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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카: 왕비가 된 꽃집 아가씨

지복에 이르는 길..../지혜, 방편

by O_Sel 2008. 1. 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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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기운이 새 생명을 싹틔우고 있음을 느끼기에 어렵지 않을 만큼 이제 서울의 햇살도 따사로워졌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많은 사람들과 속깊은 대화를 나누며 지내오다가 다시 한적한 일상의 궤도로 돌아와 앉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나 자신과 그 동안 내가 만났던 분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관조해보고, 도대체 어떤 힘이 우리의 차별적인 존재 양상을 지어내는지 곰곰이 사색해본다.

  한 전철 안에 탄 수십 명의 승객들은 그 외모도 다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내용과 그들이 겪는 운명도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부귀공명을 누리며 호사스럽게 사는데 다른 이는 가난에 찌들어 궁색하게 살아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가졌는데 다른 사람은 장애를 갖고 태어나 힘겹게 살아간다. 어떤 아이는 훌륭한 부모를 만나 부유한 가정에서 좋은 교육을 누리는데 다른 아이는 비참하게 태어나 온갖 천대를 받으며 자라난다. 어떤 노인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장수하고 가는데 다른 사람은 갖은 고초를 겪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기도 한다.

  너무도 얼룩진 우리 인간계의 이런 차별상을 보면 왜 이래야만 하는가 하고 한 번쯤 묻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도대체 금생의 노력만으로는 만회할 수 없는 어떤 작용이 있기에 이런 현실이 주어진단 말인가? 현실의 배후에 모종의 원리가 있다면 우리는 어느 한계까지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런 의문에 대해 최종적으로 만족스러운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인과(因果)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거스를 수 없는 인과의 힘을 깨닫게 하는 이야기는 불경의 많은 부분에 전해오고 있다. 부처님 당시에 비천한 신분이었던 화환장이(花環匠-)의 딸로 태어나 마침내 왕비가 된 말리카라는 여인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이다. 말리카가 16세였던 어느 날, 꽃바구니를 들고서 꽃을 꺾으러 가던 그녀는 한 무리의 수행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 가장 어른으로 보이는 분의 고결함에 감화되어 꽃바구니 속의 도시락을 공양올린 뒤, 그녀는 기쁨에 겨워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꽃밭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그분이 부처님인 줄 미처 몰랐다. 공양을 받으신 부처님께서 그윽한 미소를 지으시자 시자인 아난다가 그 까닭을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그 소녀가 이 공덕으로 바로 오늘 코살라국의 왕비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마침 그날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은 마가다국의 아자타사투 왕과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고서 퇴각하는 길이었다. 파세나디 왕은 지치고 낙심한 채 말을 타고 돌아오던 중 길가의 꽃밭 속에서 들려오는 말리카의 고운 노랫소리를 들었다. 말리카는 전장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지쳐 돌아오는 낯선 전사를 보고서 다정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깊은 위안을 얻은 국왕은 그녀가 미혼녀임을 확인하고 그녀를 말에 태운 채 아버지를 찾아가 청혼하였다. 이리하여 말리카는 부처님의 예언대로 왕비가 된 것이다.

  그녀는 궁중에 살면서도 자주 기원정사를 찾아 법을 듣곤 했다. 한 번은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세존이시여, 어떤 여인은 아름답고 부유하고 권세 있으며, 또 어떤 여인은 아름답지만 빈곤하고 권세 없으며, 또 어떤 여인은 못 생겼지만 부유하고 권세 있으며, 또 어떤 여인은 못 생기고 빈곤하고 권세도 없습니다. 이것은 어떤 원인에 따른 것이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해 인과법을 설하셨다. 마음이 넓어 화를 내지 않으면 아름다워지고, 출가자에게 공양하고 이웃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면 부유해지고, 남의 이익과 명예를 보고도 질투하지 않으면 권세 있게 되며, 그 반대의 원인은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말씀이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존재 양상의 배후에는 업(業)과 윤회(輪廻)의 원리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일생을 마치고 숨을 거두는 순간 그의 업력은 새로운 생명의 씨앗으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같은 종류의 업력이 서로 끌어당기는, 일종의 친화력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무자비한 사람의 마음속에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성향이 담기게 된다. 그런 사람은 다른 생명이 단명한 것을 보고서 만족을 느끼므로 스스로 죽으면서도 단명한 생명의 씨앗에 친화력을 갖게 된다. 또 남을 학대하고 상처 입히는 일에 쾌감을 맛보는 사람의 업력은 기형적인 신체로 자라날 생명의 씨앗에 친화력을 가질 수도 있다. 습관적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못생긴 얼굴로 태어날 생명의 씨앗에 친화력을 갖게 된다.

  말리카 같은 여인은 전생과 금생을 통해 화를 내지 않고 남에게 잘 베풀며 남을 업신여기거나 질투하지 않았으므로 미모와 부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으리라. 말리카는 왕을 설득하여 불법에 귀의하게 하였고 헌신적인 재가신도가 되게 하였다. 그래서 왕은 궁중여인들을 위해 규칙적인 법회를 열겠으니 제자 한 분을 보내달라고 부처님께 요청하기까지 했다. 부처님께서는 여인들도 고귀한 정신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아난다를 궁중으로 보내 설법하게 하셨다. 이런 일화 말고도 부처님께서 여성들을 배려하신 예화는 많이 있다. 말리카가 딸을 낳았을 때 왕이 실망에 잠겨있는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여자도 총명하고 덕망있게 행동하면 남자보다 훨씬 낫다고 가르치셨다. 말리카의 딸은 실제로 훗날 마가다국의 왕비가 되었다.

  말리카는 이승에서의 행복한 삶을 마치고 7일간의 지옥고를 치른 후에 도솔천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녀가 천상에 낳기 전에 이런 고통을 겪은 것은 생전에 저지른 단 하나의 실수 때문이었다. 어느 날 목욕을 하고 나서 몸을 말리고 있는 그녀의 몸 위로 애완견이 뛰어올랐는데, 이 강아지가 성적인 접촉의 의도를 가졌는데도 이를 그냥 묵인해준 잘못이 그런 과보를 불러왔다고 한다. 아무도 인과를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적용에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는 설화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감수해야 할 업의 한계는 이렇게 한 찰나의 일념에까지 미친다.

  업의 원리는 얼핏 보기에 비정해 보일지 모르나, 도리어 우리 불자들에게는 희망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기쁨의 노래로 넘쳐나온 말리카의 수희공덕이 한 생애의 행복을 불러왔듯이, 바로 지금 내가 행하는 선업과 올바른 일념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겨우내 서랍 속에 간직해 두었던 채송화나 봉숭아 꽃씨를 마당가의 꽃밭에 보드라운 흙으로 묻어주며 뒷날의 꽃매무새를 마음속에 그려보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만나고 스치며 사는 모든 이들의 삶에도 그만치 아름다운 꽃씨들이 알알이 뿌려지길 기원해본다.


출처: 월간 여성불교 2000년 4월호, 불교사의 위대한 여인들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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