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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다르마의 성립

지복에 이르는 길..../학술, 교학

by O_Sel 2013. 6. 1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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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다르마의 성립

 

부처님 가르침수백 년 걸쳐 체계적 해설

 

아비다르마(abhidharma)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의미의 다르마(dharma), ‘최고의또는 ‘~에 대한이란 의미의 접두어 아비(abhi)가 붙은 용어로서 부처님의 최고의 가르침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 아비다르마란 이름으로 독립된 카테고리의 문헌들을 전하고 있는 학파로 테라와다(Therava-da)와 설일체유부(Sarva-stiva-da)가 있다.

 

빨리 아비담마(abhidhamma) 문헌들을 전하고 있는 테라와다에 있어서 아비담마는 주로 최고의 가르침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한문 아비달마문헌들을 전하고 있는 설일체유부에 있어서 아비다르마(abhidharma)는 주로 부처님의 가르침 또는 존재의 본성을 향하는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양자 모두에 있어서 아비다르마 문헌들은 논장이란 이름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은 경장(su-tra)과 승단의 계율을 모은 율장(vinaya)과 함께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말씀(Buddhavacana)’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담마상가니(Dhammasan.gan.i)를 비롯한 빨리어 아비담마 문헌들과 집이문족론(Sam.gl-tiparya-ya)을 비롯한 한문 아비담마 문헌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라기보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체계적인 해설로서 역사적인 부처님과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후대에 점차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빨리 테라와다 전통의 경우 논장이 부처님의 마지막 열반 직후에 라자그리하에서 있었던 제1결집에서 아난다(A-nanda)의 주도로 합송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중요한 논장의 하나인 까타왓투(Katha-vatthu)가 부처님의 마지막 열반으로부터 236년 후 빠딸리뿌뜨라(Pa-t.aliputra)에서 있었던 제3결집에서 목갈리뿟따 띠사(Moggaliputta Tissa)에 의해 편찬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문 설일체유부전통의 경우 샤리뿌뜨라(a-riputra)의 집이문족론(Sam.gl-tiparya-ya), 까띠야야니뿌뜨라(Ka-tya-yaniputra)의 발지론(Jn~a-napra-sthana) 등과 같이 각각의 문헌들의 저자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점들은 테라와다와 설일체유부의 전통에서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논장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논장이 부처님의 말씀이란 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논장이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말씀이란 점을 설명하려한다.

 

기원후 5세기까지도 빨리 아비담마 문헌들을 독립된 논장(abhidhamma-pit.aka)으로 인정해야할지 다른 곳에 포함시켜야할지를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는 테라와다(Therava-da) 전통의 경우 부처님의 유명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논장에 경장(suttapit.aka) 율장(vinayapit.aka)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려 한다.

 

 

테와라다와 설일체유부 2학파 독립된 문헌 전해

 

논장의 권위 세우려 부처님 전설적 이야기동원

 

전설에 의하면 부처님은 훗날 상까시야(Sa-m.ka-ya)에서 도솔천(Tra-yastirim.a)으로 올라가 어머니 마야 부인을 만나고 3개월 동안 가르침을 설한 후 사다리를 타고 브라마(Brahma) 인드라 신과 함께 자신의 가르침을 간절히 기다리는 인간세계로 내려왔다고 한다. 이 전설은 인도인들에 의해 성스러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바르후트(Bharhut) 산치(Sanchi)의 여러 부조에 남겨지게 되었으며 현장스님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까지도 상까시야(Sa-m.ka-ya)에 부처님의 사다리 유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테라와다의 주석전통에 의하면 빨리 아비담마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직후 수주일 동안 선정 속에서 깨달음의 환희를 누리던 때 이미 확립되었지만 세상에서 제자들에게 설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솔천에서 7가지 아비담마의 형태로 마야부인에게 최초로 설해졌고 샤리뿌뜨라(a-riputra)에게 먼저 전해졌으며 다시 500 제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빨리 아비담마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까타왓투(Katha-vatthu)의 경우에 있어서도 목갈리뿟따 띠사(Moggaliputta Tissa)는 단지 부처님이 미리 정하고 예언한대로 작성했을 뿐임으로 이 또한 부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수적인 테라와다의 주석전통의 주장이다.

 

한편 설일체유부(Sarva-stiva-da) 전통의 경우 내부적으로 아비다르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도출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카슈미르 비바사사(Kam1-ra Vaibha-s.ika)의 경우 개별적인 아비다르마의 저자들이 부처님의 영감을 받아서 작성했음으로 논장(abhidharmapit.aka) 또한 부처님의 말씀으로서 경장(suttapit.aka) 율장(vinayapit.aka)과 같은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한편 가장 진보적이었던 간다라 경량부(Gandha-ra Sautra-ntika)의 경우 설일체유부의 아비다르마 논서들이 부처님에 의해 설해진 것이 아니다(abuddhoktam abhidharmaa-stram)는 점을 지적하면서 논장에 대해서 경장의 우위를 주장한다.

 

후대 중국 및 티베트의 번역가들에 의하면 설일체유부는 7가지 아비다르마 논서들이 부처님의 말씀이란 점을 점차적으로 포기하면서 이들이 시대를 달리하는 논사들에 의해서 단계적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초기 아비다르마 문헌인 집이문족론〉 〈시설론은 샤리뿌뜨라, 마웃갈리야야나의 저작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설일체유부는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논장의 권위를 직접적으로 부처님에게서 찾기 보다는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과 설일체유부의 대표적 논사들의 권위에서 찾고 있다. 보수적인 카슈미르 비바사사에서 조차도 아비다르마의 몸통이자 가장 중요한 논서인 발지론(Jn~a-napra-sthana)이 불멸 300~500년 후에 활동한 까띠야야니뿌뜨라(Ka-tya-yaniputra)에 의해 작성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가 간절한 서약에 의해 생겨난 지혜(pran.idhijn~a-na)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사건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작성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호소할 따름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아비다르마 문헌들은 특정한 시점에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불멸 후 300~500여년이란 긴 시간동안 인도불교의 여러 논사들의 노력에 의해서 단계적으로 발전해온 문헌으로 보아야할 것 같다.

 

그렇다면 아비다르마란 장르의 문헌들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을까. 몇몇 일본학자들은 복잡하거나 불확실한 교리적 문제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교환하는 승단의 교리적 문답(abhidharmakatha-)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양 학자들은 부처님의 모든 종류의 가르침들을 수적으로 또는 질적으로 나열하는 목록인 마뜨리까(ma-tr.ka-)에서 찾고 있다.

 

마뜨리까는 초기경전에서 사용된 교리적 개념들을 모으고 보존하기위한 종합적인 목록으로서 빨리 디가니까야(Dl-ghanika-ya)에 포함된 상기티숫딴따(Sam.gl-tisuttanta)와 한문 장아함경에 포함된 중집경(衆集經, San.gitisu-tra)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설일체유부의 초기 아비달마 논서인 집이문족론(Sam.gl-tiparya-ya)은 이 마뜨리까가 변형되고 주석된 것에 불과하다. 설일체유부 아비다르마 문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단순한 교리적 목록에서 종합적인 분류체계로 발전하게 된다.

 

초기 논서들이 교리적 목록 또는 경전의 인용문에 대한 주석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반해서 중기 논서들은 독자적인 분류체계를 가지고 불교의 교리전반을 설명하려 한다. 설일체유부는 점차적으로 물질, 정신, 정신현상, 정신적이지 않은 힘, 그리고 절대(無爲) 라는 다섯가지 포괄적인 카테고리(pan~cavastuka)를 발전시키게 된다. 중기 아비다르마 문헌인 품류족론(Prakaran.pa-da)에 이르면 이 새로운 카테고리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dharma)을 개념적으로 정의하고 분류하게 되는데, 그 가장 발전된 형태가 위의 다섯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75가지로 분류하는 설일체유부의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이다.

 

 

 

 

불멸 후 300~500년 논사들 노력으로 단계적 발전

 

일본은 교리문답.서양은 마뜨리까에서 기원 찾아

 

테라와다 아비담마 문헌에서도 이러한 보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초의 빨리 아비담마 논서인 담마상가니(Dham masan.gan.i)의 경우 마뜨리까(ma-tr.ka-)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불교의 중요한 교리적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분류하고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사실상 뒷부분은 앞부분의 목록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번째 빨리 아비담마 논서인 비방가(Vibhan.ga)가 담마상가니의 속편처럼 보이고 반복적인 해설들이 되풀이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두 문헌 모두 아직까지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으로서 수없이 많은 논사들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수정되고 보완된 결과물로 보인다. 빨리 논서들은 점차적으로 까타왓투(Katha-vatthu)에서와 같이 여러 가지 교리적 쟁점들에 대한 논쟁을 모으거나 빳타나(Pat. t.a-na)에서와 같이 24가지 조건(pratyaya)들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dhamma)의 상호관계를 논하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편 데라와다 전통 또한 설일체유부와 같은 보다 종합적인 카테고리를 발전시키게 된다.

 

이들의 포괄적인 분류체계는 11세기 경의 논서인 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 mattha-san.gaha)에서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데 물질, 정신현상, 마음, 절대(asan.khata)란 네 가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dhamma)82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개념적으로 분류하려는 노력들이 반복적으로 심도 있게 진행되면서 점차적으로 기존의 개념들 및 분류체계 사이의 모순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점들을 해결하려는 전문적이고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 아비달마는 점차적으로 깊은 학문적이고 사변적인 영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황 순 일 동국대 교수

출처: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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