. 묘월장자(妙月長者) 그 담에 무승군장자 무승군(無勝軍)도 장잡니다. 묘월(妙月)은 장자라고 딱 해놨고 묘월장자 무성군장자 그러니까 일반 거사님들이 많이 나와요. 비구 비구니도 물론 있지만 거사님들 보살님들 무슨 신장들 다종다양한 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다 이렇게 알면 됩니다. 그 담에 최적정바라문(最寂靜婆羅門) 최적정바라문이라고

그담에 덕생동자(德生童子)하고 유덕동녀(有德童女)는 늘 같이 붙어 다녀요. 그래서 두 사람인데 덕생동자 유덕동녀 그래서 이 이는 한 선지식으로 칩니다. 그래 그 화엄경 원문에도 가면은 이 두 사람이 동시에 나타나요. 동시에 가서 만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 오십대 선지식이 덕생동자와 유덕동녀로 그렇게 이제 돼 있죠. 유덕동녀 그 담에 이제 미륵보살(彌勒菩薩) 만나게 되죠. 최후에 이제 미륵보살을 만나게 됩니다. 맨 처음 선지식이 문수(文殊)고 그 담에 이제 미륵보살이고 그 다음에 또 문수보살이 또 나타나죠. 문수등(文殊等) 했잖습니까?

그 다음에 이제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이 이어지는데 그래서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또 나타납니다. 여기는 보면 39품 이야기가 나옵니다만은 보현행원품 가기 이전에 이미 보현보살이 등장을 하지요. 그래서 보면은 미륵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이런 등등 보살들이 미진중(微塵衆)이라. 이 세계를 부수어서 먼지로 만들었을 때 그 먼지 숫자와 같이 많고 많은 대중들.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그게 뭐겠어요? 바로 이 세상 모든 것이에요. 이 세상 모든 것.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선지식(善知識)이고 또 그렇게 그로 인해서 내가 존재하고, 그 덕에 사는 거고, 불(火) 덕에 살고 물 덕에 살고 바람 덕에 살고, 전부 그런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연관관계를 우리가 잘 깨달음으로 해서 우리가 지혜롭게 사는 거죠. 그걸 이제 소위 법계연기(法界緣起)다. 이 세계는 그대로 진리 그 자체로써의 서로의 연관관계, 서로 연결이 돼 있어서 하나도 뗄래야 뗄 수도 없는 그런 그 관계 속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미진중 어차법회운집래(於此法會雲集來) 상수비로자나불(常隨毘盧遮那佛)이라 이 법회에 운집했다. 구름이 그냥 몰려오듯이 우리나라에 구름 여름에 몰려오는 것도 장관이지만은 인도 같은 데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아주 산 하나 없는 넓은 광야에 그 우기(雨期)가 되면 그냥 그 구름이 말이죠 뭉게구름이 그냥 몰려와 천지를 뒤덮을 때, 그렇게 거창하게 온 대지를 온 천하를 그냥 휩쓸듯이 몰려오는 그런 상황입니다. 인도에서는 그래요. 여 운집래(雲集來)라고 하는 말도 그런 어떤 인도의 구름이 몰려오는 우기에 구름이 몰려오는 그런 상황을 상상하면은 아주 실감이 나죠. 바로 대중들이 그와 같이 거대한 구름이 몰려와서 순식간에 이 말하자면 대지를 덮어버리듯이 그렇게 대중들이 많이 그렇게 몰려왔다 그래서 운집(雲集)이라 그래요. 사람이 모인다 하는 것은 운집이라 구름이 모이듯이.


이 法會에 구름이 모이듯이 그렇게 와서 상수비로자나불(常隨毘盧遮那佛)이라. 항상 비로자나불을 쫓아다닌다 따라다닌다. 이 말이에요. 비로자나불은. 비로자나불은 법신불(法身佛)이죠. 진리(眞理) 그 자체입니다. 따라다닌다 따를 수자(隨)를 썼지만 따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거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미 더불어, 함께 있어요.


어련화장세계해(於蓮華藏世界海) 조화장엄대법륜(造化莊嚴大法輪)을 시방허공제세계(十方虛空諸世界)에도 역부여시상설법(亦復如是常說法)이로다. 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바로 화엄경 이렇게 하죠. 연꽃으로 장엄한 세계. 꽃을 우리가 한 송이 꽂았을 때 그 꽃의 영향으로 집안 분위기, 방 분위기, 화장실 분위기가 어떻다하는 것을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는데 사실 그렇거든요. 참 그 하나의 작은 꽃이지만은 분위기를 그렇게 바꿔놓는다고요. 마찬가지로 보살행(菩薩行)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이해를 하고 위에와 같이 그렇게 이해하고 살 때 저절로 보살행이 나오게 돼 있어요. 그 보살행이 말하자면 꽃으로써 집안을 장엄하듯이 인간세상을 아름답게 장엄(莊嚴)하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장엄한다 그런 뜻입니다.


오늘아침 MBC에서 광복50년의 그런 그 때를 맞이해서 그런 어려움을 당했는데 대승적(大乘的)으로 우리가 생각을 해서 적극적으로 가서 구원(救援)을 해야 된다. 일차적으로 의사를 보냅니다 하는 그런 그 아나운서가 그런 말을 쓰더라고요 대승적으로. 그게 말하자면은 더불어 산다고 하는 그런 인식하에서 말하자면 꽃 노릇을 하는 거에요. 이 세상의 꽃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꽃이거든요. 뭐 꽃 꽂자고 집안에 꽃 꽂자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또 그렇게 알아듣고 집에 가서 자꾸 꽃만 꽂으면 곤란하지요. 내 행동 하나하나가 꽃밭이다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당장에 그 부산 모든 무역관계가 타격을 받잖습니까? 수출도 못하고 수입도 못하고 지금 보통문제가 아니거든요. 그 보십시오. 어디 일본의 지진이 일본만의 지진입니까? 우리나라도 역시 그런 영향을 받고 있는 거에요. 더불어 살게 돼 있는 거에요. 다 관계 속에서 사는 거라. 다른 나라 저 미국이고 미국에서 막 원조한다 해 쌌는데. 서로 관계 속에 놓여있으니까 안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건 뭐 보살심으로 하는 것 같지만은 안할 수도 없게 돼 있어. 그래 그걸 인식하면 보살심이 나오게 돼 있어. 돕도록 돼 있는 거야. 꽃다운 행위가 나오게 돼 있어요. 안할 수도 없고 또 해야 되고. 하는 것은 그건 이미 아름다운 行이거든요. 그런 관계를 제대로 우리가 파악을 알고 있게 되느냐 꽃다운 그 身口意 三業의 作用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게 돼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세상이죠 뭐. 그게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죠.

조화장엄대법륜(造化莊嚴大法輪) 아주 그 장엄을 잘 만들어서 조화해서 만들어서 큰 그 법륜을 굴리는 것을 시방허공제세계(十方虛空諸世界) 이 자리에서 오늘 여 문수원에서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방허공 모든 세계에도 역부여시상설법(亦復如是常說法)이에요.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항상 설법하고 있도다.」하는 것입니다. 뭐 삼천 년 전의 부처님의 깨달음이 역시 그야말로 대법륜(大法輪)을 굴리는 것이고 또 이 순간 우리가 대법륜을 굴리듯이 모든 세계가 그대로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니까 그렇다면은 일부러 표현을 하고 하는 것이 꼭 법륜을 굴리는 것이 아니죠. 그 모습으로 그대로 있는 것 그것도 큰 법륜을 굴리는 거에요.「법륜을 굴림이로다.」하는 이야깁니다.

여기까지가 이제 선재동자(善財童子)의 선지식(善知識) 소개 내지 소개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담고 있는 법, 그 경전 속에서의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설법의 내용, 또 보살 계위 수행계위의 어떤 그 과득(果得) 이런 것까지 다 포함되어 있죠.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렇게 간략하게 약찬게(略纂偈)니까 간략하게 이름을 이렇게 열거함으로 해서 그러면서 전부이제 졸업하는 형식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돼서 결국 화엄경은 그 전체적인 그 규모 구성 이런 것들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유인물 보십시오. 오늘 나눠드린 유인물. 거기에 보면은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 일십일일역부일(一十一一亦復一) 이라고 하는 게 고대로 나와 있죠. 제1회 보리도량(菩提道場)이 육품이란 말입니다 첫 六자는. 그 담에 제2회 보광명전(普光明殿) 육품 그게 두 번째 六자고, 또 제3회 도리천궁(兜利天宮)에서 육품, 그담에 야마천궁(夜摩天宮)에서 4품, 六六六四 참~ 이렇게 돼 있다고요. 이것 알고 외우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참 알 수가 없지. 그 다음에 도솔천궁(兜率天宮)에서 삼품이죠. 그건 낱낱 품 이름은 다 또 뒤에 또 소개됩니다. 삼품 그 다음에 제6회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에서 십지품(十地品)이 一品이에요. 일자 맨 처음의 一자 거기에 점찍어야겠죠. 그 다음 7회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십일품(十一品)이라 십일(十一)에다 도장 점찍고 그 다음에 보광명전에서 一品이에요. 그 다음에 역부일(亦復一)이 하는 마지막 일품은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 一品이라고 해야되는데 내가 二品이라고 한 것은 밑에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요게 이제 별행(別行)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이번 화엄경에는 완전하게 좀 구성을 한다고 해서 40품을 했고, 그래서 약찬게는 一品으로 되어있는데 여기는 二品이다. 고걸 이제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一品은 입법계품(入法界品) 만을 가리킨 거죠.


그래서 육육육사급여삼(六六六四及與三) 일십일일역부일(一十一一亦復一). 삽심구품(39品)이 그냥 여기 싹 다 나오고 칠처(七處) 구회(九會) 보십시오. (六)(六)(六)(四) (及與三) (一)(十一) 또 (一)(一) 구회죠. 그런데 장소는 요렇게 이름을 보면은 보리도량(菩提道場)이 한 번,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세 번이죠. 보광명전이 세 번 나오죠. 그 다음 급고독원(給孤獨園) 급고독원은 소위 그 어디죠?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있는 金剛經의 무대 또는 능엄경(楞嚴經)의 무대가 된 소위 급고독원 또 입법계품(入法界品)의 무대 그렇습니다. 또 보면은 무슨 도리천궁(兜利天宮) 또 야마천궁(夜摩天宮) 도솔천궁(兜率天宮)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 이런 식으로 天宮에 이제 또 올라가는데 고거는 이제 한 단계 성큼 이제 수행이 높아질 때 그렇게 이제 한 단계씩 올라가요. 그래 도리천궁이 제일 밑에 있고 야마천궁은 도리천 위에 있고 도솔천궁은 이제 야마천궁 위에 있고 타화자재천은 또 도솔천보다 또 더 높은데 있고...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지요. 보광명전(普光明殿)으로 내려옵니다.


천상에서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이런 식으로 참 그 구성, 내용도 물론 내용이거니와 그 구성의 치밀함은 참 부처님보다 더 천재인 부처님이 설하신 그런 經이라. 보통부처님이 이렇게 설한게 아니라고요. 부처님보다 더 뛰어난 부처님이 결집(結集)을 했어.

자 그러면 구체적으로 품 이름하고 요렇게 살펴보면은 착착 그냥 공부가 저절로 되지요. 세주묘엄(世主妙嚴) 세주묘엄품 그 다음에 여래상(如來相)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그래요 고 옆에 설법주(說法主)라고 하는 건 무슨 의미인지 알겠죠. 주로 그 보살이 그 품을 설했다 그렇습니다. 그담에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비로자나품(毘盧遮那品)... 그렇게 되겠죠.


그 다음에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 사성제품(四聖諦品) 광명각품(光明覺品) 문명품(問明品)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그 다음 정행품(淨行品) 현수품(賢首品)...까지 선을 그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 육품 육품 이런 식으로

그 다음에 수미산정품 수미산정상게찬품(須彌山頂上偈讚品) 요건 품 하납니다. 보살십주품(菩薩十住品) 범행품(梵行品) 발심공덕품(發心功德品) 명법품(明法品) 거 뭐 유인물을 보나 약찬게를 보나 그게 그겁니다. 약찬게(略纂偈)를 보면 더 좋겠네요. 같이 이제 옆에 놓고 보십시오. 그 다음에 뭐죠? 보살십주범행품(菩薩十住梵行品) 그 다음 발심공덕명법품(發心功德明法品)

그 다음에 야마천에 이제 올라가지요. 불승야마천궁품(佛昇夜摩天宮品) 부처님이 야마천궁에 올라가는 품 그런 말입니다. 그 담에 야마천궁에 올라가면 또 부처님을 그냥 잔뜩 찬탄합니다. 그 야마천궁의 그 천왕이요. 전부 그렇게 돼 있습니다. 저기저 앞의 수미산에도 그렇고 여기 야마천에도 마찬가지로 올라가면은 이제 그 왕들이요. 아~! 부처님이시여! 이 천궁에 들어가십시오. 이 천궁은 과거에 이러이러한 위대한 부처님들이 거처하신 그런 역사적인 궁전입니다. 이렇게 해서 과거에 어떤 부처님도 이 궁전에 계셨고 과거의 어떤 부처님도 이 궁전에 오셔서 설법하셨고 이런 것을 그 역사를 쭉 나열을 해요. 그렇게 해서 그 천궁이 아주 훌륭한 그런 가치 있는 국보 중에 국보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게 이제 게찬품(偈讚品)이에요. 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 또 수미산정게찬품(須彌山頂上偈讚品)이란 것도 역시 이제 그런 식이고 그런 덕이 있는 분이 다녀가셨습니다.

일본에 가면은 조그마한 음식점에도 가면은 저기 천장에 말이죠 죽 이름을 이렇게 많이 적어놨어요. 가만히 보면 유명한 사람들이라. 누구누구 유명한 사람이 여기에 식사를 하고 갔다. 날짜까지 딱 하고 싸인 받아가지고 착 그냥 그걸 가지고요 신주단지 모시듯이 그렇게 모십니다. 비록 이 음식점은 요렇게 작고 초라하지만은 그런 훌륭한 분이 여기에서 자시고 갔습니다. 하는 그 자기의 어떤 그 (발로***) 권위를 그렇게 나타내요. 화엄경을 읽었는 모양이지. 화엄경 요 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 같은걸 읽으면은 딱 그렇게 돼 있다고요.

이 천궁에는 비록 그 천황이 있지만은 내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과거에 아주 오만한 부처님들이 주무시고 갔고 음식을 자시고 갔고 설법을 하시고 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착 합니다. 화엄경 안 산 사람들은 빨리 사야 되겠네.


그 다음에 이제 거기에 올라가서는 결국 十行品이 중심이죠. 저기 수미산에 올라가서는 十住品이 중심이고 야마천에 올라가서는 十行品이 중심이고 그거 다 있습니다. 그 다음 십행품에 무진장(無盡藏)

그 다음에 불승도솔천궁품(佛昇兜率天宮品) 도솔천(兜率天)에 이제 떡 이제 한 계단 더 올라가죠. 제3회에 해당되겠습니다. 3회가 아니라 도솔천궁(兜率天宮)이 몇 회죠? 5회에 해당되겠네요. 5회. 이제 도솔천궁에 올라가면은 역시 이제 도솔천궁에 척 가 있으면은 도솔천궁게찬품(兜率天宮偈讚品)이라. 거기에 보면 설한 사람들이 그건 이제 천궁에 올라가다 또 올라가면 게송으로 찬탄을 하다 하는 것은 결국 결집인 결집인 그래놨다고요. 경을 결집한 사람이 설한 것입니다. 경을 결집한 사람이 어느 보살도 없어요 거기는. 그러고 이제 거기에 도솔천궁게찬품(兜率天宮偈讚品)이 있고 거기는 십회향품(十廻向品)이 중심이라. 십회향품이 굉장히 양도 많고 그런데 십회향품이 중심이고.

그 다음에 이제 제6회 타화자재천궁(他化自在天宮)에는 十地品이 중심인데 그래 십지품.

그 다음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십일품(十一品)을 설하는데 십정품(十定品) 십통품(十通品) 십인품(十忍品) 아승지품(阿僧祗品) 요기 아승지품을 보면 세존(世尊)이라 그래 돼 있지요. 부처님은 이 사십품 가운데 두 품만 설했어요.

아승지품(阿僧祗品) 이 숫자에 대한 것인데 인간이 지니고 있는 마음의 한량없는 공덕(功德)은 부처님만이 안다. 그것을 수량(數量)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읽어봐야 아무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만 하지만은 그것이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그만치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우리가 읽는 거죠. 그렇게 알고 읽으면은 아무리 지루해도 전부 자기껀데요 뭐 지 재산인데 재산이 얼마인지 안 헤아리면 되겠습니까? 통장에 뭐 얼마가 돈이 있는지 모르면 안 되듯이 그 숫자도 알아야 되는 거죠. 아승지품(阿僧祗品)

그 다음에 여수량(與壽量)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그 담에 보살주처품(菩薩住處品) 그 담에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品) 그 다음에 여래십신상해품(如來十身相海品) 여래수호광명공덕품(如來隨好光明功德品) 그다음에 보현행품(普賢行品)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우리가 공부한 소위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 제37 여래출현품입니다.


그 담에 이세간품(離世間品) 입법계품(入法界品) 이세간품(離世間品)은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한품을 설했고 그담에 입법계품(入法界品)은 선재동자(善財童子)의 구법행각기(求法行脚記) 그것이 이제 상당한 양이죠. 그게 이제 입법계품(入法界品)입니다.

이렇게 해서 시위 십만게송경(是爲十萬偈頌經)이다. 십만게송의 경이다 그래 뭐 꼭 십만게송이 다가 아니라 사실은 몇가지의 그 화엄경을 이야길하는데 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요. 그래가지고 상본(上本) 中本 下本 略本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상본은 너무너무 어마어마하게 많고 중본도 굉장히 많고 그 담에 하본 상중하가 있는데 하본도 상당히 많은데 문수보살이 그 하본을 간추려가지고 약본을 가지고 나왔다 그래요. 略本 간략할 약자(略) 약본 그게 이제 말하자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그 華嚴經입니다. 그게 이제 십만게송(十萬偈頌)이나 된다하는 그런 이야기죠. 뭐 꼭 십만까지는 아니라하더라도 큰 수를 들어서 이제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삼십구품원만교(三十九品圓滿敎)다 원만한 가르침이다 이 이상의 더 원만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불교안에서요. 그래서 화엄경 화엄경 해쌌고 화엄경이 최고의 그 경전이다 하고 내용도 그렇고 그런 그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께서 최고의 그 경지에 이른 깨달음의 세계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고 그것은 또 우리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최고의 정신세계 최고의 어떤 그 경지 인간이 하여튼 이르러 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 무슨 신선도를 닦던 수행을 하던 용맹정진을 하던 뭐 기도를 하던 무슨 별의별 수행을 다 동원을 해서 결국은 이르러 갈 수 있는 궁극의 경지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께서 이르러간 깨달음의 경지다. 그래서 그것은 원만하다 그 외의 것은 원만하지가 않습니다. 어딘가 결함이 있고 어딘가 부족함이 있는거죠.


그래서 그 내용을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그것을 부처님께서 보여준 시범으로 그렇게 보여준 그 깨달음 그것을 그대로 이야기 해 놓은게 표현해 놓은 것이 바로 화엄경이다. 그래서 그건 원만교(圓滿敎)다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반교란 말을 했어요. 반. 반이란 반자(半? 班?)입니다. 그러니까 가득찬게 아니고 한 반쯤밖에 안된다 이런 거에요. 다른 가르침은 그렇게 원만한 가르침이 못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결국은. 어딘가 중생의 근기에 맞춰가지고 조금만 그 근기에 맞게만 말했지 다 이야기하진 않는다 이거죠.

예를 들어서 국민학생이나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그 학생수준에 맞게 이야기하지 무슨 뭐 한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어떤 그 내면의 어떤 그 역사적인 아주 그 수준 높은 입장까지 다 이야기할 수는 없거든요. 국민학생에게는 이순신이 어떻고 그런 이야기가 통하지 하~ 이순신사상이 어떻고 그당시 사색당파가 어떻고 아 이런 이야기하면 국민학생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전에 우리 경전속에서도요. 그런 방편의 설 남겨놓고 조금만 이야기한 것이 많습니다. 그건 왜 그런고하니 우리수준이 고쯤 밖에 안되니까 우리 수준에 맞춰서 이야기하다보니 그렇게 되는거죠.

그러나 이 화엄경은 듣는 사람의 그런 수준과 정도를 전혀 감안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부처님 깨달음의 세계를 표출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깨달음의 내용이 원만하게 다 나타났다 불교의 궁극적인 깨달음이 원만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원만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풍송차경신수지(諷誦此經信受持)하면 이 경을 풍송(諷誦). 읽고 외우고 諷誦은 흥겨워서 읊조리는 거에요. 그걸 풍송이라고 합니다. 그저 뭐 마지못해서 숫자 채우느라고 읽는 것은 풍송이 아니에요. 신심이나고 흥겹고 해 가지고 척 그냥 낭낭하게 읽어 쌌는... 그렇게 해가지고 믿고 받아 가지면은 이 經을 諷誦해서 신수지(信受持) 믿고 받아가지면은 어떻게 한다고?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라. 初發心 처음 발심할 때 바로 그 순간이 곧 正覺을 이루리라. 정각을 이루는 때이리라 처음 발심할 때 ‘아! 좋다. 화엄경이야 말로 이 정말 내가 찾고 싶었던 그런 그 세계구나! 내 인생 여기 바쳐도 하나도 아깝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은 이 순간이 바로 정각의 시간이라. 正覺의 순간(瞬間)이라고요. 바른 깨달음이라고 하는게 共感하는거지요. 부처님 깨달음을 보고 공감하면 그게 바로 자기것이 되는 거지요. 그 남의 말 한다고 할게 아니라고요. 자기가 거기 공감하면 그 사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거지요. 부처님의 깨달음에 공감했을 때 바로 그 깨달음에 들어가게 되는 거지요. 그 깨달음속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니까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便正覺하리라.


안좌여시국토해(安坐如是國土海)하니 이와 같은 국토. 이와 같은 국토라고 하는 것이 우리 개념으로 대한민국이다 무슨 나라다 이런 국토가 아니고 바로 이런 세계 이런 자리에 편안히 앉으면은 여시국토해(如是國土海) 이와같은 자리, 이와같은 지위 地位라고 해도 좋아요. 이와 같은 지위에 바다라고 하는 말은 넓다는 말입니다. 이와같은 자리에 安坐 편안히 앉으니 뭐라고? 시명비로자나불(是名毘盧遮那佛)이다. 그럼 여러분들이 비로자나불이여. 비로자나불이 따로 특별히 홀로 존재하는 그런 뭣이 아니라고요.

이 화엄경의 어떤 그 중심 속에 또 화엄경의 공감 속에 비록 뭐 100%는 아니라도 좋아요. 10% 20% 만이라도 ‘아 그 참 멋지다’ 또 뭐 이 약찬게(略纂偈)만 읽어가지고 뜻을 모르고 읽어도 그 뭔가 하여튼 약찬게는 읽으면 즐겁다고요. 이상하게 약찬게는 자꾸 읽으면 뭔가 운율이 맞고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자꾸 읽으면은 그 뭔가 흥겨워지고 律이 맞고 그게 이 약찬게(略纂偈)의 위력이라. 참 묘해요. 법성게(法性偈)하고도 조금 달라요. 법성게도 뭐 일곱 자로 됐고 또 깊은 내용인데 약찬게하고는 영 맛이 또 다르다고요. 그래서 그런 어떤 그 희열(喜悅), 법희선열(法喜禪悅) 속에 우리가 안주할 때 안좌여시국토해(安坐如是國土海) 이와 같은 법희선열 속에 안주할 때 그 사람 개개가 그대로 비로자나불 부처다 시명비로자나부처다 이것의 이름이 비로자나부처다 그런 그 내용이 이 약찬게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을 사실은 간략하지만은 전체 내용을 어떤 구성을 이렇게 짚어보는 것은 약찬게 같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약찬게가 약찬게 약찬게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거지요. 이렇게 해서 약찬게 설명을 간략히 이제 마쳤는데 이 우리가 重言復言하지만은 제대로 우리가 이해해야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뭔고하니 결국은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소위 그 의미들 그걸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깨닫는게 그게 쉬운게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지난시간에도 서두에 오늘도 서두에 거기에 대한 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이 차츰차츰 안개가 이렇게 걷히고 뭔가 가슴속에 다가오는 것을 이제 느끼게 될 것입니다.


뭐 이렇게 해서 화엄경 그래도 전체 제일 약찬게를 야무지게 설명을 한 택이에요. 그리고 준비도 할 수 있는데 까지 했어요. 39品 7處 9會하며 또 보살오십이수행계위(菩薩五十二修行階位) 요런 것 까지 야무지게 그렇게 이제 했으니까 그 세밀한 세계 서로 배속관계 요런 것들은 이제 면밀히 살펴가면서 집에 가서 요렇게 요렇게 맞춰보십시오 그러면 그 五十二 階位하고 선지식이름하고 그 담에 저기 신장들 이름하고 그게 전부 이제 맞아떨어지고 그리고 또 그것은 결국 『다름 아닌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속에 어떤 그 모든 짜임들 또 모든 그 관계들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자각에 까지 이르러야 할 줄 믿습니다. 이렇게해서 두 번에 걸쳐서 약찬게(略纂偈)는 끝내고 법성게(法性偈)를 다음시간에 한 시간 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bluelotus5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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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_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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