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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찬 붓다다사(Ajahn Buddhadasa, 1906~1993)

지복에 이르는 길..../관련자료

by O_Sel 2008. 1. 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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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남부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원이 없다. 다만 70 여년 전에 한 비구에 의해서 창설된 숲속의 수행도량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이 ‘해탈의 정원’이라는 의미의 수안 목(Suan Mokkh)이다. 필자는 1995년 12월 19일에 남부의 수랏 타니(Surat Thani)의 차이야(Chaiya)에 있는 수안 목을 방문하여 조사한 적이 있었다. 아찬 붓다다사가 입적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찬 붓다다사가 수안 목에서 펼치려고 했던 삶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찬 붓다다사(1906-1993)는 26세의 약관의 나이인 1932년에 자신의 고향에 수안 목을 창설하였다. 이곳은 아찬 붓다다사가 주장하는 새 불교 운동 즉, 초기 불교의 이념을 충실히 따르면서 수행을 하자는 내용을 중심 사상으로 하는 불교 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 이 수행도량의 구석구석에는 이러한 아찬 붓다다사의 이념이 잘 나타나 있다.

타락한 승단에 환멸

이곳에는 조석으로 예불을 하는 법당이 없고 넓은 숲 속의 나무 아래에 불상이 안치되어 그곳에서 예불을 한다. 또한 숲 속의 지정된 장소에서 포살(uposatha;매월 2 번 승려가 한 곳에 모여 계율을 합송하는 의식)을 한다. 이것도 아찬 붓다다사의 불교 운동 이념의 일환으로 표현된 것이다.

아찬 붓다다사는 태국의 근대화 정책이 시작되던 1906년, 태국 남부의 수랏 타니(Surat Thani)의 차이야(Chaiya)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8세에 사찰에서 교육을 받아 온 그는 22세의 나이에 자연스럽게 비구로 남아 있을 결심을 한다. 출가 후 고향에 있는 사찰에서 우수한 젊은 승려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수도인 방콕의 사찰로 옮겨 온 뒤 그의 인생은 새로운 회의와 전환을 맞이한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대부분 의례나 의식에만 빠져 있는 방콕의 승려들의 모습에 깊은 환멸을 느껴,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전하고 있는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해야겠다는 의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고려시대의 타락한 불교 승단을 보고 환멸을 느껴 정혜결사를 시도했던 보조 스님을 연상케 한다.

1932년, 태국에 민주혁명이 일어나던 해, 아찬 붓다다사는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과감히 기존의 승단에서 나와서, 고향인 차이야 근처에 수안목(Suan Mokkh)이라는 도량을 마련해서 새로운 불교 개혁을 시도하게 된다. 약 2년 동안 그는 이 정글 속에서 고독하고 엄격한 수행을 하면서 경장과 율장을 연구한 결과,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에 있으며 누구나 바로 지금 체득할 수 있는 경지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아찬 붓다다사는 ‘해탈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이 세계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불교의 주요 개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심어주는 일이었다. 이해란 개념들이 지닌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본질적인 의미를 간파할 수 있는 개개인의 통찰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의 기본적인 원리였다.

수안 목에는 태국의 다른 사찰과는 달리 금빛 찬란한 불상들이나 호화로운 장식들을 전혀 볼 수 없다. 넓은 정글과 코코넛 숲속에 가르치고 수행하고 숙식할 수 있는 공간들만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붓다다사 스님은 이렇게 해탈을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 놓고 출가자, 재가자, 남녀노소, 인종,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개방하였다. (『남방불교의 가르침』 강진아편, 1993년 불교시대사 참조)

空-무아실천 경조

아찬 붓다다사의 수행의 방침은 스님의 글인 「수안목의 수행 법」 The style of practice at Suan Mokkh(part 1, 1990)에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곳은 남방 상좌부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청정도론(Visuddhimagga)』의 선정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는 부분(p.25, n.3)으로, 남방상좌 불교보다는 초기불교 정신에 충실하려는 태도가 잘 나타나고 있다. 아찬 붓다다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수행센터에서 행해지는 수행의 원리는 팔리 원전과 주석서에서 직접 수집한 것이다. 각 수행자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수행법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중략> 따라서 우리의 수행의 노선은 미얀마식이라거나 스리랑카식이라거나 태국식이라고 또는 이 사원의 방식, 저 사원의 방식이라는 어느 특정한 사원의 방식이라고 또는 이 스승의 방식 저 스승의 방식이라고 불릴 수 없다. 우리는 붓다가 직접 가르친 팔리 경전에서 우리들 각자가 개인적으로 선택한 방법으로 수행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팔리 원전과 모순이 있는 곳이 있다면 주석서나 『청정도론』과 같은 특별한 논서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아찬 붓다다사의 수행법으로는 입출식념을 닦을 것을 권하며, 마하시 수행법과 같은 수행의 보고나 점검은 없다고 한다. 특별히 수행법에 대해서 지도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방법을 따라서 스스로 수행을 하도록 한다.

아찬 붓다다사는 수안 목의 건립 시 한 사람의 지도자가 이곳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원이 서로 좋은 벗(善知識)의 관계로 서로 서로 의지하며 수행하는 것을 생활의 규범으로 했다. 따라서 아찬 붓다다사는 이 사원에서 살고 있는 대중은 누구나 선지식이므로 설법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찬 붓다다사의 설법은 수행법보다는 연기(緣起), 무아(無我), 공(空) 등의 교리에 대한 것이 많았으며, 무아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붓다다사 스님은 ‘수안 목(해탈의 정원)’에 머물면서 자신의 삶을 부처님이 제시해준 담마의 실천에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dhamma)과 계율(vinaya)을 스승으로 삼았다. 아찬 붓다다사 스님은 스스로 경전을 탐독한 후에 자신이 실천해야 할 수행법을 찾았다.

수안 목에 자리 잡은 지 2년이 되었을 때, 「불교(Buddha-Sadana)」라는 잡지를 계간으로 간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 방콕 이외의 지역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불교잡지였으며, 이후 태국에서 가장 오래 발행된 잡지가 되었다. 이 잡지는 곧 참신한 내용으로 읽기 쉽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 잡지라는 평판을 얻게 된다.

수안 목에 온지 3년째가 되던 해(1932) 우안거 때, 붓다다사 스님은 3개월 내내 묵언수행을 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일종의 실험실로 삼았다. 자신의 경험들을 꼼꼼히 기록하여 자연에 대한 관찰과 인간의 마음 작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많은 글들을 발표하였다. 글을 통해서 교학에 대한 연구와 실천 수행과의 관계를 탐구하고, 그것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주목받을 만한 것이었다.

 

수행과 경전공부 병행 강조

남방 상좌불교의 전통에서는 교학을 연구하고 의식을 행하는 도시에 거주하는 승려들과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며 숲에서 거주하는 승려들 사이에는 구별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하여 천년이 넘도록 이어온 전통이었다. 붓다다사 스님은 출가 생활의 두 가지 방식을 통합하였다. 수안 목이라는 숲 속의 수행처에서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전통적인 두타행 수행을 하였으며, 동시에 경전을 열심히 연구하며 많은 글을 쓰고, 설법도 자주 하였다.

쉽고 합리적인 법문으로 포교

붓다다사 스님의 법문은 합리적이고 쉬운 말을 사용하여 명료했으며, 문학적인 표현이 풍부했으면서도 승가의 전통적인 어법에도 어긋나지 않았다. 스님의 법문은 바로 담마에 초점을 맞춰 누구나 스스로 공부하고, 이해하며, 실천하고 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붓다다사스님은 현대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최근 수십 년 동안 ‘붓다 담마(불교)’를 현대적 상황에 알맞게 적용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하였고, 현대 사회구조의 부도덕성과 이기주의에 대해 직설적인 비판을 해왔다. 수안 목을 중심으로 태국의 불교를 개혁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려고 하였다. 스님의 불교개혁운동은 궁극적으로, ‘이기적이지 않은 자연종교’라고 부른 그 어떤 것, 즉 경전이나 붓다 자체보다도 오히려 근원적인 불교의 진정한 원천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붓다다사 스님은 사성제·무아·공·연기 등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현실에 적용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일상의 삶에 용해되어 있는 종교적 차원에 대한 현재적 재발견, 분열되어 있던 승려와 재가자 사이의 가교 역할, 과학과의 적합성, 지적인 엄격함, 담마의 세계관에 근거한 정치적·경제적 논쟁의 해소 등을 성취할 수 있었다.

붓다다사 스님이 경전에서 발견한 실제적인 수행법은 바로 부처님이 자주 수행하신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入出息念)이었다. 이 수행법은 『입출식념경』(入出息念經, 中部 118經 MN Ⅲ pp.78-88)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 경전에는 호흡에 대한 마음 챙김(出入息念)에서 네 가지 마음 챙김(四念處)으로 수행이 향상되며, 다시 네 가지 마음 챙김 수행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로 이어지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의해서 지혜(明, vijja)에 의한 자유(解脫)를 이루게 된다는 구체적인 수행의 단계가 조리 있게 설해져 있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지도

아찬 붓다다사는 경전의 내용에 따라서 수행의 단계를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과 함께 전개되는 몸, 느낌, 마음, 법(身受心法)의 네 가지 대상을 각 4 단계씩 관찰하는 16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이 경전이야말로 실제적인 수행법이 제시된 유일한 경전이라고까지 말한다. 출입식념에 근거한 수행법은 여러 수행의 전통에서 볼 수 있지만 아찬 붓다다사의 설명처럼 구체적인 수행의 단계가 제시되는 예는 드물다.

수안 목에서 1.5㎞ 떨어져 있는 곳에 국제 수행림(International Dhamma Hermitage)이 있고 그 옆에 외국인 승려을 위한 돈 키엠(Don Kiem)으로 불리는 수행처가 있다. 국제 수행림은 1989년에 재가자의 10일간의 집중 수행 코스를 위해서 운영되고 있는 넓고 잘 정돈된 수행 센터이다. 수행법으로는 출입식념을 가르친다. 돈 키엠에서는 아찬 붓다다사의 설법을 영어로 통역하던 아메리카 출신의 산티카로(Santikaro)비구가 다른 외국 승려와 함께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최소한 한 달 이상 지낼 승려만 받아 준다고 한다. 28에이커나 되는 숲 속에 개인용 쿠티가 10여 개 있다. 작지만 도서관이 있고, 혼자서 자신의 수행에 전념하면서 지내기에는 좋은 곳이다.

아찬 붓다다사 스님의 삶에서 우리는 진지하면서도 순수한 한 구도자의 열정과 현대 사회를 향해 불교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한 스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붓다다사 스님 입적 후에 수안 목을 중심으로 한 붓다다사 스님의 불교개혁운동이 정체되어 버린 듯하다는 점이다.

 

< 법보신문, 2004년 9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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