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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과 참선법

지복에 이르는 길..../지혜, 방편

by O_Sel 2013. 2. 6. 09:00

본문

修定과 參禪法.

 

비로자나불 칠지좌법

 

1. 쌍가부좌에 능하지 못한사람은 금강좌[오른다리를 왼쪽넙적다리에올림]혹은 여의좌[왼쪽다리를 오른쪽 넓적다리에 올림]를 한다.


2.
양손은 삼매인[오른손바닥이 위로 가게하고,왼손바닥위에 놓는다,양엄지손가락은 서로 마주 붙인다.]을 한다.


3,
등의 척추는 곧게 세워서 동전을 포개듯 한다.[신체가 건강치 못한사람은 그 자연에 맡겨,오래하면 스스로 바르게된다.]


4.
어깨는 평평하게 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5.
머리를 바르게 턱을 거둔다.[뒤쪽뇌가 약간 뒤로 향하게하고, 아래턱은 거두어서 좌우 대동맥을 압박한다.]


6.
혀는 위턱에댄다.[혀를 가벼히 저 치아에 침이 나온는 곳에붙인다]


7.
양눈은 반은 감는다.

 

 

이외에 주의사항

 

1. 좌선할 때 허리띠등 몸을 속박하는 물 것은 모두 내려놓아서 몸으로하여금 완전히 휴식하게 한다.


2.
날씨가 청량할때는 반드시 양무릅과 뒷머리가 따뜻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풍한이 침범하여 약으로 치료할 수가 없게된다. 이것은특별히 주의 해야 한다.


3.
처음 정을 읶히는 사람은 공기와 광선을 잘 조절해야 한다.그렇지 않고 광명이 너무강하거나 어둡게 하면 쉽게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혼침에든다 또 자리앞에삼척에는 공기가 흐르게 한다.


4.
지나치게 배부르면 앉지 말아야 한다.졸음이 지나치면 앉지말아야 한다.한잠잔후에 다시 앉아야 정정을 얻기가 쉽다.


5.
초 학자나 오래된이나 넓적다리에 이삼촌 높이의 방석을 괴고 앉는다. 초학자가 양다리에 아픔이 심하면 사오촌 높이의 방석을 괴고 앉고 점차 익숙해지면 차츰 높이를 줄인다..[방석을 괴징 앉으면신체의 중심이 뒤로 가서 반드시 뒤로 치우치게된다. 그래서 기맥이 막혀서 애쓴만큼 공이 없다]


6. 
하좌시에는 두손을 비벼서 얼굴과 양다리를 마찰하고 기혈을 유통시켜그런후에 비로소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한 운동을 한다.


7.
앉았을때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머금어서 얼굴부위의 신경을 부드럽게 하여 자비로운 얼굴을 하지 매마른 고목같이하여 마음을 긴장하지 않는다.


8.
처음정좌를 읶힐 때 시간은 적게잡는다. 그리고 여러차례앉는 것으로 한다. 굳이 오래앉으면 번뇌심만 커진다.
처음 좌선을 읶힐 때 자세 에 주의하여 오랜 습관을 들인다. 잘못된자세가 되면 나중에 고치기가 어렵다. 이것은 반드시 심리,생리에 영향을 주어서 쉽게병이 발생한다. 처음정을 얻거나 마음이 공함을 본자는 반드시 신체가 가볍고 평안함을 얻고 신을 맑고,기는 상쾌하여 말로 설명할수없다.만약오로지 기맥[임독유통]을 수행하는 사람은 몸을 보는 것이 역역하여 아집을 제거하기 어려워서 도리어 정각의 장애가 될것이다.법다히 수행을 하면 신체가 본능적으로 활동을 발생하여 기기가 유행하며 대약이 현전하여 광명이 흐르듯 나타나는데 이것은 다 선정의 과정이므로 집착할 것은 못된다. 집착한즉 마경에 들어가고 말것이다.만약 수행이 법에합당하면 반드시 머리가 시원해지고 눈을 밝아지고 귀는 총명해지고 호흡은 깊어지고 사지는 편안해지고 침은 달콤해지고 옛적의 병이 모두 사라지고 정력이 넘친다.다만 이때에 계행을 지켜서 그 소모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만약 한번 음욕이 생기면 기맥이 막히고 심신이 다 병에 거릴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기혈의 왕성함과 쇠약함에 따라 충만하ㅗ 허약함이 드러난다. 만약생각을 과도하게 하여 피로해지면 기혈도 함께 쇠약해진다. 그러므로 몸을 편하게 하면 건강할수 있고 생각을 적게 하고 욕망을 끊으면정신을 배양할수 있다.  황제내경에서 말하는 기경팔맥은 고대 도가의 학설에서 나온 것이다. 도가는 인체에서 임,,충삼맥을 양생수선의 가장중요한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티벳의 밀종에 의하면 인체중에는 삼맥사륜이 있는데 이것이 즉신성불의 관건이라고 한다. 밀종법중에 甚深內義 根本頌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한 기맥학설은 황제내경이나 황정경에 비해 독특한 점이 있다. 밀종과도가는 비록 삼맥을 수련할 것을 주장했지만 도가는 앞뒤의 임독맥을 주로 하였고 밀종은 좌우이맥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둘다 중맥을 관건으로 삼았다. 선종 사실 이미 기맥의 문제가 앉는자세에서 내포되어있다. 결가부좌는 기를 단전에 내릴뿐 아니라 기식을 편안하게 한다.이렇게 하여 마음이 안정되면 기도 안정되어 점점 각기맥을 따라 유동하여 중맥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기가 중맥으로 들어가서 맥이 통하고 마음이 열리면 망념이 일어나지 않고 몸과마음을 잊을수있는데 이때가 되어야대정에 도달할수있다.기맥이 안정되지않으면 절대 대정에 들수가 없는것이다.심리와 생리는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며 일체양면 임을 알 수 있다. 일체의 신경맥락은 중추신경을 중심으로 좌우로 분포되어있으며 서로 반대로 교차되어 있다.그래서 정좌 할때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부딪게 하는 것은 좌우의 기혈을 교류토록 하는것이다.

 

 

 

선정입문방법

 

선정수습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결심과 원력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발심이라고 한다.그다음 중요한 것은 선행과 선행에 의한 복덕이다.
정혜입문에는 발심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에 공덕을 닦을 수 있어야 바야흐로 도에 들어갈수 있다. 현교와 밀교를 막론하고 다 4무량심으로 무게를 둔다. 진실로 대원과 대행이 없이는 마침내 사이길에 빠져 들것이다. 수정의 도구는 밖에서 구할것이 아니다.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한가지로 묶어서 마음을 한가지 인연에 모아서 점차단련하고 순숙해지면 止境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육근은 밖에 있는 육진에 항상 헛되이 이끌려서 우리의 진실한 성품을 잃어버린다.그러므로 성품을 회복하려면 바로 이 육근을 도구로 해서 이루어진다.다만 매번 하나의 근진이 천차만별의 차별법문을 만들기 때문에 분석해서 다 없애긴 어려운것이다.부처는 한생각속에 8 4천가지의 번뇌가 있다고 했다.모든사람은 각각 성품,습관,기호등 근기가 다르기에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 수행해야 한다.즉 우리들의 근기에 계합하는 한가지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1. 안색법문: 안색법문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a.
물체와 연관된 법문 :눈에 인식되는 모든 물체를 통해 선정을 닦는 것이다. 이 방법은 눈에보이는 범위안에 하나의 물체를 [불상이나 다른 약간의 빛을 발하는 ]놓고 정좌수련할 때 이물체를 주시하듯 바라본다. 빛의 색깔은 각개인의 생리와 심리에 맞도록 하는데 예컨대 신경이 과민한 사람은 녹색광선,쇠약한사람은 홍색광선,성격이 급한사람은 약한 청색이 좋다. 단 이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개인의 실제적 상태에 맞게 취해야 하며 한번 결정했으면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

 

b. 빛과 연관된 법문
이 방법은 정좌수련을 시작할 때 보이는곳에 [기름등,혹은 향,또는 해,,,의 빛 최면사들이 사용하는 수정구의 빛도 좋다]을 눈의 정면에서 약간 비키도록 놓는것이다.이 밖에 허공이나 거울을 본다든가 불이나 물을 보는것도 모두 이방법에 속하는것이다.그런데 한가지 주의할점은 거울속의 자기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신경분열을 일으킬수 있으므로 가벼히 실험하지 말아야 한다. 이 방법들은 불교나,도교,외도들도 같이채용하는 것이다. 단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수행하는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방법은 다만 초학자를 쉽게 수련할수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이것만이 진실이라고믿는다면 마경외도에 떨어진다는 것이다.왜냐하면 자기의 마음을 정지 시키지않고 도리어 방법에 사로잡혀 마음을 혼란시킨다면 자연히 지의 경지에 도달할수없기 때문이다.수련하는 과정에는 항상 여러 가지 경계가 나타날 수 있다.예컨대 광색을 수련하는데 환상이 나타나거나 안신통의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만약 뛰어난 스승의 지도가 없으면 대단히 위험하며 바로 마도에 빠질수도 있다.상근기의 사람은 광색의 경계속에도 활연대오 하지만 일반사람은 기대할것이 아니다. 예컨대 석가가 새벽별을 보고 도를 깨달은 것과 같고, 이 밖에 홀연히 어떤 물체를 보고 본성을 통견한 예도 있다.

 

 

2. 耳聲法門도 안팎의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a.
내적인 소리를 듣는 법문 :이 것은 자기의 체내에서 내는 소리 즉 염불,염주,독경등을 듣는 것이다.  염의방법에는 세가지가 있으니 큰소리로 염하는것,작은소리로 염하는것[금강념이라한다],마음의 소리로 염하는것[유가념이라한다]이 있다. 염할때는 귀로 그소리를 들어야 한다. 처음에는 염불혹은 염주소리에 마음이 집중되지만 점차 일념 일성에 마음에 집중되어 드디어 마음이 고요해 진다.


b.
외적인 소리를 듣는 방법,:이법문은 어떤소리 이든지 물체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방법이다.가장 좋은 것은 물이 흐르는 소리나 폭포소리를 또는 바람이 불어서 풍경이 울리는 소리를 또는 범패소리를 듣는것이다.이방법은 가장 쉽게 定을 얻을수 있다. 능엄경에 있는 25분의 보살들의 圓通법문중에 관세음보살의 법문이 가장좋은데 그것이 바로 소리를 듣는 법문으로 입도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이방법이 참으로 가르침의 근본이니 깨끗함이 소리를 듣는것에 있느니라" 라고 말한것이다.처음으로 마음이 소리에 완전히 집중하면 능히 졸지않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않으면 자연히 이런 경지를 계속지켜 나갈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정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고 하겠다.항상 이렇게 하도록 수행하면 어느날엔가 홀연히 적정에들어 어떤소리도 들리지 않게되는데 이것이 고요함이 극치에도달한 경계이다. 경에는 이것을 淨潔이라고 한다.정결의 경지에들어갔을 때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 탐착하지말아야 한다. 그리고 움직임이 하나의 현상이라면 정결도 하나의 현상임을 깨달아움직임과 고요함 두현상에서 벗어나야 하며 움직임과 고요함에집착도 떠나지도 않는 중도를 깨달아야 한다. 이때가 定의 경지에서 지혜를 보는 觀慧의 경지로 들어가는 시기이다.지혜로보고 性으로 듣는 것은 움직임과 고요함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끊어지는것도 계속되는것도 아니다.나지도 죽지도 않는 무생무멸한 본체이다.그러나 이것도 아직 점수의 단계이다.선종의 조사들은 많이이러한 점진적 단계를 거치지않고 소리를 듣는순간 돈오하여 해탈했기 때문에 선문으로 입도 한 사람들은 모두 관세음보살의 소리듣는 법문을매우 중요하게 인식하였다.이르테면 향엄은 대나무소리에 悟道하고,원오는 닭이 날개치는소리에 悟道하고 백장휘하의 한스님은 종소리에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죽을때까지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현상은 궁극적으로 불생임을 깨닫지 못한 사람도 적지않다. 소리를 떠나 조금도 마음을 빼앗기지않으면 자연히 고요한 정에 들 수 있다. 단 이고요함도 움직임과고요함의 한 현상에 불과 한것이다.이점을 알지못하고 고요함이 곧 본체자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로 외도의 견해이다.반대로 이단계를 뛰어넘었으면 이미 입문의단계를 지났다고 할 수 있다.

 

 

鼻息法門


이방법은 호흡하는 기를 통해서 정을 얻는 방법이다. 호흡이 능히 점점 미세해지면서 정지되는 것을 식이라 한다. 기맥수련,기공의 단련, 및 수식,수식의 방법이 모두 비식에 의한 방법에 속한다. 천태종과 밀종은 이방법을 가장중요시 한다. 이방법의 최고 법칙은 심식상의이다.생각이지나치게 많은 사람마음이 산란한 사람은 이 방법을 써서 호흡에 의해서 마음을 절재하면 비교적 쉽게 효과를 볼수있다.정을 얻은 후 세밀히 관찰하면  마음과 호흡이 원래 서로 의지함을 알수 있다. 인간의 생각은 기식에 따라 생겨나는 것으로 기식의 작용은 생각으로써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다.기가 안정되고 생각이 고요할때가 되면 크게 고요하게 된다. 그러나 모두 본성의 작용일뿐 도의 본체는 아니다. 도가는 선천일기가 흩어지면 기가되고 모이면 형체가 된다고 하고, 일반적으로 외도는 기가 性命의 근본이라고 하지만 이는 대단히 잘못된것이다.만약어떤 하나의 대상은 인정하고 자기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體性이 作用이 되는 도리를 알지못해서 바로 외도와 정법으로 갈라지는 단서가 된다.만약능히 자성을 먼저 깨닫고 공부하고 수행하므로서 점점 心息상의 자재한 경계에 도달하여 마음과 물질이 하나의 근원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 모든 법문이 공부하는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신촉법문


이법문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가지가 있다. 이것은 육근을 전제로 한 법문이다. 협의로서 신촉법문은 어느 일부분, 예컨대 양미간,두정상,배꼽 및 ,족심,미려,회음,중하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자리에 앉아 공부할 때 혹은 관상의 방법을 쓰거나 기맥을 수련하는것등은 모두 이법문에 속한다. 신촉법문은 수습하는 사람이 쉽게 신체상의 반응,촉각,서늘하거나,뜨거움,부드러움,매끄러움,막힘,등등의 신체적인 반응과 감각을 알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법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현상에 집착하게 만든다. 예컨제 기맥의 현상으로 도력의 깊고 얕음을 결정하게 하고 마침내 현상에 집착하는 경계에 빠진다. 이것이 곧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중생,수자상이다. 밀종과 도가의 수련법은 이러한 오류에 빠지기 쉽다.이것을 법집이라 한다. 가장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수행인에게서 가장어려운 것은 신견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황벽선사도 항상 이일을 탄식하여 신견이 가장 잊기 어렵다. 라고 하였다. 원각경에도 망령되게 사대를 자기의 몸이라고 여기고 육진에 인연한 그림자를 마음이라고 여긴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참된 것으로 인식하지 않아야 차가수진을 할수있는있는것이다.노자도 말하길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데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거니와 선종의 고덕들은 절대로 기맥의 문제를 말하지 않아서 학인들이 상에 집착하지 않게 한 것은 대단히 고명한 학풍이라 하겠다.                         

 

 

의식법문

 

이 법문은 모든 법문을 포괄한다. 앞에서 말한 법문들은 모두 오근 ,오경,오식에 의해 관계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오식의 주체는 바로 의식이며 심왕인 것이다. 모든존재는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문은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관심,지관,참선등은 모두 의식법문에 속한다. 관심법문을 시작할 때 보이는 마음은 자성진심이 아니다. 바로 생멸심인것이다.의식하는 망심인 것이다. 정좌하여 마음을 볼 때 이 점을 안으로 관찰하여 자기의 의식속에서 생멸하는 망심을 찿아서 이 마음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종적을 주의 하는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생멸하는 마음을 내관하면어느 땐가 생멸하는 마음의 흐름이 홀연히 끊어진다.이때는 앞생각은 이미 끊어졌으니 상관할수없으며,뒷생각은 아직 생기지않았으니 생기지않은 것은 역시 상관할 수 없다. 이러한 경지를 본체가 공적한 상태를 알았다 하는 지의 상태라 한다.불교에서는 사마타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지의 경지는 궁극적인 본원의 경지는 아니다. 단지 공한 정지의 경지일뿐이다. 본체의 관점에서 보면 있음은 공이 일으킨 것이요, 공은 유에서 세워진것이다.생멸은 진여의 표현된 작용이고, 진여는 바로 생멸의 본체임을 볼수가 있다. 결국은 중도를 보고 그 중에도 집착하지 않고 혜를 관하는 경지를 불교에서는 비파사나라고 한다. 이와같이 지와관을 계속하여 수행하여 한걸음 한걸음 닦아나가서 최후에 원만한 보리를 증득하게 하는것인데 천태학,밀종황교보살도 거론, 중관정견,등은 모두 지관을 수습하는 범주에 속한다.
참선법문은 초기의 선종에서는 어떤법문도 학인에게 주어진 것이 없다.언어도단,심행처멸의 선종에선 어떤 법문도 주어질수없는것이다.후대의 참선수행인들이 화두를 참구한다던가, 의정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방법을 써서 참선을 하였는데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 의식을 쓰는 법문이다.그러나 선종의 의식쓰는 법문은 의정을 쓰임으로 하는 것이다. 의정이란 무엇인가? 마음을 관하는 혜학도 아니고, 지관과 같지만 백법명문론에서 말하는 의도 아니다. 의와정은 서로 연결되어서 제팔아라야식에 깊이 들어가서 질과 함께 발생한다. 그러므로 육체와 마음은 본래서로결합되어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지 못한사람은 마치 가슴속에 무언가가  가로 놓여 있는 것 같아서 뽑아낼라고 해도 뽑혀지지 않다가 어느땐가 적당한 기회와 환경이 되면 홀연히 돈파할수있게 된다. 그러므로 영광이 홀로빛나 감각대상에서 떨어져 있다. 무릇 모습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고 말한 것이다.

 

 

定慧影像

 

소승불교학은 계로부터 입문하는데 능히 계를 지킬수 있어야 정을 얻을 수 있고 정이 있어야 혜를 얻을수 있다. 대승불교학은 보시,지계,인욕,정진으로부터 나아가서 선정에 이르고 최후에 반야지에 도달한다. 불법에서 말한 지나 관은 어느것도 모두 정혜를 얻기위해 하는 수행의 첫걸음이다. 육근을 쓰는 것에서부터 팔만사천의 법문이 파생하는 것이다. 모든 법문은 의념을 정지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생각이 끝인 상태에 도달한 것이 곧 정이며, 정의 정도는 공력의 심천에 따라 다르다. 정을 닦는 방법은 어떤사람은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들어가고 어떤사람은 공에서 시작해서 묘유를 알기도 한다. 법문은 비록 한없이 많지만 목적은 오직 정을 얻음에 있다. 이제 정의 현상에대해 알아보자. 무릇 g마음이 어느한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지의 경계라 하는데 이것이 정에들어가는 기초이다. 무엇을정이라 하는가? 정은 산란하지도 혼침하지도 않으며 성성하면서 적적하고 적적하면서 성성한 것이다. 마음은 고요하면서 결코 무생물에 마음없는 것 같지는 않은 상태이다. 마음에 의지하지도, 육체에 의지하지도 ,의지하지않는곳에도 의지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여 마음이 마음에 집착하지 않으며 육체에도 집착하지않으며, 집착하지않는다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경지가 정이다. 정의수행을 하는 단계에서는 대개 산란하지 않으면 혼침하거나, 산란하다가 혼침하기를 계속한다. 사실우리인생은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못하고 있을 뿐이다.

 

 

1. 산란

마음이 조잡한 것이 산란이며 비교적 약간 산란한 것을 도거라 한다.정을 닦는 사람이 어느하나에 집중하지못하고 오히려 망상이 생겨서 머릿속 가득 사상,연상,기억,반연등이 가득 차서 마음을 한곳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을 조산란이라 한다.

 

마음이 그다지 산란하지 않아서 어는 한곳에 집중된 것 같으면서 여전히 조금은 산란한 상태를 도거라 한다. 수행인들은 대개 이도거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왜냐 하면 자기자신은 약간의 산란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고 이미 정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크게 잘못된것이다.처음수행을 시작한 사람이 만약 망념이 그치지 않고 또 마음이 어지럽고 기가 요동치는 상태라서 안정이 안된다면, 먼저 운동을 한다든가,절을 해서 육체를  조절화고 기식을 유순하게 해서 다시 자리에 앉아 정을 닦아 가는 것이 가장좋다. 망념이 날뛰는 것을 쫓아가지 말고 단지 하나에 마음을 집중하도록  오랫동안 수행하면 자연히 집중될 것이다. 그런데 망념이 막정지 되려는 때에 자기가 이제 지의 경계에 들어가려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것이 또한 망념이다. 이 망념이 그치면 다른 망념이 생기고 이런식으로 계속되어 지의 경계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을 닦을 때 가장중요한 것은 자기가 지,정을 닦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입정에 집착하지 않아야 점차 지의 경계에 들어간다. 선정을 닦을 때 망념이 평소보다 많은것같지만 이것은 본래 자기에게 허다히 많은 망상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것이니 고민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망념이 너무많고 산란이 심해서 고요해지지 않는다면 수식의 방법을 이용하거나 혹은 관상의 방법을 쓰는 것도 좋다. 관상법은 제하단전이나 족심에 흑색의 광점이 있다고 관상하는 것이다. 이밖에 아미탄불을 소리내어 염송하는데  불자를 염할 때 이 불자가 밑으로 깊이 끌어내려져 마치 심신이 모두 끝없이 깊은곳으로내려가는 듯 생각하는 방법도 있다.

 

2. 혼침

거칠은 혼침은 잠이 오는것이고, 미세한 혼침이라야 혼침이라 할수 있다. 몸이 피곤하면 잠이 오지만 정신이 피곤해도 수면의 욕망이 생긴다. 잠이 올때는 억지로 정을 닦지 말고 잠을 푹잔후 다시 시도 해야 한다. 만약 좌선 한 채로 잠자는 습관이 들면 영원히 성공할수 없다.

혼침은 마음이 적적한 상태와 비슷하지만 어느하나에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또한 어떤 망상도 별로 없는 듯 하다.다만 혼미할뿐 심지어는 몸도 마음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혼침의 현상이 처음 생길때는 어떤때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 일종의 환상이 있을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혼침은 환상은 모두 이 혼침의 상태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의식이 분명치 않고 잠재의식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정을 닦는사람은 혼침에 빠져들기 아주 쉬운데 만약 그것이 혼침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정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슬픈 일이 아닐수없다. 쫑가파대사도 만약 혼침을 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은후에 축생도에 떨어질것이다.어찌조심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바가 있다. 혼침을 극복하는 방법도 관상을 쓰는되 배꼽가운데 하나의 홍색광점이 있고 이 광점이 점차 위로 올라와 정수리에서 흩어진다고 관상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신에 힘을 모아 소리를 지르것나, 코를 쥐고 호흡을 참았다가 참기힘들 때 코로숨을 세게 내쉬는 것도 좋다.혹은 찬물로 목욕을 하던지 운동을 하는것도 좋다. 기공을 수련하는사람은 혼침에 잘빠지지않는다. 어떤사람은 혼침을 완공이라고 해석하는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완공은 나무나 돌처럼 생각이 전혀없는 백치상태이다. 산란과침이 없어지면 홀연히 마음이 어느 하나에 집중되어 흔들리지 않게 되는데 이 때에는 반드시 경안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경안현상은 어떤사람은 머리끝에서 시작하고 어떤사람은 족심에서부터 일어나기도 한다. 정수리로부터 경안현상이 시작되는 사람은 정수리가 시원해지는 느낌후에 전신이 시원한 느낌이 퍼지고 마음은 고요해지고 몸도 가볍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때에는 몸이 마치 곧게 뻗은 소나무처럼 곧 바르게된다. 마음과 인식대상이 모두 분명해지고 어떤동정이나 혼침,산란의 현상도 없게 된다. 이러한 경안의 경계에 도달하면 자연히 무량한 기쁨이 생기는데 단 ,깊고 짧은 차이는 있지만 이 상태는 쉽게 사라진다.

족심부터 경안이 시작하는 사람은 먼저 뜨겁거나 혹은 찬 느낌을 느끼게되고 이것이 마치 하늘을 꿰뚫을 듯이 점차 정수리로 상승한다. 족심에서 시작된 경안현상은 정수리에서 시작된 경안현상보다 지키기도 쉽고 잘 사라지지도 않는다. 유가에서도 고요히관찰하니 만물이 모두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경계는 경안속에서 체득되어 나온 것이다.  경안의 경계에 도달한후에 고요한곳에 홀로 거처하면서 더욱 수행에 노력을 하여야 한다.

만약 번잡한곳에서 이곳저곳 신경을 쓰면 수행을 지속할 수 없고 경안도 점차 소멸된다.만약 계속 노력해서 수행해 나가면 자기고 모르게 경안현상이 담박해지는데 사실상 이 현상은 경안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경안에 머물럿기에 처음처럼 강력히 느끼지 못하는 것일뿐이다 이경안에서 쉬지않고 수행을 더하면 정력이 더욱 견고하게 된다. 이때에는 그지없이 맑고 밝은느낌을 얻고 전신의 기맥도 갖가지 변화를 일으키는데  신체가 따뜻해지고 안락해지는등 형용하기어려운 미묘한 느낌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안으로 묘약을 접촉한다는 것이다. 이정도가 되면 세속적 욕망을 끊을 수 있다. 몸안에 기기가 최초로 발동했을 때 생기가 활발해져서 체내에서 양기가 전신을 두루 흐를게 된다. 만약이때에 마음이 하나에 집중한 것을 잊게 된다면 성욕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일이다. 각별히 조심하고 근신해야 한다. 이 위험한 과정을 극복하고 다시 수행에 매진해 나가다 보면 頂상이 발생하게되고 또한 煖의 경지를 지나서 진일보 하게된다. 이때에는 기식이 근원으로 돌아가고 주관과 객관이 고요한 경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 경계는 三昧戒가 설명을 금하는 범위이기에 언어와 문자로 설명하기 어렵다. 정을 닦는사람이 이정도 의 경지에 도달하면 기주맥주의 현상을 체험할 수가 있다.소강절의 시중에 天根과 月窟이 항상 왕래하니 三十六宮이 다 봄이다. 라는 구절이 이것이다. 듣기는 매우 쉬운것같아도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만약 참으로 이경지에 도달하고 다시 계속해서 정에 머물러 있으면 다섯가지 신통이 생긴다. 가장 어려운 것은 안통인데 일단 안통이 발생하면 나머지 네가지도 계속 발생한다. 단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사람은 동시에 여러 가지 신통이 발생한다. 안통이 생겼을 때 눈을 뜨든 감든 시방허공,산하대지, 미세한 먼지속까지를 유리처럼 투명하게 볼수가 있고, 자신이 보고자 하는 사물도 마음만 일으키면 즉시 볼수있다. 그러나 만약 신통에 미혹된다면 바로 마도에 빠진다. 어떤사람은 마음되로 氣息이나 심장의 활동을 정지할수 있는데  그러나 불법의 중심은 定慧의 학이다. 정을 기초삼아 정을 얻은후에 그 얻었다는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 생과멸이 소멸되어 적멸이 현전 한다는 것이다. 이때에는 몸과마음에 나타난 경계는 모두 소멸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얻을 수 있는 경계는 心所가 발생한것이기 때문이다. 즉 生滅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엄경에 지금 비록 九次第定을 얻어도 漏盡을 얻지 못하면 누진아라한을 이루지 못해 이 生滅變化하는 현상을 집착하여 진실한 것이라 오인한다.만약 능히 靜相을 버리고 적멸속에 머물수가 있다면 性空의 경계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소승이 목표하는 과위로서 我執을 버리고 人空에 도달한 경계이다. 여기에 대승은 소승의 공적마저 버리고 일체의 假有와 實幻의 생멸거래가 無生에서 연기하여 묘유의 用을 이룬다는 것을 관해야 한다. 최후에는 어떤경계에도 머물지 말아야 한다 비록 말은 이렇게 하지만 定이 없으면 기초가 없으므로 단지 그 이치만을 말할수있을 뿐이다. 고덕이 말하길  한척을 증득 하는 것이 일촌을 행하는 것만 못하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통렬히 자신을 반성해서 실천 수행을 최상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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