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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청전스님이 들려주는 참스승, 히말라야 착한 이웃들의 이야기

『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26년 동안 수행을 하며 구도의 여정을 이어가는 청전스님의 이야기를 글과 흑백사진으로 수록한 책이다. 저자인 청전스님은 1972년 유신 선포 때 사회에 대한 자각으로 대학을 그만두고 성직자의 길을 택하였고, 신부수업을 받다 송광사로 출가해 참선수행을 했으며, 수행과정 중의 의문을 풀기위해 순례길에 오르다 결국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26년 동안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서 지내 오면서 발견한 진정한 행복은 ‘착한 삶’을 사는 것이라 말하며 깨달음(수행)과 사랑(행복)은 하나임을 보여준다.

맑은 영혼의 땅, 히말라야 설산을 헤매며 순례자의 길을 걷던 스님은 라다크에 다달았다. 그곳의 절과 마을의 열악한 환경을 알게 된 후 애타게 깨달음을 갈구하던 저자는 산타 스님으로 변해 해마다 주민들에게 전해줄 선물 보따리를 싣고 라다크로 떠났다. 스님의 이러한 행동에 알음알음 도움의 손길이 오갔고, 그 결과 열악한 주민들을 위해 초등학교를 지어주고, 사미승과 아이들을 위한 학용품과 영양식을 챙겨주는 등 곳곳에서 기적을 낳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달라이 라마를 큰스승으로 모시고 있지만, 이십년 넘게 단골로 지내는 인도의 푸줏간 삼형제, 이웃의 티베트 난민들, 라다크 순례 봉사에서 만나는 눈 맑은 노승들까지 자신을 가르친 참스승은 바로 민중이었음을 고백하고 날마다 참스승과 조우하는 히말라야의 삶을 아름답게 풀어내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청전

저자 : 청전
저자 청전은 1972년 유신 선포 때 사회에 대한 자각으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게 첫 번째 출가였다. 그 뒤 신학교에서 신부수업을 받다 1977년에 송광사로 두 번째 출가를 감행했다. 십여 년간 참선수행을 하다가 수행 과정에서 떠오른 의문들을 풀기 위해 1987년에 동남아의 불교 국가들을 둘러보는 순례길에 나섰다. 그때 마더 데레사 등 여러 성자들과 더불어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될 달라이 라마와 운명적 만남을 가졌다. 일 년간의 순례여행을 마친 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1988년부터 지금까지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있다. 매년 찻길도 없는 해발 사오천 미터 히말라야 산속 곰빠(불교사원)에서 생활하는 라다크의 스님들과 주민들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간 중고시계부터 의약품, 보청기, 손톱깎이까지 져 나르는 일도 수행의 큰 축이다. 인도 생활을 마치기 전에 해야 할 숙제가 있다.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한국의 거사님이 내신 숙제인데 ‘달라이 라마의 온화한 미소를 배워오라’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 그리고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정진하는 성직자의 삶을 꿈꾼다. 티베트 원전 《깨달음에 이르는 길》(람림)과 《입보리행론》을 번역했고, 저서로는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이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목차

머리말내게 행복을 일깨운 사람들


1장당신을 만난 건 축복입니다
호박잎 도시락 하나
하늘 아래 사람들의 소원
저 산처럼 되리라
나를 살린 ‘니째 도 킬로!’
버스 도착시간마저 여유로운 곳
아름다운 설산의 비극
‘세상의 스승’을 만나다
노부부와의 꿈같은 재회
영혼에 담긴 영원한 간디
제가 죄 많은 여인입니다
히말라야를 닮은 사람들


2장깨달음에 이르는 길
무욕, 무심의 뿌자리 노인처럼
기적을 낳는 기도문
금생에 태어나지 않은 셈 치리라
힌두 찬가, 참 순례자의 노래
온몸으로 절하며 히말라야를 넘다
동굴에서 홀로 천 일
하늘 수행자의 땅에서 마주친 등신불
꺼지지 않는 기적의 등불
도반 수녀님의 편지
비렁뱅이 스님, 법을 전하다
영성은 내 안에 있는 것


3장 영혼의 땅 라다크, 나눔이 곧 행복이 되는 곳
신부님과 함께 라다크로
고독을 넘어 깨달음에 이르는 곳
지친 영혼을 품어주는 땅
밤하늘 별무리의 황홀함
스님, 이건 완전 기내식인데요!
참 귀한 선물
걸음마다 “나무 관세음보살”
설산에 핀 유채꽃
내 영혼의 친구
세상의 가난과 고(苦)가 여기에
사랑이란 내 모든 것을 주는 것

4장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순간
죽이지 마, 제발 죽이지 마
여섯 살 아이의 눈물
세 비구니의 충격 증언
양로원에 사는 스님의 속사정
슬픈 새해 아침
불탑의 기상천외한 사연
육식 코너로 간 달라이 라마
내 허물은 내 탓이다
티베트의 봄을 기다리며
타락해버린 기도
부처도 화낼 사기극

 

[알라딘 제공]

 

출판사 서평

라다크의 오지 마을에 매년 사랑의 보따리를 배달하는 산타 스님,
달라이 라마와 뭇 중생을 스승으로 모시는 길 위의 구도자가
26년 동안 히말라야 설산에서 배운 사랑과 축복의 메시지!

바쁜 걸음 멈춰 세운 그대여, 행복하여라!
맑은 영혼의 땅, 히말라야의 기운을 당신에게

날마다 참 행복의 비밀을 일깨우는 히말라야의 스승들


신학생에서 승려로, 다시 한국에서 인도로, 참스승을 찾아 떠돌던 10여 년의 행각을 멈춘 뒤 티베트 난민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26년째 구도의 여정을 이어가는 청전 스님. 그동안 수행길의 거울로 삼아온 달라이 라마와 이름 없는 참스승들의 맑고 아름다운 삶을 글과 사진으로 전한다. 25년 넘게 단골로 지내는 인도인 푸줏간 삼형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70년 동안 날마다 험준한 산길 10리를 걸어 올라가 사원을 참배하던 뿌자리(사원지기) 노인, 이웃에 사는 티베트 난민들, 라다크 순례 봉사 때마다 마주치는 눈 맑은 노승들까지, 자신을 가르친 참스승은 이름 없는 민중들이었고, 하여 자신의 종교는 ‘민중’일 수밖에 없다는 한 비구의 행복한 고백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26년째 히말라야 설산 자락에서 지내온 길 위의 구도자가 히말라야를 닮은 맑고 밝은 사람의 얼굴에서 발견한 행복의 비밀은 다름 아닌 ‘착한 삶’이었다. 어쩌면 끝 모를 욕망을 좇느라 우리가 가장 먼저 내다버렸을지 모를 ‘착한 삶’ 속에 가장 고귀한 행복의 열매가 있음을, 저자의 참스승인 눈 맑은 영혼의 사람들이 침묵의 언어로 들려준다.

깨달음과 행복은 둘이 아닌 하나

산을 좋아해 험한 고지를 찾아 헤매던 산사람으로서 저자의 업력은 히말라야 자락에 자리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성산 카일라스(수미산)를 비롯해 히말라야 설산 연봉을 무수히 누비던 순례자의 발걸음이 어느 날 다다른 곳은 라다크였다. 그곳 곰빠(절)와 마을의 열악한 환경을 알게 된 후 애타게 깨달음을 갈구하던 ‘코리안 몽크’는 사랑을 전하는 ‘산타 스님’으로 변신했다. 해마다 보따리장사처럼 지프차 가득 이민가방 여러 개를 싣고 일 년에 단 한 차례 길이 열리는 라다크로 여름 한 달 순례길을 떠나는 것이다. 이민가방 속에는 곰빠의 스님과 마을 주민들에게 전해줄 손톱깎이부터 중고 손목시계, 보청기, 돋보기, 각종 영양제와 학용품이 가득하다.
알음알음으로 눈먼 돈을 보내오는 지인들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보내주는 도움의 손길은 그...(하략)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책속으로

고지를 넘는 것과 같은 힘든 과정이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나를 속이고 기만하는 것조차 내가 험고를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고통이 곧 행복의 씨앗이 된다. 그때도 찻집 아저씨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십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한달음에 갈 수 있었을 것인가. 지금도 힘든 여정을 만나면 찻집 아저씨의 말이 저절로 주문처럼 되새겨진다. “니째 도 킬로!”
--- pp.39

푸줏간 삼형제처럼 사회 밑바닥을 이루는 순박한 민중의 삶과 접할 때마다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진실된 삶의 자리에 뿌리박은 그들의 모습은 가슴속 깊이 잠재해 있던 나의 삶을 바로 비추고 들여다보게 한다. 이처럼 그분들을 통해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되니, 나의 종교는 민중일 수밖에 없다. 진실하며 위선이 없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민초들의 삶이야말로 세상의 스승인 것이다.
--- p.58

일행 중 한 사람이 내가 길 떠날 때 늘 챙겨가는 손톱깎이로 시종 수줍게 웃는 노인장의 손톱을 곱게 깎아드렸다. 그리고 손톱깎이를 선물로 드린다고 하니 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이럴 때 내 인생길은 행복으로 충만해진다. 하찮은 손톱깎이 하나로 이런 기쁨을 맛보다니.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을 때마다 딱 하나 남은 아랫니 치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초라한 삶임에도 그날그날 매상엔 관심이 없는 듯 편한 모습이다.
--- p.77

티베트 스님이나 라다크에서 노스님들이 오시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양고기 요리를 해서 대접한다. 우리의 고추장과 된장으로 양념을 하면 양고기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없어져 먹기가 한결 낫다. 한번은 라다크에서 노스님들이 찾아오셔서 함께 양고기 요리를 만들어 먹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내 방의 불단에 모셔둔 부처님까지 내려와 “너희만 묵냐. 나랑 함께 먹자”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국의 여러 지인들에게 써 보내서 한바탕 웃었던 적도 있다.  
결국 내가 신부님께 전수해준 법이라는 게 양고기 조리법이었다. 스님이 되어가지고, 그것도 고기 요리법이라니! 게다가 전수해준 분이 신부님이라니!
--- p.142

반가운 스님들, 일 년에 한 번 찾아가는 나에겐 이분들이 불보살의 화현으로 다가온다. 내가 인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라다크를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도살이 이십육 년에 라다크는 진즉 내 영혼의 땅이 되어버렸다. 한 달여 라다크 일주를 마치고 다람살라에 돌아가면 늘 파김치가 된다. 그때마다 더는 못 갈 곳이라 해놓고선 몇 달이 지나면 슬슬 그쪽 곰빠와 스님들이 내 마음속에 살아 움직인다. 그러면 다시 온갖 약품을 챙기며 내년 여름을 기다리는 것이다.
--- p.170

어느 날이나 저녁엔 쉽게 잠에 빠졌는데 이 밤은 생각이 깊어진다. 내일 들어가는 링세 곰빠의 체링 도르제 스님 때문이다. 작년 여름이니 꼭 일 년 전에 신장 결석이 탈이 되어 끝내 이승을 마쳤다. 칠십 전이라 더욱 애잔한 마음이다. 이 길을 다섯 번이나 함께 걸었었다. 만약 작년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마땅히 그 스님이 말을 끌고 나왔을 것이다. 2007년에는 함께 한국 나들이도 했는데, 내가 이 길을 오갈 때 함께 한 인연 덕분이다. 늘 언젠가는 함께 티베트에 가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아, 인생은 무상하지요. 체링 스님, 스님은 지금 어디에서, 또 어떤 존재자로 머무시는가요?” --- p.175

나야 먹는 거라면 어떤 험한 먹을거리라도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다른 대원들이 문제다. 일부러 지 교수한테 “저 밥 먹을 수 있겠소” 물으니, 선뜻 손으로 집어먹으며 “스님, 이건 완전 기내식인데요!” 한다. 아무리 궁한 처지라도 말이 먹을 밥을 기내식이라고 하다니. 결국은 모든 사람이 이 밥을 데워 함께 먹기로 했다. 챙겨온 밑반찬으로 장아찌가 조금 남아 있어 가능할 듯했다. 말 세 마리에게 먹일 아침 끼니를 우리가 축내는 꼴이 된 것이다.
--- p.179

무엇보다도 최고의 관심거리는 손목시계다. 한국에서 쓰지 않는 헌 시계를 모아 새 약을 갈아 끼워 이런 외딴 절의 스님들께 드린다. 해마다 이삼백 개의 헌 시계를 날라 쓴다. 꼭 나이순으로 당신들 마음에 드는 시계를 고르시도록 하기에 누구나 좋아한다. 한국 곳곳의 주지 스님들의 배려로 인도 땅까지 날아온 이 헌 시계는 받아쓰는 이들에게는 대단한 선물이자 재산이기도 하다. 더러 어떤 신도 분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아라비아 숫자가 크게 박혀 있는 중국제 손목시계를 전해주시기도 한다. 이런 시계만큼은 가장 연로하신 스님들께 공양 올린다. 시계를 차보고는 그리도 좋아하시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
--- pp.185~186

막상 그 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말문이 끊어진다. 저 아래로 가물가물 희미한 물줄기만 보일 뿐 도대체 길 끝나는 곳은 어디일까 감이 안 온다. 정말 발바닥에 땀이 나는 무서운 길인 것이다. 좀 신경성 체질이라는 레오 신부님이 얼마나 차량 손잡이를 꽉 붙들고 계시던지 야크님이 한마디 한다. “신부님, 손잡이 빠지겠어요!” 그 말에 슬며시 손을 내리는데 가슴에 성호를 긋는다. 아래 밑바닥 길에 도착하자 그때서야 아끼던 말을 하는데 서로 겁쟁이라고 핀잔이다. 그 길 위에서 겁 안 먹을 사람이 있을까. 좋은 길 놔두고 남 골탕 먹이는 길로 안내하는 인로왕보살도 짓궂기가 보통은 아니다.
--- p.195

식사 때가 되면 내 방에 오셔서 말없이 손짓으로 밥 먹을 때라며 길잡이 하시던 노 수사님, 그때 그 수사님의 찬바람 이는 자태에서 바로 일생 수도자의 삶이 어땠고 지금 가는 수도자의 인생길이 어떤지를 너무도 진하고 아름답게 각인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노 수사님의 모습과 체왕 릭진 스님의 자태나 인상이 똑같기에 늘 이 삐쩍 마른 노스님을 반가운 영혼의 친구로서 만나곤 한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미리 숨겨두었던 손목시계를 나뭇가지와 흡사한 마른 팔목에 몰래 채워드렸다. 아기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내년에는 틀니도 해드려야겠다.
--- pp.202~203

우리 한국 땅의 착한 민중들이 티베트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을 남의 일로 여기고 무관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겨울 입구에서 혹독하게 추운 티베트 장탕 고원에 사는 유목민이나 승가의 착한 스님들을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진다. 겨울이 오면 유독 생각이 깊어지는데, 오늘따라 심한 악천후에 눈발이 진해져가니 그들의 삶이 계속 가슴에 아른거린다.
--- pp.229~230

티베트 본토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달라이 라마는 어떤 심정일까 하는 생각이 꼭 일어난다. 한번은 달라이 라마께서 뜬금없이 혹시 친인척 중 누가 이북 땅에 남아 있는가 물으셨는데, 세월이 갈수록 그 질문의 무게가 절절히 다가온다. 당신의 조언대로, 끝까지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비폭력, 무저항 정신을 지켜나가야만 한단 말인가. 하긴 이 나라 인도 역시 영국 통치하에서 키 백육십오 센티미터, 몸무게 사십오 킬로그램의 비쩍 마른 단신의 간디할아버지가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끝내 숭고한 독립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 pp.243-244

[YES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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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_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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