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양승규 (철학 박사 ; 동국대 강사)
출 처 : 월간 『붓다』 10월호 (통권 제 152호)
오랫동안 달라이 라마는 겔룩빠(dGe lugs pa)와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라마이면서 동시에 티베트를 통치하는 최고지도자였다. 출가수행자가 정치와 종교를 함께 책임지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둘을 함께 수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가장 세속적인 것이고, 종교는 세속을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라를 잃은 현재와 같은 티베트의 상황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정치가와 불교수행자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충실히 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올바른 방식을 통해 티베트 독립을 추구하고, 스스로의 수행에 정진하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종파 가운데서 가장 늦게 형성된 겔룩빠의 라마이다. 겔룩빠는 15세기경 쫑카빠(Tshong kha pa)에 의해 세워진 종파이다. 쫑카빠는 당시 밀교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야기된 출가자의 결혼과 음주 등의 문란한 계율관을 새롭게 정비하고, ≪비밀도차제론(Lam rim chen mo)≫과 ≪보리도차제론(Ngag rim chen mo)≫을 저술하여 중관학을 중심으로 현교(顯敎)를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밀교(密敎)의 수행체계를 확립했다.
현교에서 밀교로 이어지는 부처님의 전체적인 교학체계를 하나로 이해하고 수행하는 체계로 확립한 것이다. 겔룩빠는 쫑카빠와 그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간덴, 쎄라, 데붕과 같은 대학문사와 타시룽보와 같은 사원을 중심으로 뛰어난 학승들을 배출함으로써 티베트 불교를 겔룩빠 중심으로 형성해 가는 기초를 세운다.
쫑카빠가 겔룩빠를 세우기 훨씬 전인 13세기부터 티베트에서는 까르마빠(Karmapa)와 싸까아빠(Sakyapa) 같은 불교승려가 정치와 종교를 함께 관장하는 제도가 쿠빌라이 칸에 의해 마련되었다. 5대 달라이 라마인 롭상 카쵸(Lobzang Gyatso)는 자신을 돕는 몽고 세력의 힘을 입어 낡까아빠 대신 티베트를 정치와 종교를 관장하게 된다. 롭상 카쵸는 자신을 티베트를 수호하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하며 관세음보살이 머무는 포타락가산을 의미하는 포탈라(Potala)궁으로 옮겨간다.
달라이 라마는 쫑카빠의 제자인 제 1대 달라이 라마에서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라마의 계보를 환생자를 통해 계승하고 있다. 역대 달라이 라마는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모든 중생들은 윤회한다. 업과 번뇌가 소멸되지 않는 한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중생들은 업과 번뇌와 같은 유루(有漏)의 힘에 의해서 윤회하지만, 라마들은 중생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원력으로 환생한다.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달라이 라마께서는 만약 더 이상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원하지 않을 때는 다음 달라이 라마는 환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신 말씀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티베트에서 환생자를 의미하는 '뚤꾸(tulku)'의 전통은 까르마빠에서 시작되었다. 얼마 전 17대 까르마빠가 중국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히말라야의 설산을 넘어 인도로 망명한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원래 까르마빠의 전통에서는 환생자를 찾지 않는다. 전생의 까르마빠는 임종 직전에 자신의 환생에 대한 정보를 자신의 네 제자에게 남긴다.
다음의 환생자는 스스로 전생의 사원을 찾아가 자신이 환생자임을 밝힌다. 이때 네 제자는 전생의 까르마빠가 남긴 편지를 동시에 개봉함으로써 환생자의 이름, 출생지, 부모의 이름 등을 확인하게 된다. 이 확인 절차가 끝나면 환생자로 모셔져 그들의 독특한 라마 만들기 과정에 들어간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도 링 린포체와 같은 스승 이외에도 각 교과가 가장 뛰어난 스승을 모셔 반야, 중관, 논리학, 계율 등의 교과 과정을 수학하였고, 또 엄격한 시험을 치러야 했다. 현 달라이 라마도 중관학 이전에는 교학적인 이해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중관학을 공부하면서 스승이 더 이상 가르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불교학 전체를 정확하게 이해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1959년 나라를 잃은 젊은 달라이 라마에게는 역대 달라이 라마 중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산 달라이 라마임에 틀림없다. 나라를 잃은 지도자로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힘든 상황에서 수행을 완성했고,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로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다.
'달라이 라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살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살았던 것은 여건이 성숙되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모든 수행자들에게 좋은 본보기임에 틀림없다.
지금 티베트와 티베트 불교는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1959년 이래 티베트 본토에는 많은 중국인들이 이주해 와 조직적인 티베트 문화의 파괴 등으로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문화와 종교를 제대로 지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일부 사원들의 외형적인 복원은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진정한 수행과 학문의 풍토는 여전히 열악한 형편이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인들 만의 것이 아니다. 인도 불교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독특하게 발전시킨 티베트 불교는 모든 불교인의 것이고, 불교인의 의지처이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스승이다. 종교나 국가를 초월해서 정의와 사랑의 가르침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평화와 화해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스승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한 목소리로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희망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그마한 관심은 티베트인들에게는 큰 희망이 되고, 또 우리는 달라이 라마를 통해서 우리의 희망을 본다. 일체 모든 중생들이 이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보살의 희망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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